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 한국 극장가를 휩쓸었던 ‘로보트 태권V’의 인기가 이런 점에서 비롯됐을까? 시대를 앞서간 한 영화인의 뛰어난 상상력에 의해서 탄생한 ‘로보트 태권V’가 2006년 들어서 오랜 동면을 깨고 부활을 위한 로켓엔진에 점화를 시작했다.
‘로보트 태권V’ 탄생 30주년을 맞아 동아사이언스(발행인 김두희)와 한국공학한림원(원장 윤종용)이 25일(금) 오후 1시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공동주최한 ‘로보트 태권V 10대 기술 심포지엄’에는 ‘로보트 태권V’ 탄생의 주역 김청기 감독과 영화사 신씨네 대표 신철 사장이 나와 새로운 ‘로보트 태권V’의 탄생을 예고했다.
김청기 감독은 “3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로보트 태권V’가 재조명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로보트 태권V’ 영화를 본 사람 중에 로봇 박사나 산업현장의 우수한 두뇌들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후에 들었다”고 말했다.
또 김 감독은 “영화사 신씨네에서 머리를 싸매고 과거보다 업그레이드된 태권V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과거에는 과학적 지식을 갖고 만든 것이 아니었지만 과학기술이 발달한 지금은 더 나은 태권V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고 말해 태권V의 부활을 기정사실화했다.
여기까지는 ‘로보트 태권V’의 영화 속 부활이야기다. ‘로보트 태권V’가 탄생한 70년대 초는 실제의 ‘로보트 태권V’를 논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대. 하지만 이후 30여 년이 흐른 지금,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달로 스크린 바깥으로 걸어 나올 태권V를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거대로봇의 가장 큰 난제는 크기
이날 심포지엄에는 상상력이라면 영화인 못지않은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그들은 국내 로봇 과학계의 거장 한국과학기술원 오준호 교수, 한국항공대 장영근 교수, 한국과학기술원 김문상 박사 등이다.
실제로 걸어 다니는 로봇을 만들어 본 이들로부터 듣는 키 56m, 몸무게 1천400톤의 몸체를 가진 거대 ‘로보트 태권V’의 부활이야기는 그 자체가 관심거리다. ‘거대 로봇의 구동역학’으로 발제한 카이스트 오준호 교수는 거대 ‘로보트 태권V’와 같은 하드웨어들은 이미 우리 주위에 있다는 관점에서부터 출발했다.
“거대한 굴삭기, 대형 유조선, 큰 비행기 등도 거대로봇의 한 형태다. 이들과 로봇의 차이점은 인공지능을 갖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나 없느냐의 차이다. 따라서 현재 ‘로보트 태권V’와 같은 거대로봇의 탄생 기반은 갖추어진 셈이다. 카이스트에서 개발한 휴보 FX-1은 자체 중량이 150kg이며 무게 100kg인 사람을 태우고 시속 1.5km까지 걸을 수 있다.”
하지만 태권V는 고층빌딩만한 키를 갖고 자유자재로 우주를 날아다닌다. 이러한 거대 로봇은 작은 로봇과는 재료나 역학 면에서 매우 다른 특성을 갖는다.
“거대로봇의 개발에는 크기효과가 존재한다. 마찰력, 표면장력, 전자기력, 유체저항, 관성력, 중력, 재료강도 등이 효과를 미친다. 만약에 재료의 크기가 1mm인 경우에는 표면장력, 마찰력이 큰 영향을 끼치지만 반면에 10m의 경우, 이런 힘들은 거의 영향이 없고 중력, 관성력의 해결이 큰 관건이 된다. 똑같은 조건에서 로봇이 10배 커진다면 여기에 사용된 재질의 강도도 원래보다 10배 커져야 한다.”
일반적인 재질을 쓰면 로봇은 힘을 내지 못하고 특히, 수평 방향의 힘이 약해서 무너져버린다는 설명. 따라서 지금의 재질보다 훨씬 고강도의 재료사용이 중요하고 나노재질의 사용으로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
크기 이외에도 오 교수가 지적하는 거대로봇의 문제점은 속도다.
