몸 속 진핵세포를 침입한 세균과 바이러스 등을 제거하거나 세포소기관 및 폐기물을 제거해 세포의 항상성을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생체반응인 자식작용(autophagy). 반세기 전부터 이에 대한 개념은 널리 알려졌으나 일본 오슈미(Ohsumi) 박사와 미국의 클리온스키(Klionsky) 박사가 자식작용과 관련한 유전자들을 밝혀내면서 본격적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자식작용은 세포의 정상적인 활동과 유지에 있어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지난 10년 간 연구자들의 연구결과에 의해 많은 부분들이 밝혀지기도 했다. 진핵생물의 세포 내 폐기물 및 오래된 소기관을 청소하고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등 외부 침입자를 제거하는 것 뿐 아니라 배아 발생과 퇴행성 뇌신경질환, 암발생 등과 같은 고등진핵생물에게 일어나는 여러 질환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밝혀낸 것이다.
자가포식소체와 리소좀과의 융합과정을 규명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과학계에서 이러한 자가포식과정에 대한 보다 명확한 규명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었다. 세포가 스스로 소멸하는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가포식소체가 제거할 물질을 둘러싼 뒤 리소좀과 융합되면서 리소좀에 들어있는 각종 분해효소에 의해 이물질이 분해된다. 즉 이 융합과정이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는데 그동안은 융합구조에 대해 밝혀지지 않아 자식작용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여기서 자가포식소체란 자식작용에서 제거할 물질을 둘러싸 리소좀에 전달해 주는 이중막으로 구성된 주머니를 일컫는다.
이런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자가포식소체와 리소좀의 융합과정을 규명해 주목을 받고 있다. 송현규 고려대 생명과학부 교수팀이 세포 내에서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폐기물을 제거하는 단백질 복합체의 구조 및 기능을 밝혀낸 것이다. 해당 연구결과는 그 성과를 인정받아 국제학술지 ‘오토파지(Autophagy)’ 지에 게재됐다.
“세포 내에서 잘못된 물질이 없어지지 않고 인체에 그대로 남아있으면 아무래도 여러가지 부작용이 많이 있겠죠. 예를 들어 집에 비유해 이야기 하자면 쓰레기들이 집안 곳곳에 남아있는 모습을 생각할 수 있을 거예요. 쌓여가는 쓰레기들을 버리지 못하면 제대로 된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것처럼 세포도 마찬가지 입니다. 폐기돼야 하는 세포가 몸속에 남아있으면 인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쳐 여러가지 질병을 유도하게 됩니다. 세포의 스트레스가 심해지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지죠.”
자가포식 과정은 한 단계에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여러 단계에 걸쳐 진행되는 만큼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여러가지 현상과 구조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중에서도 이중막 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데, 폐기돼야 할 세포를 선택적으로 없애기 위해 이중막으로 둘러싸여지는, 자가포식소체가 그것이다.
이번 연구는 이러한 자가포식소체와 세포내 잘못된 물질을 없애는 리소좀 기관과의 융합 과정을 분석한 결과다. 이 두 물질과 기관이 융합을 이뤄야 리소좀 안에 있는 가사분해 효소들이 폐기해야 할 물질들을 잘게 부술 수 있기 때문이다. 송현규 교수팀은 이처럼 자가포식소체와 리소좀의 융합 과정 중, 이에 관련된 단백질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밝혀낼 수 있었다.
자식작용의 핵심단백질(ATG5)이 자가포식소체의 형성과 분해 과정에서 각각의 파트너 단백질(ATG16L1, TECPR1)과 만드는 복합체에 대한 고해상도 결정구조를 얻는 데 성공한 것이다.
