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도 거뜬히 버틴다 ‘그랭이 공법’

신라 건축물 불국사와 석굴암 피해 없어

지난 12일 경주에서는 국내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인 진도 5.8의 지진이 발생했다. 진도 5.8의 지진은 TNT 폭탄 50만 톤이 일시에 폭발하는 것과 맞먹는 위력으로서, 최근 북한의 핵실험으로 발생된 규모 5.0의 인공지진을 50배나 능가하는 규모다.

그랭이 공법으로 축조된 불국사 ⓒ 문화재청

그랭이 공법으로 축조된 불국사 ⓒ 문화재청

이번 지진으로 인해 경주와 그 일대 지역의 건물들은 벽이 갈라지고, 유리가 깨지는 등의 피해사례가 나타났다. 하지만 이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신라 시대의 문화재들은 극히 일부만 훼손된 것으로 드러나 놀라움을 안겨주고 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문화재 전문가들은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전통 건축 공법을 통해 문화재들이 보존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도대체 어떤 전통 건축 공법이길래 문화재들을 현대의 건축기술로도 대응하기 어려운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만든 것일까?

자연석의 선을 그대로 살린 그랭이 공법

경주 일대 지역은 우리나라에서 지반이 불안정한 곳으로 오래전부터 손꼽혀왔다. 부산에서 울진으로 이어지는 양산단층이 언제라도 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 활성단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통일신라시대에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사망자가 100여명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당시의 피해 상황 등을 근거로 하여 진도 8.0 이상의 강진이 경주 일대를 덮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지진에도 불구하고 당시 신라인들이 세웠던 불국사와 석굴암, 그리고 첨성대 등은 그 모습을 보존한 채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들은 자연석을 서로 맞물리게 촘촘히 쌓은 뒤, 그 위에 세우는 기둥의 밑면을 자연석의 형태대로 정밀하게 깎았다.

그랭이 공법이 적용된 석재 ⓒ 국립중앙과학관

그랭이 공법이 적용된 석재 ⓒ 국립중앙과학관

이 같은 전통 건축 방식을 ‘그랭이 공법’이라 일컫는다. 자연석에 기둥을 세울 때 기둥 아래쪽을 자연석 윗면의 굴곡과 같은 모양으로 그린 다음 그 부분을 다듬어서 자연석과 기둥이 마치 톱니바퀴 물리듯 맞물리도록 맞추는 것이다.

여기에 동틀돌을 추가하는 기술이 더해져 더욱 건물을 안전하게 지지하도록 만들면서, 전문가들은 과거의 신라인들이 활용한 내진설계 기술은 지금도 본받을 만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동틀돌이란 자연석들을 쌓을 때, 이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규칙적으로 박아둔 돌을 말한다.

실제로 그랭이 공법으로 세워진 불국사는 이번 강진에도 별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붕과 용마루, 그리고 담장 기와 일부가 파손되기는 했지만, 지진 규모에 비해 피해 규모는 극히 미미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평가다.

석굴암과 첨성대 또한 마찬가지다. 진입로 곳곳에 설치된 푯말이 떨어지고 산허리 일부가 무너졌지만, 석굴암 본존불은 평소와 다름없이 관광객과 참배객들을 맞았다. 첨성대 역시 우물정자 모양의 상단 돌이 심하게 흔들리기는 했지만 훼손된 부분은 없었다.

그랭이 공법을 탄생시킨 고구려

그랭이 공법이 통일신라에 의해 꽃을 피웠지만, 이를 처음 개발한 국가는 고구려다. 고구려의 성들은 대부분 자연지세를 활용하여 지어졌는데, 이들 성이 장대한 세월을 견뎌 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공법을 활용한 독특한 축성술 덕분이라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고구려 성들의 가장 큰 특징을 살펴보면, 성을 쌓는 땅에 있는 암반을 제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구려인들은 성을 쌓는 돌을 암반의 모양에 맞게 다듬은 다음, 암반위로 성을 그대로 쌓아 올렸다. 땅에 깊게 묻혀 있는 암반들이 성곽을 단단하게 지지해준다는 점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고구려인들은 아무리 울퉁불퉁하고 불규칙한 모양을 가진 암반이라 하더라도 이를 그대로 다른 돌이나 나무에 옮겨 그릴 수 있는 대나무로 만든 집게 모양의 연장을 만들어 사용했다. 한쪽 다리에 먹을 찍은 뒤 다른 재료에 그대로 옮기도록 한 것인데, 이 연장이 바로 ‘그랭이’다.

그랭이의 구조는 오늘날에 사용하는 컴퍼스(compass)와 흡사하다. 기둥을 자연석 위에 수직으로 세우고 그랭이의 두 다리 가운데 먹물을 묻힌 쪽은 기둥 밑에, 나머지 한쪽은 자연석의 윗면에 닿게 하여 윗면의 높낮이를 따라 상하로 오르내리면서 기둥을 한 바퀴 돌면 기둥 밑둥에 자연석의 요철에 따른 선이 그려지는 것이다.

현대의 컴퍼스를 닮은 그랭이 ⓒ 콘텐츠진흥원

현대의 컴퍼스를 닮은 그랭이 ⓒ 콘텐츠진흥원

그랭이로 자연석의 모양을 그대로 그려서 세운 기둥의 모습을 간단히 설명한다면, 돌 위에 나무기둥이 자연스럽게 올려져 있는 형태라 할 수 있다. 서양의 건축 양식인 기둥에 홈을 내고 주춧돌에 단단히 박아서 고정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다.

일반적으로 돌의 윗면을 따라 그대로 기둥을 올린 그랭이 공법보다는, 돌에 홈을 낸 뒤 그 위에 기둥을 박은 서양의 건축 방식이 더 견고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실험 결과 그랭이 공법으로 세운 건물이 지진에 더 강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양 건축 방식의 경우 돌에 홈을 내고 기둥을 박은 건물은 지진 발생 시 내려앉거나 반파 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반면에 그랭이 공법을 통해 지은 건물은 돌과 기둥 사이의 공간 때문에 지진으로 인한 충격이 건물에 전달되는 정도가 현격하게 줄어드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문화재청의 관계자는 “그랭이 공법으로 건축된 한반도의 전통건축물이 지진에 상당한 내구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라고 설명하며 “따라서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건물이 어긋나지 않고 원래의 모습을 보전 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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