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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우주
황정은 객원기자
2014-05-20

별을 더욱 밝게 보여주는 분광기 [인터뷰] 박찬 한국천문연구원 핵심개발본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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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광이나 다른 방사선이 프리즘을 투과하면 파장에 따라 굴절률이 달라진다. 백색의 광선이 프리즘을 통해 파란색에서 붉은색까지 무지개빛처럼 나눠지는 것이다. 이처럼 한 빛이 서로 다른 색으로 분산하는 현상을 일컬어 ‘분광’이라고 한다. 분광기란 이러한 빛의 스펙트럼을 계측하는 장치로써 빛을 얼마나 자세하게 나누느냐에 따라 고분산, 중분산, 저분산 등으로 나뉜다.

우주관측에서 분광기는 우리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분광기를 망원경에 장착해 관측하면 천체가 움직이는 속도나 구성성분 등 우주 및 지구의 적외선 영상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어 과학연구과 대기관측 등을 가능케 한다.

국내 연구진이 적외선 우주관측 분광기를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해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의 박찬 핵심개발본부 박사팀이 미국 텍스사 대학과 함께 연구를 진행해서 적외선 우주관측 장비인 ‘적외선 고분산 분광기(IGRINS, Immersion GRating INfrared Spectrograph)’ 개발에 성공하고 천체관측에도 성과를 보인 것이다.

박찬 한국천문연구원 핵심개발본부 박사 ⓒ 황정은
박찬 한국천문연구원 핵심개발본부 박사 ⓒ 황정은

 

넓은 파장범위를 더욱 세분화 되게

박찬 박사팀이 개발한 적외선 분광기는 기존에 사용되고 있는 분광기와 비교했을 때 넓은 파장범위를 한 번에 관측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특히 기존에는 넓은 범위를 관측할 경우 고분산 분광이 어려웠지만 이번에 개발한 분광기는 넓은 파장범위를 더욱 자세하게 분화시킨다.

“개발한 분광기의 이름은 ‘아이그린스(IGRINS, Immersion GRating INfrared Spectrograph)’ 입니다. 자세히 보면 ‘이머전 그레이팅(Immersion Grating)’ 이라는 단어가 보이죠. 이 용어가 이번 연구의 핵심적인 특징이에요. 기존의 분광기들은 표면에서 빛이 반사하며 회절했습니다.

하지만 빛마다 경로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영역을 간섭하는 간섭현상이 발생했죠. 마치 잔잔한 호수에 두 개의 돌을 떨어뜨리면 각각 동심원 모양으로 물의 파장이 생기면서 서로의 동심원을 간섭하듯이요. 이런 현상을 간섭, 혹은 회절이라고 해요. 이러한 회절현상은 굴절률과 관련이 있어요. 즉 굴절률은 분산의 정도를 결정짓겠죠. 이번에 개발한 분광기는 고분산이라는 점에 특징이 있습니다.”

박찬 박사팀은 실리콘 매질 안에서 분산이 일어나게 했다. 진공 중에서 굴절률은 1이지만, 실리콘은 3.4의 굴절률을 갖고 있다. 매질 속으로 빛이 들어가면 빛이 속도가 1/3.4 로 줄어드는 것이다.

“‘이머전 그레이팅’ 이라는 개념은 200년 전에도 있었어요. 하지만 구현하는 데는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린거죠. 사실 아이그린스라는 고분산 분광기를 천문연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었지만, 이머전 그레이팅을 만드는 경험과 기술은 없었습니다. 때문에 텍사스 대학과 공동연구를 한 거죠. 해당 교수님께서는 이 분야를 20년 동안 연구한 분입니다.”

기존의 분광기는 좁은 영역에 대해서만 고분산 분광이 가능했다. 때문에 넓은 파장범위를 관측하려면 장비를 계속해서 옮기며 관측해야 했다. 그것도 번거롭지만 이후 관측한 정보를 취합하는 것 역시 꽤 번거로운 일이었다.

