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출신 턱없이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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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프 대학(Cardiff University)의 리즈(Teresa Rees) 부총장은 최근 한국과학문화재단과 주한 영국대사관이 공동 주최한 ‘제1회 한·영 여성과학자 포럼’에 참석, 유럽이 당면하고 있는 이공계 기피현상을 유럽의 전체적인 문제로서 하나의 위기로 표현했다.
영국측에서 참여한 5명의 강연자 가운데 유일한 사회과학 전공인 리즈 부총장은 “2010년도 EU가 요구하고 있는 과학기술 전문가는 70만 명에 이르고 있는데 아마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40만 명의 인력이 모자랄 것”으로 진단했다.
‘어떻게 여성을 과학기술 분야로 유도할 것인가’를 주제로 강연한 리즈 부총장은 “과학기술 정책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 모든 초점을 여성에게만 맞추려는 시도가 많았다”며 사회와 문화의 전반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여성을 위한 과학정책’은 실패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여성 과학자는 멋진 남자를 만날 수 있어’, 완전 실패
“1990년 영국을 포함해 유럽 여러 나라들이 여성 과학기술인을 양성하기 위해 여러 가지 운동을 펼쳤습니다. 먼저 장점을 홍보했습니다. 언론을 동원해 대대적으로 정부의 지원책도 알렸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마치 ‘좋으면 자기네들이나 하지 우리는 왜?’와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그래서 약간 다른 각도에서 운동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손을 더럽히지 않고 공학을 할 수 있는 방법’, ‘과학자가 돼서도 훌륭하고 멋있는 남자를 찾을 수 있다’와 같은 프로젝트를 동원해 유치 운동을 펼쳤지만 실패했습니다. 그저 실패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리즈 부총장은 실패한 이유에 대해 “당시의 프로젝트는 초점을 여성에게만 돌렸기 때문”이라며 “더 중요한 이슈인 정부의 정책과 절차, 시스템, 교육의 구조, 고용주 등의 문제를 등한시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특히 교육의 구조와 고용주라는 문제를 소홀히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지금은 프로젝트를 그 방향으로 돌리고 있다.
“여성에게만 초점을 맞추면 실패해”
여성의 과학계 진출을 유도하기 위한 기구는 많다. Woman and Science Unit이 있고 또 분야별로 Woman and Chemistry Unit 같은 기관들이 많다. 그러나 EU의 대표적인 기관은 헬싱키 그룹(Helsinki Group)으로 33개 유럽 모든 국가가 참여하고 있다. 2000년 헬싱키에서 모여 발족됐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에는 각국의 과학부, 교육부, 여성부 등 대표들도 참여한다.
리즈 부총장은 각기 다른 나라의 대표들과 만나 토론하는 과정에서 공통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탁아 및 육아시설이 세계 최고로 잘 갖춰졌다고 하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도 있고 공산주의 국가였던 동유럽 대표들도 다 참여합니다. 특히 동유럽의 여성 과학기술인은 서유럽보다도 더 많습니다. 그리고 남자보다도 그 수가 많습니다”
“공통점은 학부(대학) 시절에는 이공계 전공 여학생의 수가 남학생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많기도 하지만 커리어 관리가 필요한 시기(박사과정과 교수직)에는 여성의 수가 뚝 떨어진다는 거죠. 많은 경우가 15%입니다. 동유럽도 현직에는 여성이 많지만 고위직은 남자보다 적습니다. 그리고 북유럽의 경우 육아에 걱정이 없으면 과학연구에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더 떨어집니다. 하긴 사회보장제도가 너무 잘 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왜 그럴까요?”
“육아 탁아시설이 좋은 북유럽도 마찬가지”
리즈 부총장은 그 이유가 포스트 닥터(박사취득 연구자)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박사 후 과정에 들어가면 교수가 직접 학생을 고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취향이 비슷하고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고 자기 이론을 뒷받침 할 학생을 뽑는다. 여기에는 남학생 선호도가 절대적으로 높다. 그 높은 비율은 자동적으로 남성 교수를 많이 만들게 된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리즈 부총장은 ‘복제된 인간은 복제된 사고를 낳을 뿐이다(Cloned people produce cloned ideas.)’라는 말을 기업의 모토로 삼고 있는 다국적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를 인용하면서 “연구의 다양성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보장될 때 과학기술의 혁신을 이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남자 교수가 많은 것이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리즈 부총장은 “교과목에 따라 학습 스타일에 있어서 남자와 여자가 어느 정도 다른 성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며 “그렇다면 여성의 성향에 맞는 과목에는 여성이 당연히 많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특별한 과목을 지칭하지 않고, 여성은 문제 지향적이고 구체적인 반면 남성은 추상적이라고 차이점을 지적하면서 교수 스타일도 여성에 맞게 짤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공동으로 연구하고 싶어”
한편 리즈 부총장은 재직하고 있는 카디프 대학이 있는 웨일즈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녀 50대50의 의원으로 의회를 운영하고 있는 지역이라며 다른 대부분의 지역 의회건물 지하에는 당구장이 있고 스낵 바도 있지만 웨일즈 의회건물 지하에는 탁아소가 있다는 자랑도 했다. 리즈 부총장은 웨일즈의 양성평등위원회 위원장((1996~2002)을 맡을 정도로 열성적이다. 또 영국 상공부 운영그룹 산하에 ‘양성평등과 인권위원회’ 설치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리즈 부총장은 “이러한 여성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변화하고 있는 문화의 양상을 보면 별로 나아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없다”며 “문화를 바꾸고 변화시킨다는 게 너무 어렵고 여성에게는 너무 힘든 도전”이라고 말했다. 사회학을 전공한 리즈 교수는 과학기술에서의 평등이 곧 양성평등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다.
“우리(여성)들은 각기 다른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만큼 여러 가지 패턴을 교류하면서 무엇이 우리에게 유리한 방책인지를 연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앞으로 영국과 한국 간에 활발한 교류가 이어지고 그러한 노력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강연을 마무리했다.
- 김형근 편집위원
- 저작권자 2006-04-0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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