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물리학의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 아마 그것은 통일장이론(unified theory of field)을 완성시키는 일이다. 통일장 이론은 단어의 의미 그대로 모든 것을 단일화(unified)시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다. 이것은 4가지 힘에 의해 지배되는 자연현상을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근대 물리학의 천재 아인슈타인이 꿈꾸었던 바가 바로 이것이다. 다른 현상에 서로 다른 이론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제각기 다른 현상을 하나의 이론으로 통일 시키는 것이 아인슈타인이 그렇게 갈망했던 꿈이었다.
그리고 이론은 자연계의 4가지 힘인 만유인력법칙의 중력, 전자기법칙의 전자기력, 물질의 붕괴를 설명하는 약력, 핵의 구조를 설명하는 강력을 하나의 이론으로 통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 특히 끈이론을 통해 양자역학과 중력을 통일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이론물리학자들 사이에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과연 끈 이론이 아인슈타인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을지는 아직도 미지수이고 그것이 현실화될 날도 여전히 요원하다. 그러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Princeton University)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명문이다. 그 가운데는 전 세계 이론과학자들이 동경하는 고등연구소(Institute for Advanced Study)가 있다. 프린스턴 대학의 고등연구소는 아인슈타인, 컴퓨터를 발명한 수학자 폰 노이만, 원자탄 개발의 이론적 지휘자 로버트 오펜하이머 등 20세기 이론물리학을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최고의 과학자들이 거쳐간 곳이다. 또 프린스턴은 고등연구소와 더불어 세계 핵융합 연구의 중심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프라즈마 연구소도 운영하고 있다.
이 곳에서 일했던 아티시 다브홀카(Atish Dabholkar) 박사는 인도의 대표적인 물리학자다. 그는 끈이론을 통한 블랙홀 연구에 일가견을 갖고 있는 세계적인 학자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고등연구소에서 연구원을 지낸 다브홀카 박사는 캘리포니아 공대(Caltech)에서 조교수로 있다가 현재 인도의 대표적인 싱크탱크 집단인 타타 연구소(Institute of Tata)에서 정교수로 이론물리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30년 동안 지켜온 스티븐 호킹 박사의 블랙홀 이론이 잘못됐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다브홀카 박사는 지난 14일부터 시작해 25일 까지 계속된 '제9회 끈이론 겨울학교'에 강연자로 참석했다. 이 국제 세미나는 기초과학의 요람인 고등과학원(KIAS, 원장: 김만원)과 아태이론물리학센터(APCTP)가 공동 주관하는 행사이다. 이에 사이언스타임즈는 끈이론의 권위자인 다브홀카 박사를 만나 블랙홀의 개념과 스티븐 호킹 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인도의 과학기술 현황과 과학자의 위상 등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이론이란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 질 때마다 항상 수정되고 변화하기 마련이다. 내가 한 블랙홀에 대한 연구가 스티븐 호킹박사의 이론과 정면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호킹 박사가 블랙홀 이론을 주장하면서 약간 간과했던 부분을 주장한 것이다. 호킹 박사의 블랙홀에 대한 연구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물질의 정보는 완전히 소실되고 에너지 보존법칙이 깨진다는 주장이었다. '호킹복사(Hawking Radiation)'로 불리는 이 현상은 현대물리학의 양대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결합해 블랙홀도 빛, 즉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정보와 에너지는 블랙홀 속에서도 보존된다'는 특수상대성 이론이 맞다. 블랙홀이 삼킨 물질은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나타난다는 내용이다. 이 주장은 끈이론에 의해 해답을 얻을 수 있는 문제다. 물질은 덩어리가 아니라 진동하는 끈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물질의 정보는 남는다.
▲ 과학과 종교에 대한 박사의 견해는
나는 인도에 살고 있는 인도인이다. 인도인은 80% 이상이 힌두교를 믿는다. 나도 힌두교를 믿는다. 인간은 원래 실질적인 면(증명된 과학)을 최고의 선으로 생각하면서도 그와 반대로 증명되지 않은, 윤리적이거나 영혼적인 면에 의지하려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과학적인 것도 중요하고 때로 영혼이라는 개념도 필요하다. 우리처럼 기초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은행에 취직해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이 분야를 선택함으로써 평화스러운 영혼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꼭 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평화스러운 영혼을 유지하고 있는 이상 그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종교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영혼의 문제이며 자기 구원을 찾는 방법이다. 그러나 과학은 증명된 이론으로 다른 사람에게 평화를 줄 수 있다. 과학은 공유할 수 있지만 종교는 개인적이기 때문에 공유할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어느 종교가 옳고 그르다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나는 타 종교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킨다.
▲ 인도는 과학자 많고, 세계적인 과학강국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전통적으로 볼 때 사고나 사색이 많은 문화를 갖고 있다. 힌두교는 역동적이면서도 그 이면에는 명상과 같은 사색이 많다. 인도에서 탄생한 불교도 그렇다. 그러한 전통이 과학적인 성향과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나중에 따지더라도 말이다.
또한 인도는 아라비아 숫자를 발명했다. 특히 0이라는 숫자를 만들었다. 그래서 대단히 수학적인 나라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마야 문명에서도 아라비아 숫자를 썼고, 인도가 자랑하는 기하학도 옛 그리스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그래서 특별히 인도가 다른 나라보다 수학이나 과학에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학문을 존중하는 나라는 반드시 학문이 발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과학이 발달된 서구사회를 보면 당장 돈을 갖다 주는 학문이 아닌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분야의 학자들을 존경하는 풍토가 뿌리깊다. 그래서 기초과학이 발달하는 것이다. 인도는 경제적으로 풍족한 나라가 아니지만, 과학에 대한 지원이 활발하고 과학자를 존경하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과학적인 토대가 형성된 것 같다. 또한 문화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수학은 많이 발전된 나라라고 생각한다.
- 김형근 객원편집위원
- 저작권자 2005-02-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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