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5,2019

집의 기원, 5억년 전에 시작됐다

해초류 화석이 원시벌레의 집으로 밝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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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초의 한 종류로 생각되었던 ‘마르가레티아’라는 화석이 고대의 바다 밑바닥에 살던 원시적인 벌레의 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마르가레티아(Margaretia)란 해저 퇴적층에 박혀 있는 가느다란 대롱 모양의 구조체로서, 구멍이 송송 뚫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연구 결과 이 집의 주인으로 밝혀진 벌레는 약 5억년 전에 살았던 ‘오에시아(Oesia)’라고 불리는 반삭동물이다. 반삭동물은 척삭동물의 원시형에 해당하는 신경계를 가진 해양 무척추동물문을 말한다. 아가미구멍과 척삭이 있어서 과거에는 척삭동물문의 한 아문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하지만 척삭동물의 체제와 매우 다르다는 점이 확인돼 이후 독립된 문으로 다루게 되었다. 반삭동물이라는 말은 척삭동물의 척삭에 비해 반밖에 되지 않는 짧은 척삭(반척삭)을 가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롱 모양의 마르가레티아에 남아 있는 오에시아 화석의 세부 모습. ⓒ Karma Nanglu(토론토대학)

대롱 모양의 마르가레티아에 남아 있는 오에시아 화석의 세부 모습. ⓒ Karma Nanglu(토론토대학)

이번 연구를 통해 오에시아는 반삭동물문의 원시적인 종류임이 확인됐다. 또한 오에시아가 주둥이와 깃, 그리고 긴 몸통으로 이루어진 현생 장새류와 유사한 남자 성기 모양의 생물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반삭동물은 장새강과 익새강의 2개 강으로 나뉘는데, 익새강의 동물들은 촉수가 있는 꽃병 모양을 하고 있으며, 군체를 형성해 깊은 바다에 사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장새강의 동물들은 대부분 얕은 물에 살며, 몸이 길고 촉수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척추동물 진화의 중요한 단서

원시적인 척삭처럼 보이는 구조물을 지닌 까닭에 반삭동물은 척삭동물의 진화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또한 반삭동물은 더 큰 생물 그룹인 후구동물에 속하는데, 척추동물이 후구동물의 한 갈래이므로 과학자들은 모든 후구동물의 공통 조상이었던 이 생물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실 오에시아는 고생대 중기 캄브리아기의 화석이 많이 발굴되는 ‘버제스 셰일 화석군’에서 발굴되어 약 100년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요호 국립공원 중앙에 위치한 버제스 셰일 화석군은 전 세계 고생물학자들이 꼭 방문하고 싶어하는 명소 중 한 곳이다.

그런데 이번 연구가 이루어진 곳은 버제스 셰일 화석군 근처에 있는 ‘마블 캐년’이다. 마블 캐년은 버제스 셰일 화석군보다 약 10만년쯤 더 오래된 곳으로서, 세계적인 화석 발굴 장소인 버제스 셰일보다 더 많고 더 좋은 화석들이 많아 새로운 화석 보물창고로 떠올랐다. 이번 연구 역시 마블 캐년에서 발견된 표본들이 훨씬 풍부하고 보존이 잘 된 상태였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데일리’에 의하면, 후구동물의 공통 조상인 오에시아는 바닷물의 유기 영양분을 걸러 먹는 여과 섭식 생물인 것으로 알려졌다. 긴 대롱 모양의 집을 짓고 들어가면 이 생물이 밖으로 나갈 곳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같은 추정의 근거다.

물의 영양분 걸러 먹는 여과섭식 생물

오에시아의 몸 전체에는 U자 형태의 아가미가 있어 영양소를 걸러 먹은 후 바닷물을 바깥으로 내보냈으며, 대롱 모양 집의 벽에 송송 나 있는 구멍은 그처럼 물이 들어오고 나가게 하기 위한 용도였던 것이다.

아가미 구멍은 모든 후구동물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인간조차 배아 발생 초기 단계에서 목에 구멍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모든 후구동물들이 오래 전의 공통 조상과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오에시아는 몸길이가 평균 53㎜이며, 너비는 10㎜ 이하다. 그런데 이번 연구에 의하면 대롱 모양의 집은 길이 50㎝가 넘으며 폭도 20㎜ 이상으로 오에시아가 들어가도 내부 공간에 여유가 충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여과 섭식을 하는 오에시아가 자신의 주변을 대롱 모양의 집을 지어 보호한 것은 캄브리아기에 포식이라는 새로운 먹이 전략이 이미 등장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즉 이때에도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의 경쟁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자신을 보호할 집을 짓고 사는 동물이 흔하지만, 그 기원이 이처럼 오래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이후 장새강의 동물은 어떤 시점에서 대롱 모양의 집을 버리고 해저 퇴적층을 파고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 주변에 더 많은 포식자들이 나타나자 더 안전한 선택을 위해 해저를 파고 들어간 것이다.

오늘날의 장새강 동물은 여과섭식을 하는 대신 퇴적물 속에 살며 그 안에 있는 영양소를 섭취한다. 장새강은 화석 기록에서 매우 드물게 보고되는데, 이 그룹에 속하면서 이처럼 오래된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이번 연구는 영국 캠브리지대학과 캐나다 토론토대학, 몬트리올대학, 그리고 토론토의 왕립 온타리오박물관의 학자들이 참여해 이뤄낸 공동 연구 성과로서, 영국의 생물학 저널인 ‘BMC 바이올로지’에 논문이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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