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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객원기자
2014-07-23

비정질 금속 생성원리, 부양장치로 규명 [인터뷰] 이근우 KRISS 광도센터 박사 및 강동희 박사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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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구진들에게 주목받는 소재 중 비정질 합금이 있다. 이는 원자들이 무질서하게 배열된 액체 구조가 굳어 만들어진 것으로,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유리를 언급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금속의 경우 원자가 주기적으로 배열된 결정구조를 갖고 있다. 하지만 금속을 녹인 후 급속히 냉각을 하게 되면 산화물 유리와 유사하게 원자들의 배열구조가 무질서해 진다. 이것을 비정질 합금이라고 이야기 한다.

국내 연구진이 부양장치를 이용해 비정질 금속의 생성원리를 규명했다. 이근우 KRISS 광도센터 박사와 강동희 박사후 연구원이 숙련된 기술 노하우를 거쳐 연구를 진행, 연구결과는 그 성과를 인정받아 '네이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 최신호에 게재됐다.

구체적인 메커니즘 밝혀… 향후 연구발전에 기여

 이근우 KRISS 광도센터 박사(좌) 와 강동희 박사후연구원(우) ⓒ 황정은
이근우 KRISS 광도센터 박사(좌) 와 강동희 박사후연구원(우) ⓒ 황정은

"합금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결정상을 이야기 합니다. 합금을 녹이면 액체에서 결정상이 되는데 이것을 다시 급속하게 냉각시키면 결정이 아닌 비결정 상태가 되죠. 즉, 유리 같은 형태가 됩니다. 비정질 합금은 결정상이 아닌 무질서의 유리형태 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유리창을 생각하시면 돼요. 그 중에서도 비정질 합금은 금속유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같은 유리라도 산화물의 경우 빛이 투과돼서 사물이 눈에 보이고 비정질은 빛이 투과 되지 않아요. 자세히 보면 유리창은 위쪽보다 아래쪽이 더 두껍습니다.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물질이 흘러내려서 그래요. 유리라는 게 액체를 압착한 것인 만큼 어느 정도의 점성이 있습니다. 그 액체가 시간이 흐를수록 흘러내리는 거죠."

그간 벌크 비정질 금속이 특정 조성비에서만 생성되는 것에 많은 논란이 이어진 바 있다. 벌크 비정질 금속은 금속이 용융된 후 어는 점 이하로 과냉각 돼 굳어진 물질로, 이러한 금속 유리는 골프 헤드나 테니스 라켓, 야구 방망이 같은 스포츠 용품과 휴대폰 케이스, 시계, 의료용 도구 등 다양한 곳에 사용된다. 하지만 금속유리가 특정 조성비에서만 형성되는 구체적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아직 분명하게 알려진 바가 없어 많은 논란이 됐다.

기존에는 금속유리가 형성되는 주요 원인으로 높은 액체밀도와 강한 점도, 이 두 가지가 주목받았으나 과냉각 액체의 밀도와 점도를 측정하는 것이 어려워 확실한 원인 규명은 어려웠다. 그러나 벌크 비정질 금속의 형성 메커니즘을 알게 되면 다양한 비정질 금속 신소재를 개발하는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으므로 이를 규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안으로 여겨져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규칙적인 결정 구조의 고체 금속을 용기에 담아 고온에서 액체 상태로 만든 뒤 급랭시키면 유리와 같은 액체구조의 비정질 금속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비정질 금속은 강도와 탄성이 크게 높아져서 변형이 용이하다. 가벼우면서도 철이나 티타늄보다 더 강도가 세고, 다양하게 주조할 수 있어 일반적인 스포츠 용품부터 특수한 우주용 부품까지 무궁무진하게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비정질 금속 소재를 원하는 용도로 쉽게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이의 생성 메커니즘을 명확히 아는 것이 필수다. 지금까지는 금속을 녹이는 과정에서 높은 온도로 인해 금속을 담은 용기가 같이 녹거나, 금속과 용기가 접촉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기에 금속 자체에 대한 물성변화만 측정하는 것이 어려웠다.

"예를 들어볼까요. 컵에 얼음이 들어있다고 가정해 볼게요. 열을 가하면 얼음이 녹겠죠. 하지만 컵이 얼음의 녹는점보다 낮을 경우 얼음이 녹기도 전에 컵이 먼저 녹게 될 거예요. 이번 실험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속을 녹이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열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3천도에 녹는 금속을 용기에 넣었다고 할 경우 금속을 녹이려면 3천도 이상의 온도가 필요하죠. 그렇다면 용기는 과연 이 과정을 버틸 수 있을까요? 즉, 고온으로 갈수록 용기의 특성이 중요해지는 겁니다. 기존에는 이러한 한계에 막혀 연구가 진전을 갖기에 어려웠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근우 박사와 강동희 연구원은 금속과 용기의 접촉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자체적으로 개발한 '정전기 공중 부양장치'를 이용, 금속만 공중에 띄우는 획기적인 방법을 도입했다.

