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나 벼룩 등의 곤충은 자기 몸의 몇 배에서 몇 십 배의 높이를 뛰는 것으로 유명하다. 점프에 적합하도록 발달한 뒷다리의 근육이 엄청난 에너지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생체역학에서는 근육이나 힘줄의 수축으로 인해 발생하는 의도적인 움직임을 ‘능동운동’이라 부른다. 그와 반대로 근육 이외의 힘으로 사지와 관절이 움직여지는 것을 ‘수동운동’이라 한다.
근육을 제거해도 곤충의 다리가 움직인다면 수동적인 힘이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연구진은 근육이 발휘하는 힘과 비슷한 수준의 또 다른 힘 즉 ‘수동 관절력(passive joint force)’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결과는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 최근호에 게재되어 표지를 장식했다. 논문 제목은 ‘수동 관절력은 곤충의 다리 사용에 맞게 조절되며 작업능력 없이도 운동을 유발한다(Passive Joint Forces Are Tuned to Limb Use in Insects and Drive Movements without Motor Activity)’다.
다리의 근육 덕분에 폭발적인 점프 가능해
어린 시절 여름방학에는 곤충을 채집해 과학 숙제로 제출하곤 했다. 잠자리나 파리처럼 날개가 달린 곤충은 하늘로 날아오르기 때문에 손으로 잡기가 쉽지 않다.
이와는 다르게 갑자기 뛰어오르는 바람에 무서워서 잡기 힘든 경우도 있다. 메뚜기, 방아깨비, 여치처럼 뒷다리가 긴 곤충들이다. 탁 하는 소리가 들리면 어느새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높이로 점프를 해서 도망가곤 한다.
메뚜기 종류는 앞다리, 가운뎃다리, 뒷다리 등 세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는데 각각 쓰임새가 다르다. 앞다리는 균형을 잡고 소리를 듣는 데 사용되고 가운뎃다리는 걸어 다닐 때 유용하다.
점프의 비결은 뒷다리에 있다. 뒷다리의 넓적다리마디와 종아리마디 사이를 연결하는 탄탄한 ‘근육’에 에너지가 저장되었다가 한꺼번에 분출되어 폭발적인 힘을 내는 것이다.
다리의 근육은 펴짐을 위한 신근(extensor tibiae)과 굽혀지게 하는 굴근(flexor tibiae)의 두 가지로 나뉜다. 신근이 에너지를 급격히 소모하면 스프링처럼 점프를 뛴다. 착지 후에는 굴근이 작용해 다리를 원위치로 가져다 놓는다.
그런데 최근 실험에서 근육이 아닌 메커니즘이 곤충의 다리에 작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 레스터대와 독일 쾰른대 공동 연구진은 곤충의 다리에서 신근과 굴근을 제거했는데도 운동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근육을 제거해도 관절의 힘으로 다리 움직여
근육과 그에 연결된 힘줄은 신축성이 강해서 에너지를 저장하기에 적합하다. 움직임을 통제하면 근육, 힘줄, 골격에 에너지가 축적되는데 신경신호를 전달해 통제를 풀면 한꺼번에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다. 일반적인 근육 수축으로는 어려운 높은 점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땅으로 내려온 후 다음 점프를 준비하려면 다리가 원위치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야 다시 에너지를 축적하기 때문이다. 신근의 급격한 능동운동 이후에 길항근으로 작용하는 굴근이 수동운동을 발생시킴으로써 다리가 모아진다.
그러나 연구진이 메뚜기의 다리에서 근육과 기타 조직을 모두 제거했는데도 다리가 저절로 오므려졌다. 관절에만 작용하는 별도의 힘이 존재하는 것이다. 굴근의 수동운동을 대체한다 해서 ‘수동 관절력’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신근의 힘이 강력하다면 점프 이후 다리를 되돌리는 과정에서 작용해야 하는 굴근의 힘도 커야 한다. 신근과 굴근이 균형을 맞춰야 일련의 동작이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
연구진은 메뚜기 이외에 다른 곤충으로도 실험을 진행했다. 대벌레와 비슷하게 생긴 말머리 방아깨비(horsehead grasshopper, 학명 Pseudoproscopia latirostris)가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머리 생김새가 말과 유사하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말머리 방아깨비는 다리가 길어서 근육의 작용을 명확히 관찰하기에 적합하다. 걷기에 특화된 가운뎃다리와 점프에 적합한 뒷다리를 비교하자 신근의 힘에 맞추어 수동적 관절력의 크기도 달랐다. 펴짐과 굽힘의 균형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체역학적 원리에 신경신호의 조절을 더하면 완벽한 점프 기계로서의 곤충이 탄생한다.
연구진은 새로 발견된 운동 메커니즘을 향후 로봇이나 의수, 의족을 개발하는 데 적용할 계획이다. 연구를 이끈 톰 매더슨(Tom Matheson) 교수는 레스터대 발표자료를 통해 “메뚜기나 방아깨비 같은 곤충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사람 심지어 로봇에까지 수동 관절력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 임동욱 객원기자
- im.dong.uk@gmail.com
- 저작권자 2013-08-06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