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고 박쥐가 초음파를 이용하여 목표물을 향해 정확히 날아간다. 그러나 목표물이 된 나방은 쉽게 먹이가 되지 않고 자신만의 무기를 사용하여 박쥐에 강력하게 저항한다. 나방이 가진 무기는 바로 박쥐가 가진 무기와 같은 초음파다.
나방은 박쥐의 초음파를 감지하여 예리한 공격을 피하면서, 때로는 자신의 초음파를 이용하여 박쥐를 혼란에 빠뜨린다. 강력한 교란신호 탓에 헷갈리던 박쥐는 길을 잃고 갈팡질팡하다 끝내 먹이를 놓친다. 이는 박각시과(Sphingidae)에 속하는 나방과 박쥐 사이에 실제로 일어나는 공중전의 한 장면이다.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사이언스데일리(Sciencedaily)는 미국의 과학자들이 매처럼 정지비행을 하는 모습이 비슷하다 해서 붙여진 호크모스(Hawkmoth)라는 이름의 박각시과 나방들이, 박쥐의 초음파를 방해하는 초음파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통해 포식자를 피하는 전술을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시켜 왔다고 최근 보도했다.
사이언스데일리는 나방들의 초음파를 통한 교란 전략이 생각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보도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 동물의 왕국에서 초음파를 통해 먹이를 찾는 일에는 최고의 능력을 가진 박쥐가 역시 초음파를 쏘는 박각시과 나방들 앞에서는 맥을 못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쥐의 초음파에 맞서는 방향으로 진화한 나방
박쥐와 나방은 오랜 세월 동안 먹고 먹히는 철저한 약육강식의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 결과 다른 동물들에게서는 보기 힘든 몇가지 독특한 특징들을 가지고 진화해 왔다. 박쥐의 대표적인 진화 기술로는 어두운 밤에도 문제 없이 비행과 사냥을 할 수 있는 초음파를 들 수 있다.
자동차의 내비게이션과 같은 역할을 하는 초음파에 의한 탐지 기술(Echolocation)은 박쥐 외에 고래나 돌고래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이들은 인간이 들을 수 없는 높은 주파수의 소리가 물체에 반사되는 것을 이용해서 장애물과 먹이를 식별하고 사냥할 수 있다.
반면에 나방은 발사하는 초음파를 조기에 감지하고 이를 회피하는 능력을 꾸준히 진화시켜 왔다.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수많은 나방 종류들 중에서도 불나방과의 나방들만이 박쥐가 내는 것과 유사한 위치측정용 초음파 신호를 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미 플로리다대의 자연사박물관 소속의 연구진이 “박각시과에 속하는 나방들도 불나방과의 나방처럼 초음파 신호를 내서 박쥐를 교란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며 “박각시과 나방들은 아주 빠르게 날아다니거나 혹은 주변 환경에 녹아드는 위장을 하는 등 아주 다양하게 포식자를 피하는 전술까지 함께 진화시켜 왔다”고 주장했다.
진화적 수렴의 사례인 박각시과 나방의 초음파 기전
플로리다대의 연구진은 우선 다양한 박각시과 나방들을 포획한 후 이들에게 초음파를 발사해 보았다. 그 결과, 그중 Cechenena lineosa와 Theretra boisduvalii, Theretra nessus라 불리는 3종류의 나방이 연구진이 쏜 초음파에 맞서 자신들의 초음파로 대응하는 것을 발견했다.
초음파의 발생 기전을 연구진이 자세히 관찰한 결과, 수컷 나방은 교미할 때 암컷을 붙잡는 데 사용되는 구조체인 미각(clasper)의 표면에 있는 딱딱한 비늘을 복부에 대고 재빨리 문질러 소리를 냈다. 암컷 나방들은 생식기를 안으로 끌어당겨 생식기 표면의 비늘을 복부와 마찰시켜 초음파를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나방들이 이런 이상한 행동을 통해 초음파를 일으키는 이유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연구진은 “박쥐의 초음파를 교란시킬 목적 외에도, 나방의 초음파가 박쥐들에게 ‘우리도 가시 돋친 다리를 갖고 있다’고 으름장을 놓거나, ‘우리의 비행 능력이 훨씬 뛰어나다’고 과시하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고 추정했다.
