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분야의 발전에 따라 약물전달시스템(DDS, Drug Delivery System)도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약물을 목표 부위에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인 약물전달시스템은 최근 들어 환자의 질환이나 신체적 특성에 따라 다양한 시스템이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질환의 부위에 따라 선택적으로 약물을 전달하거나, 약물의 양을 조절하며 주기적으로 제공하는 시스템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아직도 효과 면에서 볼 때 만족할 수준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는데,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암세포를 대상으로 기발하고 흥미로운 약물전달시스템이 등장하여 주목을 끌고 있다.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사이언스데일리(Sciencedaily)는 미국의 과학자들이 암세포들을 속이는 코쿤(cocoon) 같은 형태의 약물전달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보도하면서, 암세포 치료를 위한 새로운 개념의 약물전달시스템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관련 링크)
항암제를 빨리 흡수하도록 만드는 약물전달시스템
마이크로미터(㎛) 크기보다 더 작은 분자크기의 초미세 물체를 만들어, 그 속에 암을 파괴하는 약물을 담아 암세포까지 전달하는 것이 암 치료를 위한 약물전달시스템 기술의 핵심이다.
하지만 분자크기의 물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이를 암세포가 있는 곳까지 옮기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빠른 속도로 흐르는 혈류를 거슬러 올라가 암세포까지 정확히 도착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혈관 속을 흐르는 피의 속도는 대동맥의 경우 초당 600밀리미터(mm) 정도로 매우 빠르다. 또한 혈관 속 물 분자가 시도 때도 없이 파도를 치기 때문에 원하는 방향으로 약물을 보낸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작업이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아무리 최신의 약물전달시스템이라 하더라도 약물이 원하는 목적지로 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혈관을 여기저기 떠다니다 목적지에 다다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효과적인 약물전달시스템이 되려면 보다 정확한 위치로 전달하거나, 한꺼번에 많은 양을 제공하는 방법 등으로 진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등장한 방법이 바로 보호막으로 둘러싸인 코쿤 형태의 약물전달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의 과학자들이 개발했다. 항암제가 들어있는 나노 규모의 보호막을 암세포가 빨리 흡수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기존 약물전달시스템과는 다른 개념의 시스템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번 연구의 책임자인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의 젠 구(Zhen Gu) 교수는 “이번에 개발된 약물전달시스템은 DNA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합성물질을 사용하는 시스템들보다 독성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고 전하며 “또한 자가 조립하는 DNA 기술을 사용했으므로 비교적 만들기 쉽다”고 덧붙였다.
구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이 약물전달시스템은 특별히 다량의 약물을 나를 수 있으며, 일단 암세포 내부로 약물이 들어가면 세포 곳곳으로 매우 빠르게 방출되기 때문에 효과가 기존 항암제에 비해 상당히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는 초음파 영상 기반의 전달시스템 선보여
항암제를 싸고 있는 나노 보호막은 150나노미터(nm) 길이의 단일 가닥 DNA로 구성되어 있다. 마치 누에고치 같은 형태로 이루어진 코쿤 보호막은 항암제인 독소루비신(doxorubicin)과 디네이즈(DNase)라고 불리는 단백질 효소를 포함하고 있다.
나노 보호막 표면은 엽산 리간드(ligand)로 장식되어 있다. 나노 보호막이 암세포를 만나면, 엽산 리간드들은 나노 보호막을 암세포의 표면에 있는 수용체들에 결합시켜서 암세포가 나노 보호막을 삼키게 만든다.
DNA 보호막을 자르는 기능을 하는 효소인 디네이즈는 마치 칼집 안에 들어가 있는 칼처럼 얇은 중합체 안에 가두어져 있는 상태로 존재한다. 그런데 암세포가 보호막을 삼키게 되면, 세포 내의 산성 환경이 디네이즈를 포함하는 중합체를 파괴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중합체 안에 갇혀 있던 디네이즈가 자유로워지면서 빠르게 DNA 보호막을 잘라 항암제인 독소루비신을 암세포 안으로 내보낸다. 항암제의 공격을 받은 암세포는 이내 죽고 만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구 교수는 “우리 연구진은 현재 매우 흥분하고 있고, 코쿤 형태의 시스템이 암과 다른 질병들을 표적으로 하는 다양한 약물들을 전달하는데 있어 탁월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라고 기대하며 “이제 전임상 테스트에 착수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국내에서는 초음파 영상을 활용한 약물 전달 기술이 개발되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 기술은 초음파 영상을 보면서 특정 부위의 암에 치료제를 선택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국내 의료진과 미 하버드대 연구진의 공동 연구로 개발되었다.
분당서울대병원과 차의과대 연구진이 하버드대 부설 매사추세츠 병원과 공동으로 개발한 초음파 영상 기반의 약물전달 시스템에 대해, 의료 전문가들은 기존 항암 치료법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 새로운 기술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 시스템의 특징은 초음파 조영제에 유전자 치료제 및 항암제를 포함하는 리포좀을 결합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리포좀을 통해 새로운 치료 및 진단 겸용 복합체를 만들고, 그 복합체에 특정 암세포를 찾을 수 있는 물질을 붙여서 선택적으로 특정암 세포에만 치료제를 전달하도록 하는 것이 시스템의 원리다.
공동 연구진이 만든 리포좀 복합체는 약 1마이크로미터 정도로 몸에 주입하면 혈관 내에 머물게 된다. 이어서 외부에서 초음파 영상을 모니터링하며 암이 있는 부위에 초음파 에너지를 쏘아주면 복합체는 마치 풍선이 터지듯이 터지게 된다.
그 후 치료제를 포함한 리포좀이 혈관 바깥으로 빠져나가면서, 특정한 암세포를 찾아 세포막에 부착된 뒤 세포내로 치료제를 전달하게 된다. 이 같은 시스템의 항암 과정에 대해 연구진의 관계자는 “장기간 반복되는 항암치료는 환자의 면역력을 약화시키고, 환자와 보호자 모두에게 부담이 되기 때문에, 특정 암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치료하는 기술은 여러 부작용을 최소화해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번 연구의 공동 책임자인 분당서울대병원의 이학종 교수는 “기존 항암제의 투여량보다 더 적은 양으로도 높은 치료 효과를 가질 수 있는 이번 기술을 통해 항암제의 부작용을 상당히 줄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며 “특히 초음파 영상으로 병변을 볼 수 있는 전립선암이나 췌장암 등에서 특히 그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망했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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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4-10-3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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