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과학영재교육의 필요성이 공식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1973년 10월「전 국민의 과학화의 길」이란 전국교육자대회의 한 분과 토론회에서였으며, 주요 교육정책과제로서 다시 제기된 것은 1978년 한국교육개발원이 펴낸『교육발전의 과제와 전망』이라는 보고서에서였다. 이로 인해서 당시의 문교부(現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1979년 3월 ‘과학고등학교 설립추진위원회’를 공식적으로 조직하고 연구에 들어갔으나, 문교부와 한국교육개발원에 의해 거의 현실화 단계에 이르렀던 과학고등학교 설립계획은 정치적인 이유로 무산되었다.
그 후 1980년대에 들어와 과학혁명의 시대를 예고하는 여러 가지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과학·기술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기초과학교육을 보다 강화하고 과학·기술인력의 저변을 대폭 확대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며, 이에 힘입어 과학고등학교의 설립계획이 다시 추진되어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초기의 획일적인 평준화만이 우리나라 교육이 나아갈 길이며 다른 대안은 거론조차 할 수없었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과학영재교육을 위한 교육시설 확충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실험실과 기자재는 경기도학생과학관(現경기도과학교육원)에서 빌려 쓰기로 하고, 경기도학생과학관 뒤의 산자락을 조금 얻어 본관(교실과 관리실)과 기숙사만을 마련하여 1학년 2학급 60명으로 1983년 3월 5일 개교하게 되었다.
개교 당시에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본교의『학교설립의 기본 방향』제2항에는‘학교의 설립과 운영 과정에서 영재 교육을 표방하지는 않는다.’는 내용이 명문화되어 있었으며, 또한 학교설립의 취지에서도 과학영재교육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나중에 개교한 대전과학고등학교와 광주과학고등학교, 경남과학고등학교와 함께 1987년 2월 3일『교육부 고시 제 87-3호』에 의거 특수목적고등학교로 지정되면서 과학영재들을 선발하여 그들의 지적·정의적·신체적 특성에 알맞은 학습경험을 제공하고자 설립취지가 다음과 같이 수정되었다.
1) 중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과학영재들을 조기에 발굴하여, 그들이 지니고 있는 뛰어난 과학적 소질을 계발하여 주고, 이들에게 창의성과 과학탐구에 필요한 능력과 태도를 길러 주고자 하는 학교로서,
2) 과학에 뜻을 가진 우수 학생들에게 풍부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한편, 이에 적합한 교육환경과 여건을 마련하여 이공계로의 진로를 개척함으로써,
3) 장차 첨단 과학기술 경쟁시대에 대비한 창의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모든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렇게 어려운 여건 속에서 개교한 본교가, 현재는 1학년 5학급 102명(2004학년도부터 1개 학년에 5학급 100명을 선발), 2학년 3학급 71명, 3학년 1학급 10명으로 총 9학급 183명에 이르고 있으며, 개교 21년에 이르는 동안 재학생들은 국가대표로 많은 국제대회에 참가하여 금메달 13개, 은메달 8개, 동메달 6개를 획득하는 등 총 30여 회에 이르는 입상 실적을 거두어 명실공히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명문학교로 확실히 자리 매김 하게 되었다.
그동안 본교 졸업생들의 눈에 띄는 활동들을 살펴보면, 한국과학기술원 인공위성 센터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인 ‘우리별’1, 2, 3호 제작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김형신 박사(본교 1기 졸업)와 민승현 박사(3기), 1995년 미국의 칼텍에서 화학공학 관련 박사 학위를 취득한 본교 출신 박사 1호 정근창 박사(1기), 세계적 권위의 과학잡지 ‘네이처’지에 생물학 논문을 발표하여 화제가 되었고 현재 KAIST 교수로 재직 중인 최길주 박사(1기), 프린스턴대에서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이론을 반박하는 최신 이론을 발표하여 세계 물리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본교 출신의 최고 천재로 인정되었으나 이제는 고인이 된 김영재 박사(3기), MIT재학시절에 동양의천재로 인정받을 만큼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였으며 현재 삼성반도체에서 설계·개발의 주역으로 활약 중인 송승헌 박사(4기), 고교 수료 후 8년 만에 박사 학위 취득하여 1998년에 KAIST 최연소 박사 취득자로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고 현재 삼성반도체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김규현 박사(5기), 현재 고려대 연구교수로「정재승의 과학 콘서트」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정재승 박사(6기), ‘증가부분수열’의 수학난제를 해결하였으며 2000년에 26세의 젊은 나이로 미국 프린스턴대의 교수로 임용되었고 현재 미시건대 교수로 재직 중인 백진호 박사(7기), 2002년에 KAIST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곧바로 성균관대 교수로 임용되어 국내에서 최연소 교수가 된 윤석호 박사(9기)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많은 졸업생들 이 국내외 첨단 과학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지금까지 본교는 과학영재교육을 통해 우리나라와 인류발전에 기여할 과학·기술 분야의 우수한 인재들을 길러내는 데 제 몫을 충분히 담당해 왔다고 자부하며 앞으로도 이에 더욱 매진하려고 한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대학 진학 시의 불리한 조건 때문에 진로 선택을 망설이거나 심지어 자신의 꿈을 접어야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과, 낙후된 교육 시설 등으로 인해 마음껏 재능을 펼치지 못하는 환경적 제약이 많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이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공계 기피 현상을 부추기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한다.
교육은 학생 개개인의 타고난 잠재력을 최대한 계발시킴으로써 개인의 자아실현은 물론 국가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어떤 특정 분야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이는 영재들에게는 반드시 그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제공되어야 한다. 그것이 개인적인 측면으로는 타고난 잠재능력을 효과적으로 계발함으로써 자아실현을 통한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게 하고, 국가적인 측면으로는 사회 각 분야를 이끌어 갈 우수 인력을 확보함으로써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조국과 인류의 미래를 어깨에 짊어진 우리의 우수한 학생들이 선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교육 환경 속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는 일에만 몰두할 수 있는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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