이 같은 플로리다대의 연구진의 발표에 대해 신경생태학 분야의 권위자인 서던덴마크대의 존 랫클리프(John Ratcliffe) 박사는 “이번 연구결과는 매우 흥미롭다”며 “박각시과 나방과 불나방과 나방 모두 진화적 수렴(evolutionary convergence)의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진화적 수렴이란 서로 상이한 동물들이 진화를 통해 동일한 외관상 특징을 갖게 되는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박각시과 나방과 불나방과 나방은 초음파를 내는 부위의 해부학적 위치가 서로 다른데도 같은 성격의 초음파를 발생하는 현상을 들 수 있다.
랫클리프 박사에 따르면 박각시과 나방의 귀는 얼굴에 있는 데 반해 불나방과 나방의 귀는 가슴에 있고, 또한 불나방과 나방은 박각시과 나방과는 달리 가슴에 있는 막(membrane)을 이용하여 초음파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이번 연구가 귀(ear)와 발성(sound production)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진화적 수렴이 이루어진 명백한 사례인 것으로 나타났다.
나방의 초음파는 군사적 용도의 재밍 기술과 흡사
박각시과 나방의 초음파를 통한 교란 행위는, 원리상 군사적 용도로 사용되는 전파의 재밍 (Jamming) 기술과 동일하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플로리다대 연구자들 역시 발표 논문에 ‘초음파의 탐지 기능을 통한 교란 기술(jamming of echoloc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 원리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전파교란을 의미하는 재밍 기술은 레이더상의 항공기 표시나 라디오 교신, 그리고 무선항법 등을 방해하는 전자적 간섭을 일컫는 것으로, 주로 적의 장거리 센서나 탐색장비의 효과를 감소시킬 목적으로 사용한다.
이 기술이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일이지만, 당시만 해도 교란장비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 제대로 활용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이후 정보통신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주요 군사기술로 응용되기 시작하였다.
다만 박각시과 나방의 재밍 기술은 전자기파 대신 초음파가 대상이라는 것이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신경생태학 분야의 전문가들은 “인간 말고도 적을 속이거나 혼란시킬 목적으로 재밍 기술을 사용하는 동물은, 현재까지만 놓고 볼 때 나방들이 유일하다”고 밝히고 있다.
나방은 박쥐의 초음파를 감지하여 예리한 공격을 피하면서, 때로는 자신의 초음파를 이용하여 박쥐를 혼란에 빠뜨린다. 강력한 교란신호 탓에 헷갈리던 박쥐는 길을 잃고 갈팡질팡하다 끝내 먹이를 놓친다. 이는 박각시과(Sphingidae)에 속하는 나방과 박쥐 사이에 실제로 일어나는 공중전의 한 장면이다.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사이언스데일리(Sciencedaily)는 미국의 과학자들이 매처럼 정지비행을 하는 모습이 비슷하다 해서 붙여진 호크모스(Hawkmoth)라는 이름의 박각시과 나방들이, 박쥐의 초음파를 방해하는 초음파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통해 포식자를 피하는 전술을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시켜 왔다고 최근 보도했다.
사이언스데일리는 나방들의 초음파를 통한 교란 전략이 생각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보도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 동물의 왕국에서 초음파를 통해 먹이를 찾는 일에는 최고의 능력을 가진 박쥐가 역시 초음파를 쏘는 박각시과 나방들 앞에서는 맥을 못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쥐의 초음파에 맞서는 방향으로 진화한 나방
박쥐와 나방은 오랜 세월 동안 먹고 먹히는 철저한 약육강식의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 결과 다른 동물들에게서는 보기 힘든 몇가지 독특한 특징들을 가지고 진화해 왔다. 박쥐의 대표적인 진화 기술로는 어두운 밤에도 문제 없이 비행과 사냥을 할 수 있는 초음파를 들 수 있다.
자동차의 내비게이션과 같은 역할을 하는 초음파에 의한 탐지 기술(Echolocation)은 박쥐 외에 고래나 돌고래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이들은 인간이 들을 수 없는 높은 주파수의 소리가 물체에 반사되는 것을 이용해서 장애물과 먹이를 식별하고 사냥할 수 있다.
