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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황정은 객원기자
2013-05-29

빛 산란으로 개발한 ‘슈퍼렌즈’ [인터뷰] 박용근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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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의 기술발전 토대로 불리는 반도체 산업. 이러한 반도체의 집적도 향상을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나노광학 기술의 발전이다. 미세한 관찰이 가능해지면서 반도체 집적도뿐 아니라 생체 메커니즘의 원리까지 밝힐 수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사용되는 광학기술은 빛의 굴절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빛의 파장보다 작은 초점을 만들 수 없는 ‘회절 한계’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가시광선 영역에서 200~300nm보다 작은 물체는 관찰할 수 없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빛의 굴절을 이용하는 보통의 광학렌즈와 달리 빛의 산란을 이용해 100nm 크기의 세포내 구조와 바이러스 등을 볼 수 있는 슈퍼렌즈를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물리학과 박용근 교수와 조용훈 교수 연구팀이 기존 광학렌즈보다 약 3배 이상 우수한 해상도를 갖는 나노입자 기반의 신개념 슈퍼렌즈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이는 '네이처 포토닉스(Nature Photonics)' 온라인 판에 게재되기도 했다.

발상의 전환이 이룬 쾌거

▲ 박용근 교수(좌)와 공동 제1저자인 박정훈 학생(우) ⓒ황정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듯 현미경은 물체를 확대해 정확히 관찰할 수 있도록 돕는 장비다. 현미경의 주요 원리는 바로 빛의 굴절로, 렌즈를 이용해 빛을 모아 광초점을 만들어 피사체를 자세히 관찰한다.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는 현미경의 성능 역시 매우 다양하게 분류되는데, 이때 성능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에는 물체를 크게 볼 수 있는 확대능력인 ‘배율’과 ‘해상도’가 있다. 해상도는 광원의 파장에 의해 결정, 파장이 작을수록 더욱 작은 물체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현미경에서 사용하는 광원의 파장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현미경은 빛의 굴절을 이용해 피사체를 관찰하다보니, 빛의 파장보다 작은 초점은 만들 수 없었다. 가시광선 영역에서 200~300나노미터 이하의 물체는 관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의 렌즈는 볼록한 형태가 가장 기본적입니다. 이는 약 3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용돼 왔죠. 그 원리는 빛의 굴절이었고요. 기존 렌즈의 장점을 들자면 ‘간단함’을 꼽을 수 있지만 빛 파장의 반파장보다 작게 만들 수 없어 물리적 한계를 갖는다는 게 가장 취약한 점이었죠. 이러한 근본적 한계로 인해 세포 안의 작은 단백질도 관찰할 수 없었고, 반도체의 선폭도 일정 이하로는 만들지 못했습니다.”

기존 기술이 회절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던 이유는 근접장의 손실 때문이다. 근접장이란 물체 가까이에 근접한 빛으로, 물체에 갇혀 있는 빛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작은 빛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정보가 필요합니다. 빛이 담을 수 있는 정보에는 ‘근접장’과 ‘원격장’이 있죠. 음파와 비유를 하자면 저주파와 고주파라고 할 수 있어요. 원격장은 멀리까지 전파될 수 있는 것이고, 근접장은 물체에 매우 근접해 있어 그 물체에 갇혀 있는 빛이죠. 작은 물체를 관측하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 즉 근접장이 필요한데 근접장은 물체 주변에만 겉돌아 공기 중에 전파되지 않기 때문에 원격장으로 변환시키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근접장을 원격장으로 변환하는 방법으로 박용근 교수팀은 ‘산란’의 개념을 사용했다. 산란을 이용하면 빛이 입자에 부딪히면서 물체가 갖고 있던 근접장이 원격장으로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노입자를 무작위로 뿌리게 되면 바로 거기서 산란이 일어납니다. 그 과정 가운데에서 근접장은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원격장으로 변환되죠. 그걸 통해 렌즈를 만들 수 있는 겁니다. 비유를 하자면 공기 중에는 먼지가 보이지 않지만 어두운 방안에서 한줄기 빛이 들어올 경우 먼지가 보이는 상황을 들 수 있겠네요. 평상시에는 주변 빛이 너무 세서 먼지가 보이지 않는 것이거든요. 이러한 원리로 그동안 굴절로는 다룰 수 없던 근접장을 나노입자 산란을 이용해 제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산란이 일어날 때는 산란체 주변에 근접장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렇게 생긴 근접장은 얼마 진행하지 못하고 소멸하는데, 박용근 교수팀은 시중에서 판매되는 페인트를 사용해 근접장을 제어했다. 락카 스프레이를 유리에 뿌리는 방식으로 기존 광학현미경의 한계를 극복한 것이다.

