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타임즈 로고

생명과학·의학
이슬기 객원기자
2014-11-18

"내 아내와 닮았지만, 그녀는 아닙니다" 망상적 동일시 중 하나인 카그라스 증후군

  • 콘텐츠 폰트 사이즈 조절

    글자크기 설정

  • 프린트출력하기

종종 사고로 인해 친숙했던 대상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와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자신의 어머니, 애완동물, 애인, 친구 등 평소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이 '진짜'라고 믿지 못한다. 다른 물체나 사람을 인식하는 데는 문제가 없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왔던 대상의 소리만 듣는 경우에는 친밀감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을 때, 친구와 대화를 나눴을 때, 애완동물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는 일시적으로 괜찮아진다.

이러한 현상은 이른바 '카그라스 증후군'(Capgras Syndrome)으로 일종의 망상적 동일시(Delusion misidentification syndrome)의 하나이다. 자신의 친구나 배우자가 완전히 똑같은 모습을 분장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꿔치기 되었다고 믿는 증상이다.

이들은 자신이 겪은 사건에 대한 기억이 왜곡되었거나 전혀 다른 것으로 대체되었다고 믿는다. 심지어 과거의 자기 자신조차 자신과 닮은 '다른' 누군가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 사고로 인해 잠깐 정신을 잃은 사이, 자신을 뺀 나머지가 모두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믿는 것이다.

카그라스 증후군 환자들은 자신의 주변인이 똑같이 닮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믿는다.  특히 자신의 배우자가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구조적 인지에 문제가 생겼다기 보다는  감정적 관계에 문제가 생겼기에 이러한 증상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
카그라스 증후군 환자들은 자신의 주변인이 똑같이 닮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믿는다.
특히 자신의 배우자가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구조적 인지에 문제가 생겼다기 보다는
감정적 관계에 문제가 생겼기에 이러한 증상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 ⓒ ScienceTimes

카그라스 증후군이 처음 발견한 사람은 1923년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인 쟝 마리에 조셉 카그라스(Jean Marie Joseph Capgras)이다. 그는 이러한 증상을 발견하고 처음에는 '꼭 닮은 착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며, 이후 이 표현은 지금과 같은 '카그라스 증후군'(Syndrome De Capgras)라는 이름으로 대체되었다.

카그라스 증후군 환자는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의사는 환자에게 전신거울을 보여주며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라고 묻는다. 그러자 환자는 "나와 똑같이 생긴, 오늘은 옷까지 나와 똑같이 입은 협잡꾼이죠. 내가 하는 행동을 하나하나 다 따라하잖아요"라고 대답한다.

이들은 자신의 배우자를 두고 "분명 내 아내와 닮았는데 내 아내는 아니다"라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가까운 사람 중 특히 자신의 배우자에게서 이런 증후군을 느끼는 환자가 많다. 그래서 자신의 배우자를 누군가 사칭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실제로 이와 관련된 연구가 진행되기도 했다. 크리스 피아코니(Chris M. Fiacconi)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University of Western Ontario, Canada) 교수를 비롯한 연구팀은 올해 9월 학술지 '인간 신경과학의 선구자'(frontiers in Human Neuroscience)를 통해 관련 내용을 발표했다. (원문링크)

"너는 왜 이 여자를 엄마라고 확신하는거니?"

연구팀은 치매를 가지고 있는 두 명의 남자 지원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이들의 뇌를 스캔했고, 인지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들 중 한 명은 카그라스 증후군을 가지고 있었으며, 한 명은 그렇지 않았다. 이들의 결과를 건강한 10명의 같은 연령대의 남자와 비교하였다.

그 결과, 카그라스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경우 자신의 배우자를 두고 누군가 사칭하고 있다고 믿었으며 계속해서 반론을 제기하였다. 자신의 아들에게 자주 "너는 왜 이 여자를 네 엄마라고 확신하는 거니?"라고 물었다.

또 다른 실험도 진행되었다. 참가자들에게 평생 접했을 유명인들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를 알아봤다. 예를 들면 마릴린 먼로와 같은 유명한 배우의 이름과 목소리, 그림을 보여주고 이들이 인식하고 있다면 그 다음에 이들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가 어느정도 인지를 테스트했다.

카그라스 증후군 환자는 배우의 얼굴과 목소리 등을 인식하지 못했다. 카그라스 증후군이 없는 나머지 실험 참가자 한 명과 건강한 10명의 비교대상자들은 얼굴과 목소리로 유명 배우를 인식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카그라스 증후군 환자가 이름으로 구분하는데는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을 인식하는 데는 두 가지 통로가 존재

연구팀은 일련의 실험을 통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인식하는 데는 두 가지 통로가 존재한다고 결과를 내렸다. 구조적 생김새를 통한 인식과 감정적 연결이 바로 그것이다. 카그라스 증후군 환자의 경우, 감정적 연결에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진단내렸다.

구조적 생김새를 통한 인식은 예를 들면 코와 눈, 머리카락으로 사람을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말 그대로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 다른 사람을 인식하는 것이다. 감정적 연결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의미한다. 즉, 카그라스 증후군 환자는 겉 모습은 알고 있지만 그들과 맺었던 관계에 대해 의심을 품기 때문에 후자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감정적 신호가 인간관계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는 감정적 관계가 가장 중요한데, 이런 감정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으면 배우자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는 구조적 모습, 즉 보여지는 모습보다 그들과 맺고 있는 관계인 감정적 색깔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카그라스 증후군 환자가 자신의 배우자를 두고 '그녀는 아내와 비슷하지만 그녀는 내 아내가 아니다'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감정적 색깔을 해석하는데 혼돈을 느끼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연구는 표본이 작기 때문에 카그라스 증후군에 대한 전반적인 현상을 설명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전부 열 두 명에 국한된 작은 연구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그라스 증후군이 가지고 있는 특징과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았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이슬기 객원기자
justice0527@hanmail.net
저작권자 2014-11-18 ⓒ ScienceTimes

관련기사

목록으로
연재 보러가기 사이언스 타임즈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확인해보세요!

인기 뉴스 TOP 10

속보 뉴스

ADD : 06130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7길 22, 4~5층(역삼동, 과학기술회관 2관) 한국과학창의재단
TEL : (02)555 - 0701 / 시스템 문의 : (02) 6671 - 9304 / FAX : (02)555 - 2355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아00340 / 등록일 : 2007년 3월 26일 / 발행인 : 정우성 / 편집인 : 윤승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승재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운영하는 모든 사이트의 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지원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적 가치 증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