반면에 나방은 발사하는 초음파를 조기에 감지하고 이를 회피하는 능력을 꾸준히 진화시켜 왔다.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수많은 나방 종류들 중에서도 불나방과의 나방들만이 박쥐가 내는 것과 유사한 위치측정용 초음파 신호를 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미 플로리다대의 자연사박물관 소속의 연구진이 “박각시과에 속하는 나방들도 불나방과의 나방처럼 초음파 신호를 내서 박쥐를 교란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며 “박각시과 나방들은 아주 빠르게 날아다니거나 혹은 주변 환경에 녹아드는 위장을 하는 등 아주 다양하게 포식자를 피하는 전술까지 함께 진화시켜 왔다”고 주장했다.
진화적 수렴의 사례인 박각시과 나방의 초음파 기전
플로리다대의 연구진은 우선 다양한 박각시과 나방들을 포획한 후 이들에게 초음파를 발사해 보았다. 그 결과, 그중 Cechenena lineosa와 Theretra boisduvalii, Theretra nessus라 불리는 3종류의 나방이 연구진이 쏜 초음파에 맞서 자신들의 초음파로 대응하는 것을 발견했다.
초음파의 발생 기전을 연구진이 자세히 관찰한 결과, 수컷 나방은 교미할 때 암컷을 붙잡는 데 사용되는 구조체인 미각(clasper)의 표면에 있는 딱딱한 비늘을 복부에 대고 재빨리 문질러 소리를 냈다. 암컷 나방들은 생식기를 안으로 끌어당겨 생식기 표면의 비늘을 복부와 마찰시켜 초음파를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나방들이 이런 이상한 행동을 통해 초음파를 일으키는 이유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연구진은 “박쥐의 초음파를 교란시킬 목적 외에도, 나방의 초음파가 박쥐들에게 ‘우리도 가시 돋친 다리를 갖고 있다’고 으름장을 놓거나, ‘우리의 비행 능력이 훨씬 뛰어나다’고 과시하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고 추정했다.
이 같은 플로리다대의 연구진의 발표에 대해 신경생태학 분야의 권위자인 서던덴마크대의 존 랫클리프(John Ratcliffe) 박사는 “이번 연구결과는 매우 흥미롭다”며 “박각시과 나방과 불나방과 나방 모두 진화적 수렴(evolutionary convergence)의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진화적 수렴이란 서로 상이한 동물들이 진화를 통해 동일한 외관상 특징을 갖게 되는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박각시과 나방과 불나방과 나방은 초음파를 내는 부위의 해부학적 위치가 서로 다른데도 같은 성격의 초음파를 발생하는 현상을 들 수 있다.
랫클리프 박사에 따르면 박각시과 나방의 귀는 얼굴에 있는 데 반해 불나방과 나방의 귀는 가슴에 있고, 또한 불나방과 나방은 박각시과 나방과는 달리 가슴에 있는 막(membrane)을 이용하여 초음파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이번 연구가 귀(ear)와 발성(sound production)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진화적 수렴이 이루어진 명백한 사례인 것으로 나타났다.
나방의 초음파는 군사적 용도의 재밍 기술과 흡사
박각시과 나방의 초음파를 통한 교란 행위는, 원리상 군사적 용도로 사용되는 전파의 재밍 (Jamming) 기술과 동일하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플로리다대 연구자들 역시 발표 논문에 ‘초음파의 탐지 기능을 통한 교란 기술(jamming of echoloc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 원리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전파교란을 의미하는 재밍 기술은 레이더상의 항공기 표시나 라디오 교신, 그리고 무선항법 등을 방해하는 전자적 간섭을 일컫는 것으로, 주로 적의 장거리 센서나 탐색장비의 효과를 감소시킬 목적으로 사용한다.
이 기술이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일이지만, 당시만 해도 교란장비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 제대로 활용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이후 정보통신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주요 군사기술로 응용되기 시작하였다.
다만 박각시과 나방의 재밍 기술은 전자기파 대신 초음파가 대상이라는 것이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신경생태학 분야의 전문가들은 “인간 말고도 적을 속이거나 혼란시킬 목적으로 재밍 기술을 사용하는 동물은, 현재까지만 놓고 볼 때 나방들이 유일하다”고 밝히고 있다.
- 김준래 객원기자
- joonrae@naver.com
- 저작권자 2013-07-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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