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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너지
임동욱 객원기자
2012-03-06

천년 전 바그다드에는 폭설 내렸다 10세기 아랍 자료에서 단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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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초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 눈이 내렸다. 이라크 기상청은 “100년 만에 내리는 눈”이라고 발표했고 각국 외신들은 “드문 기상현상”이라고 보도했다.

▲ 지금의 바그다드는 1월 평균 기온이 영상이지만, 역사문헌을 살펴본 결과 1천년 전에는 폭설이 여러 번 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ImageToday
북위 33도의 중동 지역에 위치한 바그다드는 여름이면 4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에 시달린다. 1월 평균 기온이 영하 1도에서 영상 9도 정도이며 강수량도 많지 않아 눈은 커녕 비가 내리는 일도 드물다.

그러나 1천년 전 바그다드에는 폭설이 여러 번 내렸다. 한여름인데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져 냉해를 입은 적도 있다. 스페인 연구진이 9세기와 10세기의 아랍어 자료를 분석하면서 알아낸 사실이다.

스페인 에스트레마두라대학교 연구진은 이번 연구결과를 ‘과거 기후 재구성에 사용된 아랍 기록자료(How useful could Arabic documentary sources be for reconstructing past climate?)’라는 논문으로 정리해 국제학술지 웨더(Weather) 최근호에 게재했다.

역사학자와 기상학자가 공동으로 이슬람 기록 연구

과거의 기후를 조사할 때 과학자들은 빙하에 구멍을 뚫거나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를 살핀다. 해마다 새로운 층이 덧붙여지면서 이전의 상황이 화석처럼 남겨지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기록된 자료가 남아 있다면 가장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온도와 습도 등을 기록하는 기상관측소가 세워진 것은 근래의 일이라서 날씨까지 세세하게 기재된 문헌은 찾기가 어렵다. 18세기의 선박용 항해일지나 2차대전 당시 공군 보고서 등 최근의 기상상황을 자세히 기록한 문서만이 공식 자료로 인정되어 왔다.

그렇다면 풍부한 문화유산을 남긴 황금기의 기록을 뒤져보면 당시의 기후에 관한 언급이 있지 않을까? 이 질문을 출발점으로 역사학자와 기상학자가 만나 공동연구를 진행했다. 스페인 남서부에 위치한 에스트레마두라대학교(University of Extremadura) 연구진은 이슬람 문명의 황금기라 불리는 9세기와 10세기의 아랍어 문헌을 찾아내 번역하기 시작했다.

특히 기원전 5천년부터 시작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이자 이슬람 제국의 수도로 번영을 누린 이라크의 도시 바그다드(Bagdad)의 기록에 중점을 두었다. 참고로 스페인은 8세기 이후 800여 년 동안 아랍의 지배를 받아서 아랍어 관련연구가 활발하다.

▲ 8세기에서 10세기 사이의 바그다드 시가지 지도 ⓒWeather

바그다드는 아바스 왕조의 두 번째 칼리프인 아부 자파르 알만수르(Abu Ja`far al-Mansur)가 서기 762년 수도로 지정하면서 본격적인 도시의 틀을 갖추기 시작한다. 당시 이슬람은 동쪽으로 인도와 국경을 마주했고 서쪽으로는 스페인 너머 대서양 연안까지 영토를 차지했다. 바그다드는 거대제국의 중심으로서 갖가지 문물과 문화가 뒤섞여 유산을 만들어냈다.

풍부한 기록자료도 이슬람의 자랑이다. 당시 이슬람 세계에는 역사학과 과학이 발달했고 이들은 수많은 기록을 남기며 현재의 기초과학과 각종 학문의 토대를 닦았다. 수학의 한 분야인 ‘대수(algebra)’라는 명칭도 9세기 수학자 알크와리즈미(al-Khwarizmi)가 남긴 저서에서 유래했다. 화학(chemistry)이라는 이름도 연금술을 뜻하는 아랍어 ‘알키미야(alkimiya)’가 기원이다.

수학, 철학, 천문학 등의 분야에서는 중세 아랍의 자료를 연구해 많은 성과를 거둔 바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기상학 위주의 문헌 조사는 본격적으로 진행된 적이 없었다.

서기 920년 7월은 여름인데도 기온하강 발생해

중동은 최근까지도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오랫동안 반복된 전쟁으로 인해 많은 문서들이 사라졌다. 그러나 913년에 쓰여진 알타바리(al-Tabari)의 작품과 945년 알아즈디(al-Azdi)의 작품, 961년 하즈마 알이스파하니(Hamza al-Isfahani), 1056년 힐랄 알사비(Hilal al-Sabi) 등의 작품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귀중한 자료로 쓰이고 있다.

스페인 연구진은 816년부터 1009년까지 이슬람 과학자, 역사가, 서기 등이 남긴 문헌을 분석해 특이한 기상현상을 언급한 부분을 찾아냈다. 알타바리의 작품을 예로 들면 이슬람력 231년, 232년, 245년 281년, 284년의 가뭄이 언급되어 있고 291년의 홍수와 285년의 강풍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외에도 혹서, 강우, 우박, 메뚜기떼 등도 문헌에 기재되어 있다.

참고로 이슬람력에 0.97을 곱한 후 622년을 더하면 우리가 사용하는 서력이 되므로 이슬람력 231년은 서기 846년이다.

▲ 연구진은 이슬람 문명 황금기의 아랍어 자료를 번역, 분석해 과거의 기후현상을 밝혀냈다. ⓒImageToday
연구진이 아랍어를 번역해서 내용을 분석하자 10세기 전반부에 강추위 현상이 자주 발생했음이 밝혀졌다. 서기 908년, 944년, 1007년에는 폭설이 내렸고 서기 920년에는 한여름 7월인데도 급격한 기온 하강 현상이 나타났다.

추위에 대해 언급한 구절은 알바타리가 이슬람력 241년과 289년의 2건, 알아즈디가 216년과 232년의 2건, 알이스파하니가 330년과 332년의 2건, 알사비가 389년과 392년의 2건 등 이외의 저자들을 합해 총 14건이 나타났다.

서력으로는 831년, 847년, 902년, 903년 908년, 920년, 926년, 941년, 944년, 998년, 1002년, 1007년 등 겨울에 극심한 추위가 있었고 855년,920년은 5월과 7월인데도 기온 하강현상이 나타났다.

논문은 “갑작스레 강추위가 닥쳤다는 기록은 중세 간빙기 직전인 10세기에 기온하강이 있었다는 뜻”이라고 설명하며 “특히 여름인데도 920년 7월에 기온이 하강한 것은 거대 화산활동과 관련이 있다고 예상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예전의 이라크 지역이 현재보다 더 잦은 기후변동을 겪었다”고 분석했다.

논문의 주저자인 페르난도 도밍게즈 카스트로(Fernando Dominguez-Castro) 박사는 유럽의 과학논문 소개 사이트 알파갈릴레오(AlphaGalileo)와의 인터뷰에서 “중세 문헌에서 복원해낸 기후정보는 가뭄이나 홍수처럼 사회 전반에 충격을 주는 극심한 사건을 주로 언급하고 있다”며 “우박, 한파, 강설 등 중세 바그다드에서는 드문 상황도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고 밝혔다.

앞으로 더 많은 문헌과 자료를 번역하고 분석하면 과거 문명이 겪었던 이상 기상현상과 극심한 기후변동의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된다.

임동욱 객원기자
im.dong.uk@gmail.com
저작권자 2012-03-0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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