“개발한 분광기는 지상에서 관측이 가능한 적외선 영역인 H 밴드(파장 1490nm~ 1800nm)와 K밴드(1960nm~2460nm)의 범위를 동시에 관측할 수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어요. 천체의 물리적 특성을 더욱 자세히 이해할 수 있게 된 거죠. 기존의 다른 나라에서 개발된 적외선 분광기는 좁은 파장범위에 대해서만 고분산 분광이 가능했습니다.

특히 기존의 분광기는 부피가 크기 때문에 망원경에 직접 부착하기 어려웠어요. 저희 팀의 연구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한 거죠. 기존 크기에 비해 분광기의 크기를 1/10 작게 제작했기 때문에 망원경에 직접 장착하는 게 가능해졌고 이에 따라 빛의 손실도 최소화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박찬 박사가 언급했듯 기존의 분광기는 망원경에 직접 붙일 수 없었다. 커다란 크기로 인해 공간 한 곳에 고정시켜 놓은 후 광섬유를 이용해 빛을 끌어와야 했다. 이후 거울이나 렌즈를 이용해 분산시키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한 번 거울이나 렌즈를 사용할 때마다 빛의 손실은 감수해야 한다.

그렇기에 이번 연구가 망원경에 직접 부착한다는 간편함 뿐 아니라 거울과 렌즈를 거치지 않고 바로 빛을 분산할 수 있어 빛 손실도 최소화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박찬 박사팀의 연구와 비교할만한 타 연구팀의 결과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박찬 박사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비교대상은 없다”며 “다만 2년에 한번씩 천문관측 기기개발자들의 모임이 열리는데 거기서 발표된 한 논문을 봤다. 플로리다 대학에서 이머전 그레이팅 분광기를 만들었다고 하더라. 공식 발표된 건 아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와 경쟁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고 이야기 했다.

 

한국천문과학연구원은 미국의 텍사스 대학과 공동으로 개발한 적외선 분광기 개발에 성공했다. ⓒ 한국천문과학연구원
한국천문과학연구원은 미국의 텍사스 대학과 공동으로 개발한 적외선 분광기 개발에 성공했다. ⓒ 한국천문과학연구원

세계최고수준의 관측기술 확보할 것

분광기 개발에 대한 세계 각국의 관심은 매우 높다. 빛의 밝기를 측정하는 측광장비와 빛을 파장별로 분해해 분석하는 분광장비 중 천체의 구성 성분이나 천체가 움직이는 속도 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분광 관측이 월등히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에 현대 천문학에서는 분광기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박찬 박사가 이번 연구에 가담한 것은 지난 2009년부터다. 연구는 이전부터 진행 중이었지만 해당 분야에 정통한 연구자가 필요해 합류를 제안 받았다.

“연구과정이 셋업 될 때의 상항을 들어보니 이번 연구를 거대 마젤란 망원경(GMT)에까지 적용하려고 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현재 거대 마젤란 망원경은 여러 나라에서 출자해 건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천문연은 개발사업의 10퍼센트 지분을 출자했죠. 망원경 자체는 별빛을 모아주는 역할만 하기 때문에 이것을 과학적으로 의미있는 자료로 만들기 위해서는 관측장비가 있어야 해요.

분광기는 측광장비에 비해 월등히 많은 정보를 제공합니다. 별의 스펙트럼을 무지개처럼 나눠 별을 구성하고 있거나 차단된 구성성분을 알 수 있고, 탄소인지 수소인지를 알아내 함량에 뭐가 포함돼 있는지부터 그것이 얼마나 빠르게 운동하고 있는지까지 알게 해줍니다. 원자 하나, 분자 하나 하나가 얼마나 빠르게 운동하는지 알려주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포함하는 천체가 가까워지고 팽창하고 수축하는 등의 물리적 디테일을 알아낼 수 있어요.”