정전기 공중부양 장치를 보유한 나라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네 곳에 불과하다. 미국(NASA)과 일본(JAXA), 독일(DLR) 등 선진 항공우주국에서만 보유하고 있는 첨단 장비인 것이다. 2010년 KRISS가 자체 개발한 해당 장비는 초고온 소재 물성을 연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핵융합 및 항공우주 분야 등 극한 환경에서 필요한 부품개발에 활용되고 있다.

첨단장비인 만큼 이를 활용하는 기술 역시 쉽지는 않다. 다른 첨단 기기의 경우 값을 측정하고자 하는 물질을 집어넣은 후 기기의 계산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지만 정전기 공중부양 장치는 실험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계속 지키고 앉아 있어야 한다. 공중에 떠 있는 물질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컨트롤 값을 지속적으로 바꿔줘야 하기 때문이다.

"정전기 공중부양 장치 안에 금속시료를 놓고 금속 무게만큼의 전기장을 걸어주면 금속이 공중으로 부양합니다. 이 때 레이저를 쏘이면 부양된 상태의 금속을 고온의 액체로 만들 수 있어요. 저희 팀은 액체로 만든 이후 어는점 이하에서 과냉각 액체 상태를 유지하면서 고체 결정으로 변하는 시간을 측정했어요. 그 결과 계면 에너지가 클수록 고체 결정으로 변하는 시간이 길어져 비정질 금속이 효과적으로 생성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죠."

연구성과 비결은 장치 활용 노하우

이근우 KRISS 광도센터 박사팀이 정전기 공중부양장치를 통해 Cu-Zr(구리-지르코늄) 금속에 레이저를 쏘고 있다.  ⓒ KRISS
이근우 KRISS 광도센터 박사팀이 정전기 공중부양장치를 통해 Cu-Zr(구리-지르코늄) 금속에 레이저를 쏘고 있다. ⓒ KRISS

이근우 박사팀은 좋은 연구 결과를 얻을 수 있던 이유에 대해 "장치를 활용하는 노하우의 역할이 컸다"고 이야기 했다. "장치 자체에 대한 성능보다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의 기술적 노하우에 비결이 있다고나 할까요.(웃음) 장치를 능숙하게 컨트롤 하는 것의 비결은, 결국 반복실험입니다. 이 장비는 운용법을 배우는 데만 최소 6개월이 걸려요. 워낙 복잡하고 어떻게 구동되는지 원리를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도 오래 걸리죠. 특히 혼자서 온전히 장비를 운영해야 할 때가 정말 긴장 되는데 가열할 때는 에너지 파워가 워낙 세기 때문에 많이 위험합니다. 현재 연구를 할 때 온도는 1200도, 1300도 까지 올립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2000도까지 높이기도 하죠."

장비활용법의 팁을 물어보자 이근우 박사는 "업계 비밀"이라며 웃어 보였다. "그런데 확실한 건, 대단히 공을 들여야 하는 연구이자 장비라는 것입니다. 연구실에 한 번 들어가면 실험이 끝날 때 까지는 절대 나오지 못해요. 뿐만 아니라 실험을 진행하는 당일 하루 전부터 준비를 해야 하죠. 진공 상태를 만들려면 하루의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오전부터 실험을 진행하면 오후 4~5시까지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특히 실험이 잘 되는 날은 좋은 값을 더 많이 얻기 위해 밤까지 한 자리에 앉아있기도 한다.

"현재 저희가 할 수 있는 온도는 3천도까지 입니다. 하지만 레이저파워가 충분하다면 그 이상도 가능해요. 지구상에서 녹는점이 가장 높다고 알려진 텅스텐의 경우도 한 번 시도해볼만한 물질이에요. 특히 저희 연구는 공중에 시료를 띄어 놓으니까 물질을 담을 용기가 필요 없죠.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실생활에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은 매우 많습니다. 핵융합로의 경우 플라즈마 온도가 1억도 정도입니다. 하지만 용기의 소재 온도는 그렇지 않죠. 때문에 기존 연구가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고요."

이번 연구와 관련, 이근우 박사는 "비정질 합금은 굉장히 많은 원소를 섞어 만든다"며 "때문에 이야기가 복잡한 것이다. 우리는 두 개의 원소만으로 실험을 진행했는데도 논란이 많았다. 바로 이것이 비정질 합금이 만들어지는 이유에 대한 논란인 셈이다.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비정질이라는 게 액체가 과냉각 상태에서 굳어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즉 과냉각 상태에서의 안정성이 비정질 합금이 생기는 굉장히 중요한 메커니즘인 것이다. 우리팀의 연구는 이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며 연구기 지닌 의미를 이야기 했다.

"연구의 연장선에서 다 조성비에 대한 실험을 진행할 겁니다. 세 개의 성분으로 늘려갈 예정이에요. 그렇게 성분을 늘려서 우리가 진행한 실험이 잘 맞아 떨어지는지 알고 싶어요. 무엇보다 이런 연구들은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는 게 아닙니다.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죠. 극한 물성을 연구하는 만큼 융합적 성격도 매우 강합니다. 단기적이고 일차원적인 시각이 아닌 보다 입체적인 시각과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황정은 객원기자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4-07-2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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