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늘 약을 먹었던가? 안 먹었던가?
비타민이든 치료제든, 어떤 이유에서건 현대인들은 대부분 1주일 이상 약을 복용한 경험을 갖고 있다. 하지만 약 복용을 깜빡해 제대로 된 효과를 얻지 못하는 환자도 많다. 약만 잘 먹어도 많은 병을 치료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쁜 현대인들은 일상에 쫓겨 약 먹는 시간을 잊어 거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노년 층 환자의 경우 이런 경험은 더욱 많다.
잊지 않고 약을 제때 잘 챙겨먹을 수는 없을까. 인천 부평제일약국의 황재일 약사는 약사로 재직하면서 이런 고민을 더욱 많이 하게 됐다고 이야기 했다. 약국을 방문하는 환자들이 제조해 간 약을 잘 챙겨먹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고민하다가 결국은 직접 ‘365 안심약병’을 만드는 데 이르렀다.
뚜껑을 열면, 요일이 표시 돼요
황재일 약사는 올해 약사 경력 14년차에 접어드는 전문 의료인이다. 약사로써 환자들과 매일 얼굴을 마주하면서 그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약 챙겨먹는 게 일’ 이라는 어르신들의 푸념 아닌 푸념이었다.
“약사라면 누구나 공감할 거예요. 환자분들께 약을 제조해 드리면서 꾸준히 복용할 것을 당부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간단한 건데 사실 또 굉장히 번거로운 일이기도 하죠. 생활이 바쁘니까 약 복용을 매일 체크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죠. 우리가 일상에서 스스로 기억하지 않더라도 이를 체크해주는 시스템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각만 갖고 있었는데 어느 날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결국 이것을 제품화 하는데 까지 이르렀습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른 후 황재일 약사는 손에 잡히는 약병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약병에 요일이 표시 되도록 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다. 보통은 약 먹은 걸 잊지 않으려고 달력에 표시를 하거나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도록 병에 체크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체크 시스템’을 아예 뚜껑에 장착시킨다면 보다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세계보건기구에서도 복약 순응도를 개선하는 것이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것보다 인류건강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제때 약을 복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저는 ‘자동 요일 표시 뚜껑 기술’을 이용해 ‘365 안심약병(Smart Medicap)’을 만들었습니다. 약을 먹기 위해 뚜껑을 돌려 열면 뚜껑에 표시된 요일이 자동으로 변경돼 약 복용 사실을 스스로 표시해주죠. 아주 단순한 기능이지만 복용 여부를 잘 기억하지 못해 발생하는 중복복용 혹은 복용을 거르는 현상을 예방해 줍니다. 이를 통해 유발되는 약물사고 역시 예방할 수 있겠죠. 의도하지 않은 미복용을 사전에 방지함으로써 정상적인 치료에도 도움을 줄 것이고요.”
어려서부터 주위에 있는 재료를 활용해 물건을 만들거나 고장 난 가전제품을 고치는 걸 좋아했던 그는 이번 아이디어 역시 직접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조금씩 구체화 시켜 나갔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판매가 돼야 하는 제품으로 연결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아이디어의 실질적 구현이 막힐 때쯤, 그는 창조경제타운의 지원사업 소식을 접하고 문을 두드렸다.
“제 아이디어에 대한 전문가의 시선, 궁금했죠”
“사실 저는 한 번도 어떤 일의 사업화를 시도해본 적이 없어요. 지금까지 약사로만 지내왔기 때문에 사업화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일을 진행하며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가고 찾아가는 시간을 가져야 했습니다. 이런 시간이 다른 사람에 비해 몇 배는 들어간 것 같아요. 또한 약국을 운영하면서 부가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물리적인 시간도 부족했어요. 결국 혼자 힘으로 과정을 헤쳐 나가기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면 수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때 우연히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다가 창조경제타운이 열린다는 정보를 접하게 됐어요. 경험은 없지만 아이디어를 구현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도와주는 시스템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지원을 하게 됐습니다. 아이디어를 올리고 나니 정말 연락을 주시더라고요. 이후 지금까지 진행이 된 거죠.”
황재일 약사는 창조경제타운을 통해 주로 온라인 마케팅과 온라인 마케팅 교육, 그리고 마케팅 비용에 대한 지원을 받고 있다. 경기테크노파크에 있는 김태호 멘토로부터 온라인 홍보와 마케팅에 대해 지도를 받음으로써 모바일 홈페이지 제작과 검색엔진 키워드 광고, 네이버 스토어 팜을 통한 제품 판매, 제품 홍보 동영상 제작, 홍보 블로그 리뉴얼 작업 등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는 중이다.
“이 외에도 앞으로 출시될 다음 제품에 대한 내용도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이후 준비하고 있는 제품은 현재보다 기능이 좀 더 개선된 업그레이드 버전이에요. 이 역시 아이디어만 있었고 비용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부담이 많았어요. 이에 대해 윤길상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금형 담당 박사님께서 도움을 주고 계세요. 현재 시제품 단계에 있습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아이디어. 많은 사람들이 생활 속 불편함을 제거할 수 있는 발상을 떠올리지만 이를 구체적인 사업 아이템으로 발전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그만큼 사업화는 쉽게 결정내리기에는 단호한 결심이 필요하다.
“저 역시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연결 짓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특히 약사로서 오랫동안 재직했기 때문에 제품을 만들고 파는 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죠. 사업화 결정을 내리기 전 망설이기도 했죠.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수도 없이 한 것 같아요. 하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서는 하나 하나 단계적으로 밟아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디어가 나왔으니 특허를 내볼까 했을 때 등록이 됐고, 확보된 권리로 조금씩 사업아이템으로 확장해 나갈 수도 있었어요. 신중하게 생각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물론 중간 중간 어려움도 있었어요. 걱정 되는 순간들도 있었죠. 서두르지 않고 한 발씩 걷다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것 같습니다.”
황재일 약사는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만드는 것과 동시에 디자인 작업에도 많은 비중을 뒀다. 알약을 형상화 한 제품이 용기 디자인은 올 초 독일 뮌헨에서 열린 ‘2014 iF(international Forum)디자인 어워드’ 에서 골드(Gold)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의 아이디어는 지난 해 말 진행된 '2013 대한민국지식재산대전'에서 WIPO(세계지식재산기구) 사무총장상도 수상했다.
“아이디어 사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좋은 아이디어’ 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실생활에서 정말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사용자가 만족할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창업을 시도하는 것은 성공을 안겨다 줄 수도 있지만 실패의 위험성도 상당부분 안고 있는 일이죠. 자신의 아이디어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한 후 실용화 가능성이 충분히 보인다고 생각한다면 사업화에 도전해 보시라고 권유하고 싶어요. 사업 성공 여부와는 별개로 그 과정에서 얻는 경험이 큰 재산으로 남을 것입니다.”
-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 저작권자 2014-10-1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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