“ATG5 단백질은 자식작용에 관여하는 ATG 단백질들 중 하나입니다. ATG12 단백질과 공유결합 복합체를 형성한 후 ATG16 단백질과 함께 ‘E3-리가제’의 역할을 하죠. 즉, 자식작용에 관여하는 유비퀴틴-유사체인 ATG8 (또는 인체 LC3) 카르복실-말단에 지질을 공유 결합시키는 것을 매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ATG5 단백질이 자가포식소체를 형성할 경우에는 ATG16L1과 결합하지만 이후 리소좀과 융합해 분해될 때는 TECPR1과 결합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어 연구팀은 주변의 산성도가 ATG5의 결합 파트너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변수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리소좀 근처에서의 산성환경이 ATG5와 TECPR1의 결합을 도와 자가포식소체와 리소좀의 융합을 유도한다는 것이었다.
“리소좀이라는 기관은 결국 세포 내 소기관입니다. 본래 산성도(ph)가 높은 편이에요. 인체 내 세포의 경우 산성도가 ph7 정도인데 리소좀은 ph5 정도가 됩니다. 사실 세포 내에서는 세포 소기관 근처의 산성도를 정확히 모르는데 이 주변에서의 현상을 보고 파악하는 거죠. TECPR1과ATG5의 융합이 산성도가 낮을 때 세지더군요.”
논문 게재 전 어려움 있었지만, 자양분 된 경험
자가포식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슈가 된 것을 그리 오래지 않았다. 자가포식 과정이 암 혹은 퇴행성 뇌질환에 관여한다는 보고가 있던 2005~2006년부터 부쩍 연구자가 많아진 만큼 이제야 7~8년 밖에 안된 연구분야인 셈이다.
“사실 자식작용 용어는 반세기 이전부터 나타난 개념입니다. 그러나 개념과 현상에 대한 언급이 이뤄진 것에 비해 논문은 거의 나오지 않았어요. 1990년대 말까지 전 세계적으로 이에 대한 논문이 몇 개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다가 1990년대 말 일본의 오슈미(Ohsumi) 박사가 효모 유전자 중 자식작용에 관련한 유전자를 많이 발견하면서 좀 더 이슈화가 됐습니다. 이후 인체 현상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밝혀진 효모에 대해 더욱 연구를 진행하다보니 질병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거예요.”
우리 인체의 중요한 질병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연구자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게 됐다. 언젠가 이 분야에서 노벨상이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거론된다.
“저는 본래 구조생물학은 연구한 사람입니다. 제가 관심있던 분야는 단백질이 왜 세포 내에서 없어지는가, 에 대한 부분이었어요. 우리 몸에 단백질이 많고, 수명을 다하면 결국 소멸해야 하는데 왜 소멸해야만 하는 건지 궁금했거든요. 효소가 없애야만 하는 단백질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하고 싶었어요. 때문에 이에 대한 연구를 그때부터 지금까지 진행해 오고 있는 셈이죠.”
연구자의 연구과정이라는 게 늘 어려움이 뒤따르게 마련이듯, 이번 과정도 큰 어려움이 한 번 닥쳐왔다. 논문을 준비하던 중 타 국가의 연구그룹에서 비슷한 연구로 논문을 게재해 TECPR1 단백질의 기능을 규명한 것이다. 당시 송현규 교수나 학생들 모두 매우 침울해 했지만, 결국 연구를 놓지 않고 새로우 길을 모색한 결과 세계인들이 잘 시도하지 않고 성과를 내지 못하는 융합현상의 기전을 밝힘으로써 지금에 이를 수 있게 됐다.
“어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타산지석삼아 연구를 계속 진행한 결과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연구를 진행한 학생들에게 수고했다고 이야기를 건네주고 싶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연구를 통해 기존에 저희 연구팀이 시도하지 않은 분야에 대해 다양한 실험을 많이 진행하고 싶어요. 제 스페셜티는 단백질 구조 또는 생화학입니다. 즉 연구 주제의 확장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죠. 이를 통해 더욱 많은 현상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것입니다.”
-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 저작권자 2014-12-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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