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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임동욱 기자
2010-02-09

인간의 ‘몸’을 생각해야 미래의 컴퓨터 이어령 교수, ‘서울대 컴퓨팅 연구포럼’서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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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라는 놈은 60kg의 사람을 옮기겠다고 2톤이 넘는 쇳덩이 전체를 움직입니다. 물컵을 달라는데 탁자째 건네주는 꼴 아닙니까?”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의 일침에 소프트웨어 공학도들의 폭소가 터진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와 컴퓨터연구소의 공동 주관으로 5일 그랜드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2010 서울대학교 컴퓨팅 연구포럼(SNU Computing Research Forum 2010)’ 현장이다.


이 교수는 “많은 전기를 소모하는 컴퓨터에 비해 인간의 두뇌는 20와트의 작은 전류만으로 모든 계산을 해낸다”며, 인간의 신체를 중심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설계하는 것이 미래 컴퓨팅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디지로그’라는 개념을 통해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융합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 이 교수는 ‘컴퓨팅과 신체성’이라는 주제의 기조연설을 통해 “기술이 아닌 인간 중심의 디지털 세상, 이른바 ‘어금니로 씹을 수 있는 디지털’을 목표로 해야 모두가 행복해진다”고 강조했다.

인간을 지향하는 소프트웨어 만들어야

이날 행사는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장인 김형주 교수의 환영사로 시작되었다. 김 교수는 “대한민국의 차세대 성장동력은 융합기술”이라고 강조하며, “융합기술의 핵심은 기술을 제어하는 소프트웨어(SW)이므로 IT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축사를 맡은 오해석 대통령IT특보가 “어제(4일) 정부가 ‘소프트웨어 강국 도약 전략’을 발표했다”고 전하며, “하드웨어 중심의 IT강국에서 소프트웨어로 영역을 넓혀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이어 이어령 교수가 ‘컴퓨팅과 신체성’이라는 제목으로 기조연설을 시작했다. 이 교수는 “아무리 성능 좋은 배도 방향 없이 출항하면 표류선이 된다”며, 과학기술이 인간을 지향하지 않고 표류하는 데서 비극이 생겨난다고 지적했다.

과학은 대상을 ‘객체’로 바라보고 거리를 둔 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구방법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기계를 다룰 수 있는 ‘핸들’을 제공해 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관찰 주체’인 인간까지도 객체로 보고 연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인간을 라이브웨어(Liveware) 즉 ‘살아 있는 도구’로 바라보는 기술중심적 사고방식을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심리학자 엘린 에드워즈(Elwyn Edwards)는 항공기 조종을 위한 새로운 시스템을 고안하던 중 1971년 ‘셸(SHEL) 이론’을 만들어낸다. 소프트웨어(Software), 하드웨어(Hardware), 환경(Environment)의 3가지 요소가 인간(Liveware)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이후 1975년에는 조종사 프랭크 호킨스(Frank Hawkins)가 타인(Liveware 2)의 관계를 추가시켜 ‘SHELL 이론’으로 발전시킨다.


항공기와 조종사는 한몸처럼 움직여야 하므로 인간과 기계를 포함한 조종석 전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파악해야 한다. 인간도 기계처럼 하나의 ‘도구’로 취급되는 셈이다.

두뇌지능이 아닌 신체지능을 활용하라

인간이 하드웨어 객체를 조종하는 주체라면, 소프트웨어는 인간의 편일까 하드웨어의 편일까. 이 교수는 이처럼 ‘주체와 객체’에 대한 고민과 반성을 거쳐야 세계적인 기술이 탄생한다고 주장했다. “인터페이스(interface)라는 개념을 통해 하드웨어와 인간이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컴퓨터 자판은 숫자 아랫부분의 자판이 Q, W, E, R 식으로 배열되어 있어서 쿼티(Qwerty) 키보드라 불린다. 그런데 가장 많이 쓰는 글자인 ‘a’는 익숙하지 않은 새끼손가락으로 눌러야 하고, 거의 쓰지 않는 ‘y’는 민감한 검지로 눌러야 한다.

