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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임동욱 객원기자
2013-03-28

사자왕 리처드 1세의 심장은 진품 방부처리의 물리적 증거 발견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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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8년 7월 31일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120킬로미터 떨어진 루앙(Rouen)의 대성당에서 발굴과 보수작업이 한창 진행중일 때, 지역사학자인 드빌(Archille DeVille)이 가로 12.2, 세로 23, 높이 17센티미터의 납으로 된 네모난 상자를 발견한다.

▲ 1838년 프랑스 루앙 대성당에서 리처드 1세의 심장이 담긴 납 상자가 발견되었다. ⓒScientific Reports
상자의 겉면에는 12~13세기에 쓰이던 대문자 알파벳이 새겨져 있었다. “히크 이아케트 코르 리카르디 레기스 앙글로룸(HIC IACET COR RICARDI REGIS ANGLORUM).” 우리말로는 “여기에 잉글랜드의 왕 리처드의 심장이 있노라” 하는 뜻이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사자왕’ 리처드 1세의 심장이 발견되는 순간이다.

지금은 루앙 자연사박물관에 보관중인 이 상자 안에는 이미 가루가 된 잔여물만이 남아 있다. 그런데 최근 프랑스 레몽 푸앵카레 대학병원이 잔여물에서 2그램의 시료를 채취해 분석한 결과, 리처드 1세의 심장이 유력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연구진은 분석 결과를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cetific Reports)’ 최근호에 발표했다. 논문의 제목은 ‘방부처리된 사자왕 리처드의 심장에 대한 생물학 및 인류학적 분석(The embalmed heart of Richard the Lionheart (1199 A.D.): a biological and anthropological analysis)’이다.

십자군 전쟁에서 ‘사자왕’이라 불리다

리처드 1세(1157~1199)는 영국의 왕 헨리 2세의 아들 여덟 명 중 가장 용맹스러웠다. 큰 키에 유달리 넓은 어깨까지 전사의 신체조건을 타고났다. 형제들을 물리치고 아버지와 전쟁을 벌인 끝에 1189년 7월 마침내 왕위를 계승받았다. 그러나 이듬해인 1190년 7월에 리처드 1세는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다며 영국을 떠났다.

1095년 교황 우르바노 2세는 성지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자며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다. 목적을 달성한 제1·2차 십자군 전쟁 이후 이슬람 세력의 왕 살라딘은 대규모 침공을 통해 예루살렘을 손에 넣는다. 그러자 리처드 1세는 병력을 이끌고 제3차 십자군 전쟁을 시작한다.

▲ 영국왕 리처드 1세는 제3차 십자군 전쟁에서의 용맹으로 '사자왕' 또는 '사자의 심장'이라 불렸다. ⓒWikipedia
머나먼 이국 땅에서의 고된 생활은 견디기 어려웠다. 결국 함께 참여한 프랑스의 왕 필리프 1세도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리처드 1세는 끝까지 남아 이슬람 세력들을 차례로 무찌르며 살라딘을 위협했다. 덕분에 리처드는 ‘사자의 심장을 가진 것처럼 용맹하다’는 의미로 사자왕(Lionheart)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리처드 1세는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1192년의 휴전협정으로 기독교 순례자들의 성지 통행권을 보장받았다. 이후 필리프 1세가 지금의 프랑스 북부에 해당하는 자신의 영토를 빼앗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해 유럽으로 돌아온다.

당시 영국은 프랑스 서부의 브르타뉴에서부터 북부의 노르망디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다. 리처드 1세도 브르타뉴의 도시 앙주(Anjou)에 살던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언어도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사후 세 조각으로 나뉜 리처드 1세의 유해

1199년 3월 대부분의 영토를 회복한 리처드 1세는 프랑스 중부의 리모주 근교 살뤼(Chalus)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전투에 참여했다. 3월 25일 초저녁에 철제 갑옷도 없이 공격을 독려하다가 날아온 석궁 화살이 왼쪽 어깨에 박힌다. 석궁은 일반 활과 달리 큰 상처를 입히기 때문에 부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화살 맞은 자리가 곪아 고생하던 리처드 1세는 마침내 4월 6일 사망한다. 그의 유해는 세 조각으로 나뉜다. 머리는 프랑스 서부 푸아투 지역의 샤루(Charroux) 수도원으로 보내졌고, 몸은 브르타뉴 지역 앙주에 있는 퐁트브로(Fontevraud) 수도원에 안치되었다. 그리고 심장은 방부처리되어 노르망디 지역의 중심지 루앙 대성당의 품에 안겼다.

