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청년혁신가의 기발한 아이디어

'밭에서 즐기는 파티, 깡촌에 들어선 책방...'

“직접 농사 지은 재료로 밭에서 파티를 열면서 새로운 소비, 새로운 먹거리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원주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들이 정책에 반영되려면 정책 커뮤티케이터라는 새로운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외진 시골마을에도 사람들이 모여들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과 서점 하나쯤은 생겨도 좋지 않을까요.”

지난 6월 29일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센터장 한종호, 이하 강원센터)가 원주에서 개최한 ‘2018 지역생활문화 청년혁신가’ 데모데이 현장이다. 11명의 청년혁신가들이 지난 몇 개월동안 동분서주하며 다듬은 사업 계획을 처음으로 공개하는 자리다.

그래서인지 웃음 속에서도 긴장감이 역력하다. 누구는 카랑카랑 능숙하지만 누구는 수줍은 듯 어색하다. 발표가 처음이라는 이, 여태껏 이런 적이 없었는데 너무 떨린다는 이, 자신이 없어 아예 원고를 읽는 이까지… 하지만 젊음이 어디가랴, 저마다 치열해서 아름답다.

27일 강원창조경제센터가 마련한 지역생활문화 청년혁신가 1차 데모데이에서는 11개팀이 진행한 지역 혁신 프로젝트 아이디어가 소개됐다. ⓒ 조인혜/ ScienceTimes

27일 강원창조경제센터가 마련한 지역생활문화 청년혁신가 1차 데모데이에서는 11개팀이 진행한 지역생활문화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소개됐다. ⓒ 조인혜/ ScienceTimes

각 발표가 끝날 때마다 3명의 멘토들은 의견을 제시하거나 조언을 건넨다.

“이 사업은 창업을 전제로 하고 지원하는 내용인데, 수익 모델에 대한 고민이 더 있어야겠네요.”

“감자를 팔고 싶은 건가요, 이벤트를 하고 싶은 건가요. 초점이 분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비즈니스보다는 사회 운동에 더 적합한 모델 같아 보입니다. 다른 방법도 모색할 필요가 있네요.”

서바이벌 오디션도 아니고 지극히 부드러운 표정과 말투인데도 당사자가 된 청년들은 더 긴장한다. 머리를 긁적이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탄식을 내뱉기도 한다. 하지만 본인의 차례가 끝나고 청중으로 돌아오면 다른 발표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서 살아가는 동시대인에게 한없는 응원과 공감을 보낸다.

지역생활문화 청년혁신가 사업은 지역의 여러가지 일상을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가진 청년들을 발굴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결합해 사업화를 지원하는 내용이다. 지역 재생과 청년 창업이라는 두 정책의 화두가 연결되기 때문에 전국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사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그 중에 활발한 곳을 꼽으라면 단연 강원센터이다.

3년째 청년혁신가를 발굴해오고 있으며 해마다 지원 규모나 대상, 지원 내용이 풍부해지고 있다. 강원도청의 전폭적인 지원도 큰 힘이다. 지난 2016년 청년혁신가 전국 1위를 기록한 속초의 와이크래프트보츠(수제 카누, 카약을 활용한 새로운 해양레저 문화 정착)도 강원센터가 처음 발굴한 기업이다. 이제는 강원을 넘어 전국의 스타기업이 됐다.

청년혁신가로 선정되면 일정한 활동비와 멘토링을 지원받아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게 되며 가능성이 엿보이면 본 사업 지원으로 이어진다. ⓒ 조인혜/ ScienceTimes

청년혁신가로 선정되면 일정한 활동비와 멘토링을 지원받아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게 되며 가능성이 엿보이면 본 사업 지원으로 이어진다. ⓒ 조인혜/ ScienceTimes

올해는 총 17개팀이 선정됐다. 혁신가로 선정되면 일정한 활동비와 멘토링이 제공돼 사업계획서를 준비할 수 있으며 초기 창업을 지원하는 본 사업에 참여하는 자격이 주어진다. 이 사업의 특징은 경쟁 탈락 방식이 아니며 멘토들의 전문 멘토링이 매우 디테일하게 제공된다는 점.

이날 발표에서 내용이 다소 미흡했더라도 수정과 보완을 통해 본 사업으로 진입할 수 있다. 누구를 붙이고 떨어뜨리는 게 목적이 아니라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올려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들을 많이 발굴해낸다는 취지에서다.

# 지역에 새로운 경험을 입히다

이날 발표에서는 지역의 일상을 독특하게 만들거나 여행자나 방문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아이디어들이 다수 포함됐다.