그래서 빠른 속도로 타이핑을 치는 데 한계가 있다. 초기 타자기를 개발할 때 일부러 느리게 치도록 만든 것이다. 활자봉이 종이에 글자를 찍고 돌아올 때 서로 엉키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기계 중심의 사고방식 때문에 인류는 아직도 구식 자판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컴퓨터도 인간을 객체로 보는 태도에서 발전해 왔다. ‘유레카’라는 외침으로 유명한 아르키메데스도 투석기를 발명해서 전쟁에 사용했고, 3차방정식의 해법을 최초로 발견한 수학자 타르탈리아도 이 위대한 발견을 탄도 계산에 사용했다. 인간을 섬멸의 ‘대상’으로 보는 데서 현대 과학문명이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이 객체에서 주체로 본래의 지위를 되찾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교수는 인간의 ‘신체’에서 해답을 찾았다. “기계를 활용하는 주체인 인간의 신체를 중심에 놓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인간은 계산 중심의 ‘두뇌지(頭腦知)’보다 몸을 움직이는 ‘신체지(身體知)’를 활용할 때 훨씬 더 큰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다중지능’ 개념의 창시자인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ener) 하버드대 교육학과 교수는 인간이 지닌 여러 가지의 지능 중 하나로 ‘신체운동지능(bodily-kinesthetic intelligence)’을 제시한 바 있다. 몸을 사용하는 것은 인간에게 내재된 본능이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조건이다.

이 교수는 “인간의 신체성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 미래 컴퓨팅의 과제”라고 역설하며, 아이폰을 그 예로 들었다. 이 교수에 따르면, 국내 하드웨어 기술수준보다 나을 게 없는 아이폰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인간의 신체를 고려한 인터페이스 디자인’ 덕분이다. 화면을 더 크게 보고 싶으면 손가락을 벌리고, 기기를 회전시키면 그에 맞게 화면도 바뀌는 등 ‘신체성’을 중심에 놓은 것이다.

또한 최고의 하드웨어를 갖춘 소니의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이 닌텐도의 단순한 게임기 ‘위(Wii)’의 열기를 뛰어넘을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골프 게임을 할 때 버튼을 누르는 것은 두뇌를 사용하는 기존의 방식이지만, 실제로 골프채를 손에 쥔 것처럼 팔을 휘두르는 게임은 신체지능을 통해 즐거움을 배가시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정확한 숫자 계산을 하기 위해 컴퓨터가 발명되었다면, 미래에는 인간의 마음을 정확히 읽어내기 위해 컴퓨터가 발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생물의 신체적 기능을 연구하는 생체모방기술(biomimicry) 등 ‘신체성’을 연구하는 것이 미래 컴퓨팅 산업이 핵심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임베디드 기술로 소프트웨어 식민지 벗어날 때

이어 김흥남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이 ‘유비쿼터스 컴퓨팅을 위한 임베디드 소프트웨어기술 동향’이라는 제목으로 두 번째 기조연설을 진행했다.

김 원장은 “100년 전 우리나라는 경술국치(庚戌國恥)로 백성들이 시름에 잠겼다”며, “현재의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당시 조선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면 ‘꿈같은 이야기’로 치부되었을 것”이라는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지금부터 100년 후의 세상을 꿈으로 생각하지 말고, IT기술과 소프트웨어 공학의 역할을 고민하자는 의미다.

김 원장은 “70년대의 대형 메인프레임(mainframe) 컴퓨터 시대, 80~90년대의 개인용 PC 시대를 거쳐 2000년대는 포스트(post)-PC 시대가 열렸다”며, 휴대폰·디지털TV 등 일상용 전자기기로 기능이 합쳐지는 ‘모바일 컨버전스 컴퓨팅(Mobile Convergence Computing)’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핵심에 ‘임베디드 소프트웨어(Embedded SW)’가 있다. 하나의 기기로 다른 기기를 제어해서 통합적인 기능을 가능케 하는, 이른바 ‘기기를 똑똑하게 만들어주는(Make Things Smart)’ 기술이다. 김 원장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분야를 아우르는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확보해서, 외국산 소프트웨어 식민지에서 벗어나 세계를 선도하자”고 역설했다.

오전의 기조연설에 이어 오후에는 임베디드 시스템(Embedded System), 미래 컴퓨팅 패러다임(Future Computing Paradigm), 그래픽과 HCI기술(Graphics & HCI), 컨버전스(Convergence) 등 4개 트랙에 따라 16개 세션이 진행되었다. 참가자들은 ‘미래 웹 기술’, ‘클라우드 컴퓨팅’, ‘의료영상을 위한 그래픽스 기술’, ‘컨텐트 기반 음악검색’ 등 다양한 세션에 참가하며, 소프트웨어 강국을 향한 꿈을 키웠다.
임동욱 기자
duim@kofac.or.kr
저작권자 2010-02-0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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