당시 귀족들은 사후에 유해를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자신이 다스리던 영지 곳곳으로 보냈다. 지역민들에게 왕의 존재를 각인시키기 위해서다. 이후 행방이 묘연했던 리처드 1세의 심장이 1838년 발굴로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오랜 세월에 가루가 된 심장의 잔해를 최근 레몽 푸엥카레 대학병원 연구진이 분석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들은 지난 2010년 프랑스의 왕 앙리 4세(1553~1610)의 유골을 감식해 유명세를 떨친 바 있다.

연구진은 2그램의 시료를 채취해 육안검사를 비롯해 화학성분 분석, 꽃가루 분석, 인류학·고고학적 분석, 현미경 분석 등 전반적인 생의학 검사를 실시했다. 발굴 이후 최초로 분석된 법의학적 분석이라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다량의 증거가 리처드 1세 심장임을 가리키다

▲ 리처드 1세의 심장은 오랜 세월로 인해 흰색과 갈색의 가루 형태 잔여물만 남았다. ⓒScientific Reports
흰색과 갈색의 잔해물을 분석한 결과, 12~13세기 유럽에서 사용된 리넨천과 더불어 다량의 꽃가루가 발견되었다. 박하, 데이지, 도금양, 포플러, 초롱꽃 등 종류도 다양했다. 모두 리처드 1세의 사망 즈음인 봄철에 피는 꽃들이다. 심장을 바로 땅에 묻거나 상자에 넣지 않고 일정 기간 동안 지상에 두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사체를 방부처리 하는 데 사용되던 유향나무 수액도 검출되었다. 덕분에 리처드 1세의 심장에서는 역한 냄새 대신에 은은한 향기가 났다. 중세 기독교에서는 예수 탄생 때 동방박사들이 유향을 바쳤다는 근거를 들어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사체 방부처리에도 사용했다. 예수 사망 당시에도 향신료를 발라 무덤에 안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화학성분 분석에서는 칼슘 수치가 높게 나왔다. 당시 방부제로 쓰이던 라임이 사용되었다는 증거다. 또한 보관함에서 묻은 것으로 보이는 다량의 납, 주석, 철이 발견되었다.

소량의 구리, 수은, 안티몬, 비스무트도 검출되었다. 수은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사체를 방부처리해 미라를 만드는 데 종종 이용되었다. 귀족이나 왕족에만 사용되던 방식이다. 여러 가지 증거를 검토하고 연구진은 “리처드 1세의 심장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리처드 1세의 심장을 방부처리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은 사망 장소부터 루앙 대성당까지의 거리가 500km를 넘는다는 점이 첫 번째다. 용맹함의 상징이던 리처드 1세의 심장을 손에 넣고 전시함으로써 권위를 이어받으려는 목적이 두 번째다. 또한 고귀한 신분임을 강조하기 위해 각종 향신료를 바른 이유도 있다.

연구를 주도한 필립 샤를리에(Philippe Charlier) 교수는 “방부처리된 심장에 대한 최초의 법의학 검사이자 유향을 이용한 중세 방부처리 기술에 대한 최초의 물리적 증거”라고 평가했다. 또한 박물관 측의 반대로 인해 유전자 검사는 실시하지 못했지만 “리처드 1세의 심장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다음 분석 대상으로 성녀 잔다르크의 처형을 명령했던 베드포드 공작의 유해를 조사할 예정이다.

임동욱 객원기자
im.dong.uk@gmail.com
저작권자 2013-03-2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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