“사람보다 36배 커진 거대로봇을 상정해볼 때, 이 로봇을 사람과 같은 속도로 걷게 만들면 너무 빨라져서 내부에 무리가 생긴다. 따라서 자기 크기의 루트(√)배인 6배의 걷는 속도가 되는 것이 적정하다. 아울러, 1천400톤의 로봇이 날기 위해 도약하려면 자기 몸의 2배의 힘을 내야 하는데 계산하면 총 2천680톤이 되고 초당 1톤의 연료를 소모할 수밖에 없다. 즉, 경제적 실용성 면에서도 문제가 된다.”
오 교수는 “태권V의 실현은 재료강도, 구동기, 제어 알고리듬, 실시간 자세 제어 등의 여러 측면에서 아직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미래에는 실제의 태권V가 탄생할지도 모른다”고 내다봤다.
기술과 실용성에서 아직은 불가능
‘로보트 태권V의 무기와 비행’으로 발제한 한국항공대 장영근 교수는 ‘로보트 태권V’가 실제로 움직이면서 악당과 싸우는 모습을 상정한 발표 내용으로 학생들의 호기심을 끌었다.
“우리가 상정한 태권V의 제원은 키 56m, 몸무게 1천400톤, 최고속도 800km/h, 로켓 주먹 2기, 레이저 빔 3기, 광자력 V빔, 기관포 6문 등이다. 이러한 태권V의 덩치는 러시아의 AN225 우주왕복선 수송기, 유럽의 A380 에어버스, 미국의 보잉 747기 등에 비교된다. 실제로, ‘로보트 태권V’는 우주왕복선과 구조가 비슷하다.”
태권V의 가장 큰 무기는 팔에서 발사되는 로켓 주먹. 로켓 주먹은 발사해서 원하는 위치에 가서 부딪혀야 하고 다시 원위치로 돌아와서 재결합해야 한다. 장 교수는 우주왕복선의 발사 원리를 적용해서 이를 설명했다.
“로켓 주먹의 발사는 발사시에 태권V의 몸체가 반발력에 의해 밀리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즉, 비행기에서 미사일을 발사할 때처럼 팔에서 약간 밑으로 떨어뜨린 다음에 추진력을 작동시켜야 한다. 또 재결합시에는 손등의 발사부분에 역추진 로켓을 장착하면 주먹의 방향과 결합시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또 이 로켓 주먹의 연료는 고체의 경우, 한번 불이 붙으면 끄기가 불가능해 현재로선 액체 추진 로켓이 가장 이상적인 연료가 될 것이다.”
태권V 영화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이 바로 태권V의 V자 가슴에서 발사되는 일명 광자력빔이라 불리는 레이저빔 무기다.
“태권V가 영화에서처럼 날아다니면서 레이저빔을 발사해 쏜살같이 날아다니는 적을 물리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 실제의 레이저빔 수준은 외국에 실존하는 위성방어망 무기를 보더라도 매우 발달해 있다. 따라서 레이저무기는 향후 10년 후면 기술의 혁신적 발달로 보잉 747과 같은 항공기에 장착해 사용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레이저빔의 사용에는 한 가지 큰 결점이 있다. 그것은 레이저의 엄청난 열로 인해 로봇 자체가 파괴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레이저 무기의 개발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냉각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레이저의 변환 효율은 10∼40%에 불과하며 레이저로 바뀌지 못한 에너지는 열로 발산된다. 이때 냉각장치가 없으면 이 열에 의해 로봇이 스스로 녹아내린다. 하지만 레이저의 급속한 발전 속도로 볼 때, 이는 실현 불가능한 문제는 아니다.”
“1992년 러시아가 개발한 RD-172 로켓엔진(851톤 추력 가능)을 두 개 장착하면 가능하다. 하지만 로켓 추진제 924톤으로 183초(약 3분)밖에 날 수 없다. 1996년 미국은 최신형 로켓 DC-XA를 시험한 적이 있다. 태권V를 닮은 이 로켓은 18초 동안 224m를 수직상승했다가 30초 동안 수평이동을 하기도 했다. 현재로서는 태권V에 가장 적용 가능한 것으로 판단된다.”
‘태권V의 시스템 디자인’에 대해 발제한 KIST의 김문상 21세기 프론티어지능로봇사업단장은 태권V의 설계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 발표했다.
