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과학의 화학분야와 신소재분야 등에서 주목받고 있는 나노다공성 물질. 환경문제와 에너지 문제가 전 지구적 이슈로 언급되면서 나노다공성 유기금속체(MOF, Metal-Organic Framework)는 중요한 연구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산화탄소 등의 물질을 흡착함으로써 지구 온난화 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안이 될 수 있으며 이산화탄소 농도 역시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의 이산화탄소 측정 센서는 상온에서 이산화탄소와 산소, 수증기 등을 구별하지 못해 이산화탄소 농도 측정의 정밀도가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고온에서만 작동하거나 가격이 매우 비싸 접근성이 낮다는 점 역시 단점으로 지목되곤 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신물질을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정낙천 DGIST 신물질과학전공 교수팀이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스토다트(F. Stodart) 교수팀과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 이산화탄소 분자를 화학적으로 자유롭게 흡․탈착할 수 있는 나노다공성 유기금속구조체(MOF, Metal-Organic Framework)를 개발한 것이다.
이산화탄소 선택성 갖는 신물질
‘나노다공성 유기금속구조체’는 학문적으로 MOF(Metal-Organic Framework)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름을 유심히 살펴봐도 알 수 있듯 이 말 자체에 물질의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금속(Metal)과 유기물(Organic), 그리고 격자구조(Framework)를 갖는 물질. 여기에 무수히 많은 나노크기의 세공을 규칙적으로 담아내고 있어 '나노다공성' 이라는 용어까지 붙었다.
"나노다공성 물질에는 유기금속구조체 말고도 그 종류가 몇 가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물질로 ‘메조다공성물질’과 ‘제올라이트’가 있죠. 이들 물질과 나노다공성 유기금속구조체의 차이점을 이야기 하라면 물질을 구성하는 성분을 들 수 있어요. 제올라이트는 모래성분인 규산염 성분으로 구성돼 있고 유기금속구조체는 금속이온과 유기물질로 이뤄져 있죠. 별 차이가 아닌 듯하지만 과학 하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현재 밝혀진 유기물만 해도 매우 많은 종류가 있어요. 수십 가지 금속이온과 수억 가지 유기물을 조합해 합성하면 정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유기금속구조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게 큰 장점이기도 하죠. 그런데 그 많은 종류라는 것이 화학자입장에서 보면 구조체에 변화를 줄 수도 있고 격자를 이루는 기둥에 화학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단위체들을 매달 수도 있어요. 결국 구조적 변화 또는 화학적 변화를 줘서 다양한 종류의 유기금속구조체를 만들 수 있는 거죠. 이러한 다양성 때문에 근래 들어 유기금속구조체가 흡착과 촉매, 에너지변환 등에 관한 연구대상물질로서 전 세계적으로 조명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호흡하는 대기 중의 질소와 산소, 혹은 수증기처럼 이산화탄소는 탄소원자 하나와 산소원자 두개가 직선으로 연결된 매우 작은 분자로 이뤄져 있다. 유기금속체는 나노세공을 갖는 특징적인 구조이기에 이산화탄소 같은 작은 분자를 잘 흡착한다.
정낙천 교수팀이 연구에서 새롭게 발견한 것은 특별한 화학구조를 갖는 유기금속구조체 나노기둥에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상이다. 결합 전과 후에 전기전도성이 달라지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이산화탄소 흡착량에 따라 전기전도성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정 교수는 "역으로 생각하면 전기전도성을 관찰해 흡착된 이산화탄소의 양을 추적할 수 있다"며 "발상의 전환이다. 이러한 아이디어에 착안해 유기금속구조체를 이산화탄소 센서로 활용했다"고 이야기 했다.
정낙천 교수가 언급한 대로 개발한 신물질은 루비듐 금속이온(Rb+)을 기반으로 한 유기금속구조체로써 상온에서 이산화탄소에 대한 선택성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이산화탄소 농도를 더욱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 또한 화학적으로 흡착된 이산화탄소 양의 변화에 따라 유기금속구조체의 전기전도성 값이 변화하는 현상을 확인하고 상온에서도 이산화탄소 농도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센서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유기금속구조체를 이산화탄소 센서로서 상온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봤습니다. 상온에서 이산화탄소를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해당 물질을 센서 소자로 구현했을 때 그 소자가 상온에서 구동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해요. 물론 기존의 상용화된 이산화탄소 센서가 있긴 하지만 가능성 측면에서는 유기금속구조체 물질도 향후 좋은 성능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죠."
센서로 작용하는 유기금속구조체를 이야기하기 전, 화학센서의 기본조건을 알 필요가 있다. 화학센서는 기본적으로 '가역성', '응답성' 그리고 '선택성 이라는 세 가지 특징을 가져야 한다. ‘가역성’은 센싱 화학종의 흡·탈착이 가역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을 의미하며 ‘응답성’은 흔히 화학종이 흡착했을 때와 탈착했을 때 응답신호가 변화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때 응답신호의 크기는 클수록 좋다. 더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선택성'으로, 이는 특정 화학종을 선택적으로 검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낙천 교수팀의 연구는 이 선택성을 높였다고 볼 수 있다.
