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펜싱이 명실 공히 최고의 효자종목으로 부상했다. 이번 2014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대표단은 펜싱 국가대표팀이 금메달 8개를 따내는 수훈에 힘입어 종합 2위를 향한 쾌조의 순항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한국 펜싱 국가대표팀의 금메달 잔치는 비인기종목의 설움을 딛고 따낸 것이어서 그 기쁨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번 금메달 잔치의 일등공신은 뭐니 뭐니 해도 선수들이다. 야구, 축구, 피겨스케이팅 등의 인기 종목과는 달리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종목임에도 불구하고, 2014 인천아시안게임을 대비해 선수들은 묵묵히 피나는 훈련을 소화했다.
그 결과,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의 여세를 몰아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좋은 성적을 낸 것이다. 여기에다 한국 펜싱이 선전하는데 큰 조력을 한 것이 바로 과학적 훈련이다.
펜싱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기술의 요소요소에 과학이 숨어있다. 대표선수단은 이번 대회를 대비해서 철저한 과학적 훈련을 실시했고, 이를 통해 기량과 체력을 배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재성 한국 펜싱 국가대표팀은 평소에도 “체격의 열세는 많은 연습을 통한 체력과 풋워크 강화로 극복하는 것"이라며 펜싱 훈련의 과학화를 강조하고 있다. 검술에 과학이 가미된 것이 바로 현대의 펜싱 경기다.
펜싱의 백미는 찌르기
16세기말 영국의 귀족들 간에는 명예가 생명보다 귀중한 것으로 간주됐다. 이를 지키기 위해 성행한 것이 바로 결투이었다. 결투가 성립되면 그 방법은 당시에 주로 사용됐던 길고, 얇으며, 찌르는데 적합한 칼날을 가진 레이피어검(Rapier sword)을 갖고 하는 펜싱 대결이었다.
이 검은 현대 펜싱 검의 초기 모델로 알려져 있는데 귀족들은 만약의 결투에 대비해 평소에 이 검으로 펜싱을 배우고, 수련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이피어 검술은 초기에는 한손에 검, 또 한 손에는 방패를 들고 상대방의 검을 막는 방식도 있었지만, 점차 방패는 망고슈라 불리는 단검으로 바뀌었다.
고수들은 상대방 검의 찌르기 공격이 들어오면 왼손에 든 단검으로 먼저 막고, 오른손의 레이피어검으로 상대의 검을 휘감아 돌려서 떨어뜨리는 동시에 급소를 찌르는 공격방식을 주로 사용했다. 이 기술은 특히 할리우드 액션 영화‘쾌걸 조로(Zorro)’에서 주인공 조로가 선보여 관객들을 펜싱의 매력에 빠져들게 했다.
그러나 이는 매우 고도의 테크닉이었고, 실제의 결투에선 그런 현란한 검술보다는 한 순간의 찌르기로 상대방의 심장을 찔러 승자가 되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이런 펜싱 기술은 현대의 스포츠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올림픽에서 치러지는 펜싱 경기를 보면 종이 울리자마자 격돌한 두 선수의 승패는 매우 짧은 순간에 결정 난다. 한 마디로 0.1초 찰나의 승부 세계가 바로 펜싱 경기다.
이는 펜싱의 경기방식이 에페, 플뢰레, 사브르 등 3가지로 나뉘고, 각 종목마다 다른 규칙을 쓰지만 팡트(Fente)라 불리는 동작이 공통으로 응용되는 이유가 된다. 팡트는 가장 중요한 공격의 기본 동작으로 빠르고 정교하게 찌르기 위해 선수들은 매우 과학적 방법으로 반복 훈련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학적 훈련의 결과로 승리
지난달 24일 경기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의 펜싱 경기 결승에서 한국 여자대표팀은 중국을 물리치고 대회 5연패를 달성했다. 이날 맏언니 남현희(33) 선수의 기량은 단연 발군이었다.
플뢰레 선수로서 불리한 150cm대의 단신인 그녀가 장신의 중국 선수들을 물리칠 수 있었던 비결은 수도 없는 반복 훈련과 경쾌한 풋웍을 위한 스텝 훈련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뒤로 가볍게 스텝을 밟다가 번개처럼 허점을 노려 길게 내찌르는 그녀의 팡트 동작에 중국 선수는 계속 급소를 허용했다.
플뢰레의 팡트는 검을 든 오른팔을 곧게 앞으로 뻗으면서 오른발을 앞으로 크게 내딛는 동작이다. 동시에 검을 상대방의 상체 유효면을 향해 180도의 각도로 정확하게 겨냥한다. 이때 검에 실리는 가속도는 지면을 밟는 뒷발의 추진력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전문가들은 “팡트 동작 시, 찌르기가 시작되면 앞발의 운동에너지로 인해 뒷발을 축으로 몸이 앞으로 기울며 동시에 뒷다리의 추진력은 전신에 추력을 주어 검의 끝속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즉, 신체의 힘을 가해주는 유일한 부분이 뒷발이므로 뒷다리를 힘 있게 펴기 위해서는 발과 바닥사이의 지면반력의 원리를 이용한다. 지면반력이란? 인체가 중력으로 지면을 누를 때, 이와 똑 같은 힘이 몸으로 되돌아오는 작용/반작용 법칙을 말한다.
이때 발바닥이 넓게 오래 지면에 닿아 있을수록 힘을 크게 할 수 있다. 만약에 반작용이 충분치 않거나 발을 잘못 디디면 발이 미끄러져 실패하기 쉽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다른 한편으로 스텝도 펜싱의 공격과 방어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다. 펜싱계의 유명한 지도자 헨리(Henry)는 “풋워크(Footwork)를 강조하는 운동으로 재빠른 스타트 및 급정지, 방향 전환, 페인트 등은 우수한 선수가 갖추어야 할 기본 조건”이라고 말했다.
이번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남 선수의 스텝은 마치 복싱 선수처럼 경쾌했고, 이 풋워크 동작은 상대방으로부터 공격 타이밍을 빼앗고 기선을 제압하는데 주효했다는 평이다. 플뢰레의 경기 규칙은 심판의 시작 선언 이후, 먼저 공격을 시도하는 선수에게 공격 우선권이 인정되므로 빠르고 경쾌한 스텝이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 선수들의 훈련은 한국체육과학연구원(KISS)의 과학 프로그램을 통한 철저한 펜싱 동작 분석 기술을 토대로 이뤄졌다. 금메달을 향한 열망, 피나는 훈련 그리고 과학 프로그램이 바로 이번 아시안게임 금메달 수확의 일등공신이 된 것이다.
- 조행만 객원기자
- chohang3@empal.com
- 저작권자 2014-10-0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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