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19,2019

전갈의 독도 잘 쓰면 약이 된다?

감염력 뛰어난 유해균 항생제로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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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잘 쓰면 약이 된다’라는 말은 딱 이런 경우에 해당되는 속담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독극물이 사용량을 줄이거나, 사용 방법을 바꿔 생명을 구하는 물질로 변신하는 것을 표현할 때 안성맞춤인 속담인 것이다.

과거 선조들이 민간요법으로 많이 사용했던 봉독(蜂毒)이 대표적인 경우다. 봉독이란 꿀벌의 산란관에서 나오는 독으로서 침에 쏘였을 때 여러 가지 피해를 주지만, 잘만 사용하면 신경통과 류머티즘, 그리고 요통 등에서 뛰어난 치료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대표적 절지동물인 전갈의 독에서 새로운 항생제 후보물질이 탄생하여 주목을 끌고 있다 Ⓒ rdmag.com

대표적 절지동물인 전갈의 독에서 새로운 항생제 후보물질이 탄생하여 주목을 끌고 있다 Ⓒ rdmag.com

이 같은 역발상 치료요법은 해외에서도 조금씩 활용되고 있는 추세인데, 최근 미국과 멕시코의 과학자들이 절지동물의 독을 이용하여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고 있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관련 기사 링크)

전갈 독에서 추출한 성분은 벤조퀴논 계열 화학물질

미 스탠포드대와 멕시코 국립대의 과학자들로 구성된 공동 연구진은 최근 들어 멕시코 동부에 서식하고 있는 대표적 절지동물인 전갈을 연구하느라 여념이 없다. ‘디플로센트러스멜리치( Diplocentrus melici)’라는 이름의 전갈이 갖고 있는 독에서 새로운 항생 물질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디플로센트러스멜리치는 상대적으로 작은 까닭에 품고 있는 독의 양도 많지 않다. 따라서 충분한 양의 독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여러 과정을 거친 끝에 0.5마이크로그램(㎍) 정도의 독을 추출하는데 성공했다.

과제 책임자인 스탠포드대의 ‘리차드 자레(Richard Zare)’ 교수는 “전갈의 독에서 추출한 물질을 공기 중에 노출시키자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변했다”라고 언급하며 “분석 결과 벤조퀴논(benzoquinone) 계열의 화학물질인 것으로 확인됐다”라고 밝혔다.

벤조퀴논은 유독성의 화학물질로서, 일반적으로 딱정벌레나 먼지벌레 등이 적으로부터 위협을 받았을 때 방어 차원에서 내뿜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변한 물질들은 알려지지 않은 1,4-benzoquinone의 두 가지 화학 성분들이다. 빨간색의 물질은 분자 구조에서 가지 하나에 산소 원자가 연결되어 있고, 파란색 물질은 황 원자가 연결되어 있다.

디플로센트러스멜리치 전갈은 다른 전갈들보다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 stanford.edu

디플로센트러스멜리치 전갈은 다른 전갈들보다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 stanford.edu

이에 대해 자레 교수는 “벤조퀴논은 이전부터 항생 물질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연구진은 여러 유해균에 추출한 독을 적용해 보았다”라고 소개하며 “그 결과 빨간색으로 변한 물질은 감염력이 높기로 유명한 황색포도상구균을 사멸시키는데 효과적이었고, 파란색 물질은 결핵균을 억제하는데 효과가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놀라운 점은 빨간색과 파란색을 띤 항생 물질들이 건강한 인체 조직은 해치지 않으면서도, 치료가 어려운 세균을 퇴치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유해균을 대상으로 좋은 효과를 거뒀다고 해서 당장 항생제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치료제로 개발되기까지는 앞으로도 수많은 검증 단계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공포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전갈이 항생제를 만드는 일에 도움을 준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뱀의 독에서는 고혈압 치료제 성분 추출

전갈의 독이 항생제로 사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미국과 멕시코의 공동 연구진이 확인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치료제로 개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살모사의 독은 이미 정식 의약품으로 개발되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고 있다. 바로 고혈압 치료제인 ‘캡토프릴(Captopril)’이다.

고혈압은 현재 전 세계 인류의 15% 정도에 해당하는 10억 명 이상이 앓고 있고, 매년 700만 명 이상이 이 질환과 연관된 병으로 목숨을 잃고 있는 난치병이다.

이 병은 다른 질병들과는 달리 국가의 경제수준과 별로 관련이 없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가난한 나라의 주민들은 돈이 없어 관리를 제대로 못 받는 까닭에 걸리고, 잘 사는 나라의 주민들은 너무 잘 먹어서 걸리기 때문에 국가와 상관없이 고르게 환자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고혈압의 진단과 치료에 기준이 되는 가이드라인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처럼 질환 적용의 범위는 예전보다 넓어지고 있는 반면에 완치는 어렵다 보니 환자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면서 관련 약품 시장도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고혈압치료제는 살모사의 독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 cnn.com

고혈압치료제 ‘캡토프릴’는 살모사의 독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 cnn.com

이처럼 하루가 다르게 급성장하고 있는 고혈압 시장에서 가장 큰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고혈압 억제제가 미국의 대형 제약회사인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사가 개발한 캡토프릴이다.

이 약품이 개발 단계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주성분이 살모사의 독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남미 대륙에 서식하는 하라라카 살모사(Bothrops jararaca)는 ‘한 번 물리면 끝’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남미인 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인 독사다.

이 뱀에게 물리면 즉시로 혈관이 이완되면서 혈압이 급격하게 낮아지면서 죽게 되는데, BMS 사의 연구진은 이 같은 현상에 주목했다. 혈압을 낮추는 성분을 분리하여 이를 고혈압 억제제로 활용하겠다고 착안한 것.

연구진은 다년간의 연구 끝에 살모사의 독에서 혈관 수축을 억제하는 성분으로 캡토프릴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1981년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처(FDA)에서 승인을 받은 블록버스터 고혈압약 캡토프릴은 이렇게 탄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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