춘천에서 핑크세레스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이미소 대표는 ‘밭에서 즐기는 파티(밭티)’라는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지난해 지역의 청년농부들과 함께 마련한 밭티 행사의 가능성을 엿본 것이다. 쉐프를 초청해 지역의 신선한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참석한 사람들과 함께 나눈다는 컨셉이다.

건강과 미각을 동시에 충족시키고, 도시인들에게는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며, 좋은 먹거리의 생산과 유통을 제대로 알게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감자 농사를 짓고 있어 농사의 브랜드화, 농작물의 응용 사업에도 관심이 많다.

강릉의 김소영 대표는 바다와 커피로 유명한 강릉에서 캘리그래피 체험이라는 문화 상품을 결합해 새로운 여행 경험을 제공하겠다며 청년혁신가에 도전했다. ‘바다 보다 캘리’라는 브랜드로 자신의 전문성을 살리면서 비즈니스 모델로도 정착되기를 바라고 있다.

아빠와 아이가 함께 하는 캘리 프로그램, 기업 워크숍 등을 통해 캘리그래피 체험이 주는 힐링의 효과를 확인했다고 한다. 멘토들은 “김소영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며 여러가지 비용 구조를 감안한다면 의미있는 지역의 문화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밭에서 즐기는 파티라는 의미의 밭티라는 아이디어도 등장했다. 지난해 단발성으로 진행한 밭티 행사가 호응이 좋아 비즈니스 모델로 만드는 중이다. 사진은 지난해 10월말에 열린 밭티 행사.  ⓒ 농림축산식품부 블로그

밭에서 즐기는 파티라는 의미의 밭티라는 아이디어도 등장했다. 지난해 단발성으로 진행한 밭티 행사가 호응이 좋아 비즈니스 모델로 만드는 중이다. 사진은 지난해 10월말에 열린 밭티 행사. ⓒ 농림축산식품부 블로그

고성에서 유니언이라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윤산 대표는 일반적인 숙박 시설의 룰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혁신가이다. 올 봄 가오픈을 하는 날 전봇대에 전단지를 붙인 효과인지 예약은 30분만에 다 찼지만 곧바로 후회를 했다고 한다. 자신이 원하는 손님들과 자신이 꿈꾸던 문화를 나누기 위함이었는데 전혀 다른 스타일의 투숙객들이 몰려왔다는 것.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었고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오후 6시 체크인, 다음 날 오후 4시 체크아웃이다. 3시-11시 룰을 따르는 일반 숙박 시설과는 다르다. 실컷 놀고 저녁에 와서 밤새 음악을 함께 듣거나 공동 부엌에서 얘기를 나누면서 일출을 함께 보는 독특함이 있다.

# “우리 동네도 이런 게 있다면…”

지방은 늘 열악하고 부족하다. 편의시설이나 문화시설은 대도시에 턱없이 뒤처진다. 지역 사람들이라고 문화에 대한 욕구가 없을까. 늘 갈증을 느끼는 부분이다.

여기에 관심을 갖고 비즈니스로 문제를 풀어보려는 아이디어들도 나왔다. 속초의 청년혁신가 최윤복 대표는 횟집-카페-닭강정이라는 속초의 이미지와 여행 공식을 조금 바꿔보고 싶었다고 한다. 속초에도 인디밴드들이 공연하고, 북토크가 열리는 그런 복합문화공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문제의식이다. 그 결과물이 ‘완벽한 날들’이라는 북카페겸 게스트하우스로 탄생했다.

일본 도쿄의 유명한 지역 서점 게이분샤나 포틀랜드의 파웰 서점처럼 속초의 상징적인 문화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최대표의 기대대로 아름다운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완벽한 날들은 칠성조선소, 동아서점과 함께 속초를 방문하면 들러야 하는 핫플레이스로 부상하고 있다.

김강석씨의 꿈도 다르지 않다. 속초에 연극하는 공간 하나쯤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6년전 귀향한 그는 시민들에게는 연극의 문턱을 낮추고 연극 동료들에게는 하고 싶은 연극을 실컷 하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씨어터 북카페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시보조금만으로는 생계유지가 힘들어 안정적인 수익을 생각하다가 강원센터 사업에 지원해 선정된 것이다.

멘토 중 한명이 “혹시 카페가 만만해보여서 사업모델에 넣은 것이냐”고 묻자 “솔직히 그런 면이 없지 않다”고 답하는 데서 순박한 예술가의 절박함이 느껴진다. 속초에서 연극은 희소성이 있어 다양한 방식의 시 지원 사업으로 연결하거나 연극에 국한하지 말고 라이브 하우스, 문화 아지트로 활로를 모색하는 것도 고려해볼만 하다는 조언이 나왔다.

