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에게 중금속인 납(Pb)에 대한 노출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곤 한다. 미국 유독물질 질병등록청(ATSDR, Agency for Toxic Substances and Disease Registry)은 납을 많은 화학물질 중 두 번째로 인체에 유해한 물질로 분류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정상 성인의 혈액 내 납 농도(BLL; Blood Lead Level)는 1∼3 μg/dL 정도다. 하지만 인체 내 납 농도가 증가하면 신경독성과 빈혈 등 다양한 질환을 유발하는데, 이 수치가 10 μg/dL을 넘어가면 납중독 경계수위로 정의된다.
납 중독은 만성신장질환과도 연결이 된다. 많은 조사를 통해 BLL이 5 μg/dL 이하인 인구집단에서도 신장기능이 손상되는 현상이 보고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이러한 납이 신장독성을 어떻게 유발하는지, 정확한 기전이 규명되지 않았다.
유해 중금속 납이 신장에 미치는 영향
국내 연구진이 납의 중독과 만성신장질환 사이의 관계를 규명했다. 정진호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팀이 어떠한 기전을 거쳐 중금속 납이 신장에 손상을 끼치는지 밝혀낸 것이다. 납이 인체에 축적되면 신경계와 순환계 등에 이상을 보이고 성장까지 지연시키는 등 많은 질환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러한 연구 결과는 상당한 관심을 받고 있다.
납은 인체에 위험한 영향을 끼치는 위험물질 중 2위로 손꼽힌다. 대기와 토양, 생활환경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인체 내로 들어오게 되는데, 페인트와 안료, 염료 등의 접촉이 주원인이다. 특히 사람이 이러한 물질에 노출되는 것은 장난감과 학용품, 화장품 등 일상생활용품을 통해서가 일반적인데 이러한 위험성 때문에 국제 가이드라인은 인체 내 납 중독의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만성신장질환은 유전적 및 환경적으로 다양한 요인에 의하여 발생할 수 있습니다. 많은 역학조사에서 인체 혈액 내 납의 농도가 높은 사람에게는 만성신장질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관관계가 있음이 학계에 보고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은 납이 어떤 기전을 거쳐 만성신장질환을 유발하는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저희 연구팀은 납의 만성 노출이 조직 간 상호작용을 통해 어떻게 만성신장질환을 일으키는지 원인 기전을 규명했습니다. 납 노출이 만성신장질환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납 노출이 증가하면 만성신장질환의 위험성이 증가하는 만큼, 의의가 있는 연구라고 할 수 있겠죠."
정진호 교수팀은 혈액 내 납의 99% 이상이 적혈구에 축적되는 것에 착안해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납이 적혈구와 신장의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쳐 신장독성을 유발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혈중 납의 농도가 높아지면 적혈구 세포막 표면에 포스파티딜세린이 노출되고, 신장에 있는 신세뇨관세포는 이러한 적혈구를 제거하는 식세포로 작용 하게 됩니다. 포스파티딜세린(Phosphatidylserine)은 세포막을 구성하는 인지질로 정상 시에는 주로 세포내막에 존재하지만 활성화되면 세포외막(표면)으로 노출돼요. 신세뇨관세포(Renal tubular cells)는 신장 세뇨관을 구성하는 세포로서 재흡수와 배설 두 가지 기능이 알려져 있지만 저희 팀의 연구에서는 식세포활동에도 관여한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이렇게 신장 안으로 들어온 적혈구가 파괴되면서 적혈구 헤모글로빈 내의 철(Fe)이 신장에 축적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이렇게 신장에 축적된 철이 신장세포에 산화적 스트레스를 일으키고 그 결과 신장에 손상이 발생, 만성신장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그렇다면 납이 특히 신장기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정진호 교수는 "인체 혈액 내 납의 농도가 이 5 μg/dL 이하인 저농도에서도 신장기능이 현저히 저하되는 것을 보면 납이 신장에 매우 민감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며 "납이 신장조직에 직접적으로 독성을 주는 경우는 크지 않다. 그러나 납이 혈액 내 낮은 농도에서도 적혈구 세포막을 1차적으로 변형하고, 2차적으로 적혈구가 신장조직에 축적돼 산화적 스트레스를 유발시키기 때문에 신장기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나 싶다"고 설명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알기에 만성신장질환의 원인으로는 음식섭취가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과연 납은 음식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만성신장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음식섭취가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지나친 소금의 섭취는 혈압이 상승하고 심장 박동을 증가시켜 신장손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단백의 과다섭취는 신장에 과다한 대사 부담을 주기 때문에 질병을 더욱 악화시키기도 하죠. 만성신장질환 환자에게 음식물 섭취와 납 노출의 영향력을 비교한 연구는 없지만 만성신장질환 환자에게서 혈액에 납 농도가 증가하면 신장질환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명확합니다."