박찬 박사는 “거대 마젤란 망원경에 대한 한국의 투자는 유례가 없던 규모”라며 “그렇게 많은 투자금을 들여 망원경을 만드는데, 될 수 있으면 거기에 들어가는 관측 장비도 우리 손으로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모여 이번 연구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럴 경우 투자비의 일부도 회수할 수 있게 된다.

결국 5년의 연구 끝에 구현할 수 있었다. 과학적 측면에서 분산을 키워나간다는 것은 더욱 세밀하게 볼 수 있다는 의미인데 이번 연구는 보다 세밀하고 정밀한 기능을 가능케 해 우주에 대한 근원적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확보한 셈이다.

“난점에 부딪혔던 부분도 있어요. 무엇보다 다른 파트너 연구기관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것이어서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정확하게 절반의 책임과 소유권이 있는 연구거든요. 텍사스 대학교와 연구를 진행하며 언어문제나 공간, 시차 등으로 인해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극복하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가했어요. 연구 초기 2년과 후반기 2년 동안은 한 명의 연구원이 그 쪽으로 파견되기도 했어요. 그렇게 밤낮없이 커뮤니케이션을 했죠. (웃음)”

박찬 박사는 “현재 세계 천문학 계에서 한국의 연구는 상대적으로 높은 퀄리티를 산출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톱 10’ 은 물론이고 ‘톱5’  안에 들어가는 퀄리티를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과학연구를 위해 하기 위해 얻은 관측자료는 99퍼센트가 외국에서 만드는 망원경과 관측장비, 또는 위성의 자료다. 우리는 분석만 한 셈”이라며 “현재까지는 양질의 자료를 직접 생산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 거대 란 망원경 시대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이번 연구가 양질의 천체관측 자료를 직접 생산하고 세계 천문학계에 기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분광기와 거대 만델라 망원경, 그리고 천체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지속하면서 박찬 박사는 국내 과학문화의 현재에 대해서도 그동안 갖고 있던 생각을 언급했다. “천문연구는 곧 과학문화”라고 운을 뗀 그는 “천문연구는 한 번 좋은 성과가 나왔다고 해서 국가 경쟁력이 확 좋아진다거나 하진 않는다. 과거 200~300년 전 뉴튼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고 해서 그 나라의 경제력이 좋아진 건 아니지 않나(웃음)” 라고 말했다.

그가 이러한 이야기를 한 것은 과학을 보다 과학답게 접근하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박찬 박사는 과학기술의 새로운 개발을 통해 당장 실생활에 사용될 것을 기대하기 보다, 천천히 세대에 걸쳐 응용될 가능성을 기대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후배들에게 가끔 물어요. 천문학 연구 왜 하냐고요. 그리고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가 되면 좋겠냐고 되묻죠. 김구 선생이 <나의 소원>에서 ‘아무리 많아도 지나치치 않은 것은 문화의 힘’이라고 한 것처럼 과학문화를 키워나갔으면 합니다. 그런 면에서 천문학 만큼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해요. 연구원에 출근할 때마다 정문에 새겨진 글귀를 읽습니다. ‘우리는 우주에 대한 근원적 의문에 과학으로 답한다’ 이걸 사명으로 여기고 있어요.

저는 시간의 문제와 크기의 문제 등 근본적인 것에 답하기 위해 천문학을 연구합니다. 앞으로 이러한 연구를 보다 잘 하기 위해 지금까지 세계에 존재하지 않던 관측장비도 개발한 것이고요.”

박찬 박사는 장기적으로 국내 과학문화 발전에 일조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 했다. 그것을 위해 앞으로 5~10년 동안은 아이그린스 분광기를 만든 경험을 바탕으로 거대 마젤란 망원경에 장착할 1세대 분광기 개발에 더욱 힘쓸 예정이다.

“앞으로 연구에 더욱 매진해 세계 최고 수준의 관측기기 개발기술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황정은 객원기자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4-05-2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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