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극장 내부는 평소처럼 매우 조용했다. 영화 줄거리는 평범한 전쟁 영화의 한 장르처럼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영화가 중반에 이르자 서서히 관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젊은 여성 관객 몇 명이 뛰쳐나갔다. 관객 가운데는 흐느껴 우는 관객들도 생겨났다. 이상은 지난 90년 개봉된 영화 ‘마루타(Maruta)’가 상영되던 개봉관 내부의 모습이었다.
그만큼 일본 관동군의 악명 높은 생체실험을 다룬 영화 마루타의 내용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은 패전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전세를 회복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 세균무기도 그중의 하나.
1945년에 뇌물 수수로 예편당한 의학박사 이시이 시로(石井四郞) 박사가 731부대장에 부임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일본군의 세균전 연구를 부활시킨 장본인이 바로 그다. 그는 평소에 “일본은 섬나라로 인구도 적고 병력도 부족하다. 그리고 광물자원도 부족하기 때문에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아주 적다”라고 주장하면서 세균전 부활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런 정세 속에 향후 세균무기를 다룰 의학도로 키울 일본인 소년병들이 본국에서 소집돼 731부대로 온다. 그리고 이들은 특수 임무 수행을 위한 엄격한 교육을 받는데 그 교육 과정은 냉동 실험, 세균 실험, 독가스 실험, 폭파 실험 등으로 살아있는 인간 마루타를 대상로 한 잔혹한 생체실험이었고, 그 마루타들이 바로 조선인, 중국인, 만주인, 일부 러시아 포로들이었다.
영화가 상영될 때만 해도 731부대, 마루타, 세균 무기, 이시이 시로 등의 이름은 어렴풋하게 알려져 있었을 뿐이다. 영화가 개봉하자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지만 그래도 너무나 끔찍하고 비참한 마루타의 존재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영화 마루타의 내용은 정말 사실이었을까?
급속 전파되는 치명적 세균들
최근 하얼빈시 사회과학원 ‘731문제 국제연구센터’가 2차 대전 당시 731부대 관련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문건은 세균탄의 존재를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밝혀진 문건에 따르면, 731부대가 만들려고 했던 세균탄의 내용물은 바로 치명적이고, 급속하게 전파되는 세균들 위주이어서 2차 대전 당시 그들이 정말로 세균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그 세균탄의 내용물은 바로 페스트와 ‘탄저균(炭疽菌)’이다. 지난 2001년 ‘백색테러의 공포’로 잘 알려진 탄저균은 세균탄 0순위이었다. 전문가들은 “탄저균은 소, 말, 염소 등의 초식동물에게 탄저균이 감염되어 발생하는 질병이지만 사람이나 육식동물도 감염된 동물과 접촉을 하게 되면 전염될 수 있다”고 말한다.
피부와 소화기에 발생한 탄저는 증상이 약하지만 호흡기를 통해 감염된 탄저균은 감염 즉시 항생제를 투여 받지 않으면 치사율이 80~95%에 이른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보고서에 의하면 50kg의 탄저균 포자가 최적 기상조건에서 50만~500만 명의 인구를 지닌 20평방 킬로미터 넓이의 도시에 바람이 부는 가운데 2km의 선(線) 모양으로 살포되는 경우, 수십만 명이 사망할 것으로 조사됐다.
페스트(Pest)는 원래 야생 설치류가 옮기는 쥐벼룩에 의해 전파되는 전염병. 이 쥐벼룩에 물리면 감염된다. 페스트균이 사람 몸 안에 침입하면 림프관을 통해 국소림프절에 도달하는데 림프절의 괴사로 끝나는 가벼운 페스트병은 선(線) 페스트지만 혈관으로 페스트균이 빨려 들어가 패혈증을 일으키거나 폐에 폐페스트(Pneumonic Pest)를 일으키면 더욱 치사율은 높아진다.
장티푸스는 원인균인 살모넬라 ‘티피(Salmonella typhi)’가 장내 점막조직을 통해 단기간에 체내로 감염, 전신 발병을 일으킨다.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 매년 1천200만 명이 넘는 발병 환자가 보고되고 있다.
콜레라(cholera)는 수인성 전염병이며, 콜레라균(Vibrio cholerae)이 일으킨다. 전염력이 매우 강해서 지금까지 7차례의 세계적인 유행성 콜레라가 발생했다.
마루타를 대상으로 한 세균탄 실험
드디어 1933년 중국 하얼빈에 세균전 비밀연구소가 세워졌다. 이 부대는 훗날 관동군 방역급수부대라고 불리다가 1941년 8월부터 만주 731부대로 불리게 된다. 731부대는 알려진 대로 세균전을 연구했는데 인간에 사용할 수 있는 세균뿐만 아니라 가축들에게 사용할 수 있는 세균도 연구했다.
이를 위해 이 부대의 세균생산부에는 세균을 생산하는 데 사용하는 기자재와 시설들이 아주 풍부했다. 세균 배양에 쓰이는 큰 보일러만한 배양기가 4대 있었고, 용량이 1톤에 가까운 14대의 소독기는 한 대당 길이가 3m, 반경이 1.5m나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독기 하나에는 총 420개 정도의 배양액 시험관을 동시에 넣어서 세균을 기를 수 있었다. 그 외에 5대의 온도조절기, 8대의 소독기 및 일본에서 가져온 고압멸균기, 건조기, 세균배양기 등이 있어서 대용량의 세균을 배양할 수 있었다. 알려진 기록에 따르면, 731부대에서는 페스트균의 경우, 약 20g으로 500여 대의 배양기를 동시에 사용, 한 번에 약 10kg의 페스트균을 생산해내는 능력을 갖췄다.
이 문건에 따르면 731부대는 10종류의 세균탄 1천700발을 생산했고, 세균탄은 마루타들을 대상으로 잔인한 실험에 쓰였다는 것이 확인됐다.
731부대가 페스트균과 탄저균을 위주로 만든 세균탄의 모델이 바로 ‘도자기탄’과 ‘HA탄’ 이었다. 이것들을 통해 탄저균, 콜레라균, 페스트균 등을 실제 풀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군사 전문가들은 “세균전(細菌戰)은 3 가지 방법으로 활용된다. 그중 하나는 특공대가 적진에 잠입, 세균 내용물을 하천 등지에 직접 살포하는 것, 둘째는 포탄 안에 삽입해 포로 발사하는 것, 마지막은 폭탄을 만들어 항공기로 투하하는 것 등이다”고 설명한다.
영화 마루타에서는 마루타를 일정 간격으로 세워놓고, 세균탄을 항공기로 투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원래 세균탄은 그냥 폭탄 속에 페스트균에 감염된 쥐벼룩을 대거 투입, 항공기로 투하시키는 것이었다. 문제는 세균탄을 만재한 폭격기가 별로 멀지 않은 상공에서 적의 대공포에 격추된다면 역으로 일본군이 당할 피해와 이를 피하기 위해 고도를 높일 경우, 산소 호흡을 하는 쥐벼룩들이 모두 죽는 것, 폭탄 폭발 시에 쥐벼룩들이 모두 타죽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도자기탄. 금속 피복이 아닌 도자기는 작은 장약으로 낮은 고도에서 투하해도 잘 깨져서 이때 살아남은 페스트 쥐벼룩들이 튀어 나와 인간을 물어댈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마루타의 줄거리는 각종 사료, 밝혀진 문건, 당시의 군인들과 실제 마루타로 있었던 포로들의 증언 등에 의해 거의 사실로 밝혀졌다.
- 조행만 객원기자
- chohang3@empal.com
- 저작권자 2013-08-1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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