"기존 이산화탄소 센서들은 금속산화물로 구성돼 있습니다. 센싱하고자 하는 화학종이 금속산화물 표면에 흡착했을 때 전기적인 신호의 크기가 변하는 원리를 갖고 있죠. 그런데 상온에서는 금속산화물 표면에 이산화탄소보다 산소, 수분, 녹스(NOx, 질소산화물) 등이 더 잘 흡착합니다. 즉, 상온에서는 선택성이 조금 떨어지는 편이라고 할 수 있죠. 이에 따라 착안된 방식이 이산화탄소 아닌 분자들을 탈착시키는 과정이에요. 금속산화물의 온도를 섭씨 200~400도 이상으로 높여 불필요한 분자들을 분리시키는 거죠."
바로 이 지점에서 비용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온도를 매우 높이 올려야 하는 만큼 필요한 에너지의 양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낙천 교수팀의 연구가 주목을 받는 것이다. 정 교수팀이 개발한 유기금속 구조체는 상온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착할 수 있다.
"하지만 저희 연구의 한계도 분명 있어요. 매우 희박한 농도, 가령 수 ppm 이하의 농도를 갖는 이산화탄소 양을 검출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를 좋게 평가해 주시는 이유는 신물질로서 주목받고 있는 유기금속구조체를 지금까지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방식으로 응용했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향후 해당 신물질을 박막형태 필름으로 합성하는데 성공하면 낮은 이산화탄소 농도에서도 응답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저희팀이 연구하면서 그 가능성을 봤습니다. 낮은 가능성이더라도, 그것을 본 것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 성패를 좌우하는 관찰의 힘
정낙천 교수팀의 이번 연구는 화학분야 최고 권위지로 불리는 '잭스(JACS)' 저널에 게재됐다. 연구과정이 결코 녹록치 않았을 것임에도 정낙천 교수는 "연구 과정 가운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 지나간 것이 되고나니 어떤 어려움이었는지 크게 기억나지 않는다"며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그렇다고 연구과정이 쉬웠다는 건 결코 아닙니다. 늘 최선을 다했어요. 하나의 현상을 관찰하고 또 관찰했죠. 사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좋은 연구결과를 내놓고 '운이 좋았다'고 이야기 하듯,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학생들과 함께 연구를 하다보니 그 운을 획득하는 학생들과 그렇지 못한 학생이 있는 것 같더군요. 운은, 어떤 특이한 현상을 관찰할 때 결국 그 거기까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제는 바로 그 다음인데 연구를 성공시키는 학생들은 여기까지 수행하는 것 같아요. 계속 관찰하고 탐구하는 거죠."
현상을 본 후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파악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과정. 더불어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정낙천 교수는 이 과정들은 결코 운이 아니며,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은 바로 이 지점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정낙천 교수는 후학들에게 '운은 얻어지는 게 아니라 획득하는 것' 이라고 끊임없이 이야기 한다.
정낙천 교수의 이번 연구는 지난 2009년부터 약 3년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에 박사연구원으로 지내면서 친분을 쌓은 제레미아 박사와의 대화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잭스' 저널에 나온 논문을 살펴보다가 제레미아 박사가 쓴 논문이 눈에 띄어 자세히 읽어봤더니 이산화탄소를 흡착하는 유기금속 구조체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던 것이다. 이때 정 교수는 번뜩, 했고 이산화탄소 센서로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곧장 제레미아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료를 보내 달라고 요청하면서 동시에 센서 공부를 시작했다.
"미국 연구진들과 공동연구를 하다 보니 시차가 가장 걸림돌이 되더라고요. 노스웨스턴대학은 시카고에 있는데 대한민국과 약 14시간의 차이가 납니다. 겨울에는 15시간 차이가 나죠. 가령 그쪽이 낮 12시면 이쪽은 새벽 2시 혹은 3시에요. 그래서 이메일이나 전화통화를 하느라 밤을 꼬박 새는 날이 많았어요."
정낙천 교수팀의 이번 연구는 지금까지 개발한 것보다 앞으로 개발될 결과가 더욱 기대를 받고 있다. 개발한 물질을 얇은 박막형태 필름으로 전도성 기판위에 합성하고 그 위에 금속전극을 자유자제로 입혀 소자화 하는데 성공한다면 실질적으로 고성능 이산화탄소 센서로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적으로도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많은 센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흔하게는 스마트폰 터치스크린을 들 수 있죠. 물론 이 경우 화학센서는 아니지만요. 이러한 추세가 확대된다면 가까운 미래에 '1인 1화학센서'를 보유하는 시대가 도래 할 거예요. 이런 시대가 온다면 센서 산업과 더불어 산업적·경제적 효과 이외에도 스마트폰의 전례와 같이 새로운 사회적 문화를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 저작권자 2014-06-1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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