최근 현대인 사이에서 신장질환 환자가 증가하는 것은 인구의 노령화 등으로 인한 고혈압과 당뇨병 등 만성 성인병 질환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전적 및 생리적 요인 뿐 아니라 환경적인 요인도 신장질환 발생에 매우 중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다양한 유해물질도 환경으로부터 인체에 노출돼 신장독성을 유발한다. 대표적으로 또 다른 중금속인 카드뮴도 조선, 건설, 배터리산업으로부터 인체에 노출돼 신장독성을 유발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노화과정과 혈액의 상관관계 밝히기 위해

납(Pb)에 의해 적혈구 세포막내 인지질(PS)이 노출되면 신장세포의 식세포 활동(Erythrophagocytosis)이 활발해지고 그에 따라 신장조직에 철(Iron)이 축적되면서 산화적 스트레스(ROS)를 유발해 신장손상을 일으키게 된다. ⓒ 한국연구재단
정진호 교수가 이번 연구를 진행한 것은 인체의 노화과정에 관심을 갖던 중, 이 과정에 혈액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다. 정 교수는 "최근 인체 노화과정에 있어서 혈액의 중요성이 많이 강조되고 있다"며 "실제로 최근 각 조직의 노화를 감소시킬 수 있는 혈액 중 몇 가지 요소들이 확인되고 있다"며 연구 계기에 대해 설명했다.
"이런 요소를 규명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만성퇴행성질환을 감소시킴으로써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는 미래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번 저희팀의 연구도 노화과정에서 혈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타 장기와 상호작용을 통해 어떻게 질환이 유발되는지, 나아가 질환을 제어할 수 있은 방안은 무엇인지를 연구하고자 도전한 것 입니다."
약 3년 반에 걸쳐 진행된 연구다. 해당 연구는 '엔바이런멘털 헬스 퍼스펙티브 (Environmental Health Perspectives)' 학술지에 게재됐는데, 해당 저널은 환경분야 국제지로 이공계 8500여 개의 SCI 등재학술지 중에서 유일하게 미국 정부와 국립보건연구원(NIH) 산하 국립환경보건과학연구소(NIEHS)가 발행하고 있다. 전 세계 환경보건정책 수립에 주요자료로 활용되고 있을 만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저널 중 하나인 셈이다.
"따라서 논문심사과정에서 납 노출에 의해 관찰되는 시험관, 동물실험의 결과와 납에 의한 인체 만성신장질환과의 타당성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추가 실험을 진행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았어요. 논문으로 게재되기 위해 매우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죠."
하지만 국내 만성신장질환 환자가 전체 인구의 약 15%에 달하고 있는 만큼, 이번 연구결과를 토대로 납 노출과 신장질환의 상관성 검토와 납의 노출 관리방안 등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정 교수의 설명이었다.
"납 노출에 의한 신장독성은 혈액 내 적혈구가 매개됨이 규명됐기 때문에 납의 노출이 상대적으로 높은 인구집단(노동자 등)은 적혈구의 포스파티딜세린 노출 정도를 측정함으로써 만성신장독성 예측을 위한 생체지표로써 활용 가능할 것입니다. 또한 납에 의한 만성신장독성이 신장에 축적된 철에 의한 산화적 스트레스임이 확인됐으므로 환경으로부터 노출되는 납의 만성노출로부터 유발되는 신장질환을 예방하고 제어할 수 있는 방안이 가능해졌다고 할 수 있어요."
2012년부터 미국질명통제센터(CDC)는 5살 미만 어린이의 경우 'Level of Concern' 이라는 어휘를 삭제하고 'Reference value(기준치)'로 변경하면서 BLL을 5 μg/dL 이하로 강화시켜 주목 받고 있다. 정진호 교수는 "세계적으로 인체 유해성 때문에 납의 기준치를 계속 강화시키는 추세"라며 "때문에 납에 매우 민감한 어린이들에게 신경독성이 발생하는 새로운 요인을 규명하기 위한 가설을 증명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앞으로의 연구 계획을 이야기 했다.
-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 저작권자 2014-11-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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