“로보트 태권V’의 설계시 가장 어려운 점은 주먹이다. 발사 추진체, 연료 제어장치, 별도의 통신제어장치, 손가락 및 손목을 구동시키는 인공근육 구동장치 등 주먹에는 들어갈 장치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태권V의 다리 역시 발사를 위해 엄청난 연료 저장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에 현재의 기술로는 불가능하고 전혀 새로운 형태의 발사시스템이 필요하다.”
천하무적 ‘로보트 태권V’가 강철 같은 몸을 갖고도 유연한 태권 동작을 하는 데는 어떤 기술이 적용될 수 있을까?
“태권V의 재질은 적은 무게로도 엄청나게 강한 탄소 나노튜브가 적당할 것이다. 태권 동작이 가능하려면 엄청난 스피드가 필요하다. 부피 및 무게에 비해서 훨씬 큰 파워가 필요하므로 폴리머 계통의 인공근육을 가진 새로운 구동장치도 필요하다. 또 태권 동작은 레버나 버튼 조작으로는 불가능하고 뇌파조종기술과 같은 원격조종기술이 필요한데 이러한 기술들은 현재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 중에 있다.”
이러한 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거대 ‘로보트 태권V’는 기술적으로 어느 면에서는 가능하고 어떤 측면에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태권V가 아직은 로봇 과학자들의 머릿속에 존재하지만 그들의 도전정신만큼은 진행형이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40여 명의 학생들이 ‘로보트 태권V’ 탄생의 꿈을 안고 발표내용을 경청했다.
“미래에 우주기지 건설되면 거대로봇 필요”
▲ 이 심포지엄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과학동아에서 실제의 ‘로보트 태권V’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10대 기술을 분류했다. 나도 여기에 참여해서 과연 태권V를 만들 수 있는지, 아니면 무엇이 불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두 번의 글을 과학동아에 실었고 그것이 계기가 됐다.
▲ 발표자료 준비는 어떻게?
내가 휴보를 설계할 당시부터 머릿속에 있던 것들을 정리한 것이다. 겉으로는 복잡해보이지만 로봇 설계에서 매우 기초가 되는 역학적 계산 내용들이다. 기본적으로 항상 이런 거대로봇에 관한 생각을 하고 있다. 정교하고 복잡한 물리적 계산은 컴퓨터로 하지만 기본적인 것은 머리에서 할 수밖에 없다.
▲ 거대로봇 설계시 가장 힘든 점은?
로봇의 무게가 무거워지면 이를 감당할 만한 재료가 없다. 자기 자체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또 재료가 있다 하더라도 이 거대한 로봇을 움직일 수 있는 구동기가 없다. 구동기 자체도 매우 커지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문제가 거대로봇 설계시에 가장 힘든 점이다.
▲ 결론적으로 가능한가?
이러한 거대로봇의 실현은 아직 불가능하다고 본다. 또 현재는 필요성도 거의 없다. 따라서 아직은 머릿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거대한 굴삭기, 비행기, 큰 배 등은 거대 로봇의 다른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필요하다면 만들 수 있다. 미래에 해저나 우주기지가 건설된다면 여기에 거대로봇은 반드시 필요하다. 꼭 ‘로보트 태권V’와 같은 무기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거대로봇은 반드시 출현할 것이다. 기술은 많이 접근해 있다.
▲ 휴보에 대해서 한 말씀.
휴보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시모다. 아시모는 일본의 전자 및 기계공학이 집대성된 훌륭한 로봇임에 틀림없다. 이에 비해서 우리는 짧은 기간에 휴보를 만들었다. 우리도 이제는 일본의 로봇기술과 경쟁할 수 있는 모델을 가졌다. 이를 더 발전시켜서 빠른 시간 내 일본의 수준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휴보는 계단을 잘 오르내리고 연구실에서는 뛰노는 것에 대해 실험하고 있다.
▲ 앞으로의 연구 목표는?
향후 안정되고 자연스럽게 걷고 빠르게 뛸 수 있는 기능을 부여한 새로운 휴보를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휴보 로봇의 경량화 작업을 하고 있다. 로봇은 무게가 항상 문제가 되므로 가볍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가벼워지면 안정되고 빨라진 휴보가 탄생할 것이다.
- 조행만 객원기자
- chohang2@empal.com
- 저작권자 2006-08-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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