산란이 심한 물질, 즉 페인트의 경우 산란 물질들이 밀집돼 있기 때문에 각각의 근접장들이 산란되어 또 다른 근접장을 만들 수 있다. 즉, 정보가 소멸되는 것이 아닌 순차적인 산란으로 정보가 변환되어 전달되게 한 셈이다.

“이번 연구에 사용한 기술이 워낙 간단해요. 시중에서 판매되는 페인트를 이용하면 되거든요. 이렇게 근접장을 원격장으로 바꾼 후에는 이를 의미 있게 배열해야 해요. 빛을 렌즈에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 빛을 모아야 하기 때문이죠. 각도 조절을 위해 빛의 세기와 방향을 제어했고, 그 결과 지금의 슈퍼렌즈를 개발할 수 있게 됐습니다.”

기술력‧경쟁력 모두 갖춘 결과

▲ 전자현미경을 통해 살펴본 실제 산란 슈퍼렌즈. 특별한 제작과정 없이 일반적인 락카 페인트만으로도 제작 가능하다 ⓒ한국연구재단

박용근 교수팀의 이번 연구는 산란을 통해 발생되는 근접장과 입사되는 파면을 제어한 사례로, 얇은 페인트 박막과 파면 조절기만을 사용해 고해상도의 결과를 얻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는 기존 학계에 이용된 통념, 즉 초고해상도 초점을 만들기 위해서는 단파장의 빛이나 굴절률이 높은 매질을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벗어난 시도여서 더욱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이번 연구는 기존 렌즈로 구현하지 못했던 회절 한계를 산란을 통해 극복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러나 이것이 기존 ‘굴절’의 방법과 정반대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는 없다. 박용근 교수는 “산란은 결국 빛의 복잡한 굴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빛의 굴절을 보다 미세하게 이용한 것이지, 기존의 굴절 개념과 정반대된다고는 할 수 없어요” 라고 설명했다.

사실 기존 학계에서 종종 언급되고 있던 대안은 바로 엑스레이(X-ray)였다. 파장이 짧기 때문에 나노미터 크기의 물체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격이 비싸고 생물체에 사용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한계를 안고 있었다. 고가의 가격도 걸림돌이었지만, 살아 있는 세포에 사용이 불가능한 만큼 폭넓은 연구를 진행할 수 없다.

하지만 박용근 교수팀의 연구는 가격도 저렴할 뿐 아니라 생물체에도 사용할 수 있어 앞으로의 적용가능성이 더욱 무궁무진하다.

이번 연구는 박용근 교수가 카이스트에 임용된 2010년부터 시작된 프로젝트다. 약 1년 반에 걸쳐 진행된 연구에서 박용근 교수는 연구성과의 희열과 어려움까지 모두 느낄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대학원 생활을 할 당시에도 계속 고민하던 분야였어요. 그러다가 카이스트로 임용되면서 본격적으로 연구를 진행했지요. 처음 이 기술을 연구하기로 한 것은 저희 실험실에서 진행하던 연구가 홀로그래픽 제어였기 때문이에요. 기존에 진행했던 연구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확신을 갖고 연구를 시작했는데, 늘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물리적으로는 확신이 서는데, 생각처럼 진도가 안 나갔던 거죠. (웃음) 연구라는 게 다 그런 것 같아요. 한계를 극복하는 게 재미있으면서도 어려움에도 처하게 되는….”

이번 연구결과는 바이오이미징과 반도체 제작공정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더불어 빛과 전자기기를 연결해주는 연결점, 예를 들어 광통신 기술과 전자기기 커넥션 등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공동 제1저자인 박정훈 학생은 “앞으로 해당 연구가 실생활에서 사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 더욱 완성도 있는 연구를 위해 후속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황정은 객원기자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3-05-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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