태백 하장서 1길에 위치한 커뮤니티 공간 무브노드. 1층에 막장 서점을 만들기 위해 김신애 대표가 지역생활문화 청년혁신가에 도전했다. ⓒ 조인혜/ ScienceTimes

태백 하장서 1길에 위치한 커뮤니티 공간 무브노드. 1층에 막장 서점을 만들기 위해 김신애 대표가 지역생활문화 청년혁신가에 도전했다. ⓒ 조인혜/ ScienceTimes

태백의 하장성 마을은 태백시 중심에서도 30분 이상을 들어가야 하는 외진 곳이다. 이런 곳에 문화공간을 만들겠다고 나선 혁신가가 있다. 지난 봄부터 무브노드라는 커뮤니티 공간을 운영하는 김신애 대표. 비어있는 조그만 수퍼 건물 2층을 개조해 누구든지 와서 일도 하고 게임도 하고 회의도 할 수 있는 30평 공간을 만들었다. 외딴 시골 마을에 멋진 공간이 들어서자 마을 사람들은 물론 외지인들도 놀라며 계속 찾아오고 있다.

이번 청년혁신가 사업에는 1층에 막장이라는 이름의 서점과 가게를 오픈하기 위해 도전했다. 비우고 채우는 공간이 함께 있어야 시너지 효과가 날 뿐만 아니라 태백의 아이들에게도 좋은 문화 콘텐츠를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멘토들은 비즈니스 보다는 사회 운동에 더 가까운 모델일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지역 상황에 맞는 현실적이고 지속적인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동네를 바꾸고 일의 방식을 바꾸다

원주의 노주비씨는 지역 주민과 지자체를 연결하는 정책 커뮤니케이터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해 청년혁신가로 선정됐다. 지역 주민과 지자체 중간에 존재하면서 지역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구체적인 작업을 거쳐 정책 제안을 하는 프로세스이다. 원주청년정책네트워크 공동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는 노씨는 “언제나 소수만이 의견을 내고 그 중에서도 일부만 반영되며 더 다양한 의견은 묻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며 “주민의 이야기를 정책으로 제안해 정치 효능감을 높이는 것이 목표”라고 당차게 말한다.

실제 활동 기간동안 원주 중앙동과 학성동, 일산동 주민들을 다양하게 만났으며 도새재생 이슈부터 고령화까지 생각보다 많은 현안들이 나왔다고 전했다. 멘토들은 “매우 의미있고 필요한 일이지만 NGO에서 할 일인지, 위원회 등의 다른 형태로 해나갈 일인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청년혁신가 사업은 창업을 전제로 하고 있어 수익 모델이 어느 정도 마련돼야 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속초에 위치한 북카페겸 게스트하우스. 속초에 가면 들러야 하는 핫플레이스로 거듭나고 있다. ⓒ 완벽한날들

속초에 위치한 북카페겸 게스트하우스 완벽한 날들. 속초의 복합문화공간이자 반드시 들러야 하는 핫플레이스로 거듭나고 있다. ⓒ 완벽한날들

평창의 최지영씨는 다소 상기된 목소리로, 그러나 분명하게 말했다. “아버지가 키우는 오미자가 중간 상인에게 헐값으로 넘어가는 게 안타까워서 새로운 모델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평생 힘들게 오미자 농사를 지은 아버지를 보며 농사의 방식이 뭔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확 후 중간 상인에게 통째로 넘기는 형태가 아닌, 소비자들이 오미자 농사를 체험하게 하고 자신만의 오미자 농장을 가질 수 있는 체험-분양 모델 ‘당신의 오미자’를 기획했다. 당신의 과수원이라는 제주 체험농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당신의 오미자’는 믿을 수 있고, 직접 체험할 수 있고,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자기만의 과수원’을 지향한다. 또 즙이나 청으로만 판매되는 오미자를 생과를 이용해 상품을 만드는 것도 구상하고 있다.

이 외에 속초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음악을 작곡해 지역의 특징이 드러난 뮤직비디오를 만들겠다는 공민재 아티스트가 눈길을 끌었다. 속초의 자연경관을 티셔츠에 디자인으로 담겠다는 조서형씨의 ‘속초를 입다’, 갤러리 형태의 카페 공간에서 자신의 디자인 브랜드인 블루스(Bluth) 상품을 전시, 판매하는 권미소 대표의 블루스 스튜디오 계획도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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