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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이슬기 객원기자
2014-10-27

의도적으로 기억을 조작할 수 있다? 기억 제거 및 감정 조작 연구 잇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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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인 블랙'(Men in Black)은 원래 UFO와 외계인 등이 연구자의 앞에 나타나 경고나 협박을 하고 일을 방해하는 수수께끼의 조직을 말한다. 실재 여부와 상관없이 그 존재 자체가 일종의 도시 전설과 음모론이다.

실제로 '맨 인 블랙'이란 영화에서 외계인들은 자신과 만난 사람들에게 펜처럼 생긴 물체를 이용하여 기억을 지운다. 빛이 터지면서 사람의 기억을 지우는 것인데, 주로 영화나 소설에서 많이 사용되는 소재였다.작품에서만 보던 이 기억 제거장치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지난 22일 브라이언 윌트겐(Brian J. Wiltgen) 교수를 비롯한 미국 켈리포니아 대학 데이비스 캠퍼스(the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연구팀이 유전자 조작된 쥐의 특정 기억을 지우는 실험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학술지 '뉴런'(Neuron)을 통해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원문링크)

이번 연구에서 바탕이 된 이론은 광유전학(optogenetics)인데, 빛(opto)과 유전학(genetics)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학문이다. 빛과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하여 뇌 신경세포인 뉴런을 조절하는 기술로, 뇌 연구와 관련하여 주목받고 있는 새로운 학문 중 하나이다.

인위적으로 기억을 지우는 것은 영화나 소설에서 주로 등장하는 소재였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연구를 통해 현실이 될 수도 있음이 밝혀졌다. 의도적으로 기억을 지우고, 기억에 대한 감정을 조작하는 것이다. 원하는 것만 기억할 수 있는 세상이 오고 있다. ⓒ ScienceTimes
인위적으로 기억을 지우는 것은 영화나 소설에서 주로 등장하는 소재였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연구를 통해 현실이 될 수도 있음이 밝혀졌다. 의도적으로 기억을 지우고, 기억에 대한 감정을 조작하는 것이다. 원하는 것만 기억할 수 있는 세상이 오고 있다. ⓒ ScienceTimes

연구팀은 많은 기억 중 일화적 기억(episodic memory)에 주목하였다. 예를 들면 '어제 누구와 함께 식사를 했는지'와 같은 기억인데, 사건이 일어난 장소나 시간 등을 기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화적 기억은 우리 뇌 속 깊숙이 숨어있는 대뇌 피질과 해마의 공동 작용에 의해 기억된다.

그래서 이번 실험에서는 이 대뇌 피질과 해마를 통해 진행되었다. 대뇌 피질과 해마 신경세포에 레이저를 쏴 유전자 조작을 통해 세포가 활성화되면 야광의 녹색 빛을 내는 쥐를 만들어냈다. 이는 일종의 스위치와 같은 역할을 했다.

만약 기억이 생기면 빛을 발하게 되고, 없어지면 꺼지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즉, 연구팀은 여기에 전기 자극을 줌으로써 기억을 조절하는 실험을 진행한 것이다. 눈으로 기억을 하고 있는지, 없는지를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실험대상이 된 쥐들을 새장에 넣고 전기 쇼크를 주는 훈련을 반복적으로 시켰다. 이같은 기억을 가져 녹색 빛이 활성화된 쥐는 새장에 들어가는 순간, 온몸이 얼음처럼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굳어 있었다. 하지만 녹색 빛이 활성화 되지 않은 쥐는 평소와 같은 행동을 보였다. 마치 전기쇼크는 까맣게 잊은 것처럼 말이다.

이번 연구를 통해 해마 속의 특정 세포가 기억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 이야기는 곧 향후 사고로 인해 기억을 잃은 사람이나 치매 환자들에게 기억을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끔찍한 기억을 잊게 만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행복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릴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연구이다.

제논 가스로 공포의 기억 없애

기억을 의도적으로 지우는 실험은 이미 지난 8월에도 성공한 바 있다. 에드워드 멜로니(Edward G. Meloni) 미국 하버드대 의과대학(Harvard Medical School) 교수팀은 이번 실험에 대한 연구 내용을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을 통해 발표하였다. (원문링크)

연구팀은 쥐가 특정 장소에 갈 때마다 다리에 전기 충격을 가했다. 쥐에게 그 장소를 지나가면 전기 충격이 온다는 기억을 심어준 것이다. 기억을 심어준 뒤, 연구팀은 더 이상 전기 충격을 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쥐는 그 장소에 갈 때마다 몸이 경직되는 공포 반응을 보였다.

재미있는 것은 쥐에게 제논 가스를 맡게 하자, 이후 19일 동안 같은 장소임에도 쥐가 공포 반응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18일간 가지고 있는 공포의 기억이 사라진 셈이다. NMDA라는 특수한 단백질이 공포 기억을 형성하고 재현하는 역할을 하는데, 제논가스가 이 단백질을 억제하는 기능을 이용한 실험이다.

제논(Xe)은 비활성 기체 중 아주 희귀하고 가장 반응성이 큰 원소이다. 지구 대기의 약 1100만분의 1(0.087ppm)을 차지하는 아주 희귀한 기체 원소인데, 각종 특수 램프나 레이저, 의료 진단 및 단백질 분석에 쓰이는 원소이다.

기억에 대한 감정 조작도 가능

기억을 지울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기억에 대한 감정 역시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특정 기억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기억과 감정을 담당하는 뇌는 구분이 되어있는데, 둘의 연결 고리를 바꾸면 기억에 대한 감정의 조작이 가능하다. (원문링크)

연구팀은 수컷 쥐에 전기 충격을 가했다. 뇌의 편도체와 해마에 있는 신경세포가 활성화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후 쥐의 두개골에 구멍을 뚫어 광섬유를 심었다. 이 신경세포로 빛을 전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틀 뒤 두 구역으로 나뉜 상자에 수컷 쥐를 넣고 A구역으로 갈 때마다 빛을 비췄더니 전기자극의 나쁜 기억을 떠올린 수컷 쥐는 A구역을 피해 주로 B구역에서 머물렀다. 며칠 뒤, 수컷 쥐를 암컷 쥐와 함께 놓아두고 약 12분간 빛을 비췄다.

이는 나쁜 기억에 즐거운 감정을 다시 덮어 씌우는 과정이다. 다시 수컷 쥐를 상자에 넣고 예전처럼 A구역으로 갈 때마다 빛을 비췄지만 쥐는 더이상 A구역을 피하지 않았다. 전기 자극에 대한 나쁜 감정이 암컷 쥐와 어울렸던 좋은 감정으로 대체되면서 공포도 함께 사라진 것이다.

똑같은 장소임에도 기억에 대한 감정이 달라진 것은 기억이 저장된 해마와 뇌에서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 사이 연결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는 큰 사고 이후 생기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치료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외상이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 당시의 충격적인 기억이 떠올라 그 외상을 떠오르게 하는 활동이나 장소를 피하게 되는데, 이들에게 장소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조작함으로써 좋은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할 수 있다.

이슬기 객원기자
justice0527@hanmail.net
저작권자 2014-10-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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