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한센병 환자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방사능탄소 연대측정 결과 5~6세기로 판명된 이 유골은 이미 1950년대 초에 출토되었지만 그로부터 60년도 더 지난 지금에서야 한센병 관련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센병은 피부와 골격의 변형을 초래한다. 그러나 신체에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한센병 환자의 유골이라 확정 짓지 못하고 있었다.
네덜란드 라이덴대학교와 영국 버밍엄대학교를 주축으로 한 다국적 연구진은 유골에서 일부를 채취해 DNA 검사를 실시했고 원인 박테리아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타 지역에서 실시된 연구과 비교한 결과 북유럽에서 전파된 것으로 나타났다. 7세기 이후에 영국 남부에서 유행한 한센병과는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공포와 차별 불러일으킨 한센병
흔히 '나병'이라 불리는 한센병(leprosy)은 수천 년 동안 인류를 괴롭혀왔다. 지금까지 발견된 증거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지난 2009년 인도 북서부 라자스탄 주에서 발굴된 4000년 전의 두개골이다.
기원전 2000년은 인더스 문명이 번성했던 시기다. 그러나 동시에 한센병 환자들도 무수히 발생했다. 최소 3천년 된 고대 산스크리트어 경전 아타르바 베다(Atharva Veda)에도 한센병에 대한 묘사가 적혀 있다.
병은 지위고하를 따지지 않고 펴져나간다. 역사적으로는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던 12세기 예루살렘의 국왕을 맡았던 보두앵 4세(Baudouin IV)가 한센병에 걸린 것으로 전해진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2005년 영화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에서는 철가면을 쓴 채로 등장한다.
한센병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은 1873년 노르웨이 의사 게르하르트 아르마우어 한센(Gerhard Armauer Hansen)이 원인 박테리아를 찾아내고 이듬해 논문을 발표하면서부터다. '나균'이라고도 불리며 한센병을 일으키는 미코박테리움 레프레(Mycobacterium leprae)는 인류가 최초로 발견한 박테리아이기도 하다.
가톨릭의대 한센병 연구소의 채규태 교수에 따르면, 다른 어떤 질병보다 한센병이 공포의 대상으로 취급받은 이유로 7가지를 꼽을 수 있다.
△ 잠복기가 3~30년으로 매우 길다 △ 인공배지에서 증식시키지 못해 연구가 더뎠다 △ 자율신경, 감각신경, 운동신경 등 신경에 병을 일으킨다 △ 사람이 유일한 보균체이자 숙주다 △ 발병 전 상태 검사가 불가능해 역학조사가 쉽지 않다 △ 나균이 검출되지 않는 나병환자가 있다 △ 피부와 골격이 변형되어 공포를 부추겼고 격리와 차별을 불러왔다 등이다.
5~6세기 북유럽에서, 7세기 중부유럽에서 따로 전래돼
모든 병이 그러하듯 한센병 또한 인간의 이주로 인해서 전파되고 확산된다. 우리나라의 한센병은 대부분 중국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 한국, 일본, 북미, 남미의 나균 형태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극소수지만 인도, 캄보디아, 베트남, 필리핀, 오키나와에서 이어지는 나균이 국내 남부 해안에서 발견된 적도 있다.
그렇다면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들은 언제 어떻게 한센병이 전파되었을까. 일본의 경우는 612년 경 "백제에서 귀화한 사람이 의심환자를 바닷가에 버리려 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은 그보다 100~200년 앞선 시기에 북유럽에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1953년 10월부터 1954년 4월까지 런던 북쪽의 소도시 그레이트 체스터포드(Great Chesterford) 인근에서 진행된 앵글로색슨 족의 무덤 발굴 과정에서 한센병 박테리아를 보유한 유골이 출토되었다.
'GC96'이라 이름 붙여진 이 유골은 21~35세 남성이며 방사능탄소 연대측정 결과 5~6세기에 매장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7세기의 한센병 기록보다 최소한 100년 이상 앞선 증거가 발견된 셈이다.
게다가 유골의 DNA에 포함된 지방질의 바이오마커(biomarker)를 분석하자 중부 유럽에서 전해진 7세기의 나균과는 다른 계열인 것으로 밝혀졌다. 전파 경로가 다르다는 의미다. 유골의 스트론튬 및 산소 동위원소 분석에서도 영국 바깥에서 새로 들어온 인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유입 경로 중 동일한 나균이 분포되어 있던 곳은 북유럽이었다. 앵글로색슨 족의 일반적인 이동 경로와도 일치하는 결과다. 유전자 분석이라는 현대 기술을 만나기까지는 일반적인 유골에 불과하던 이 북유럽 청년은 이제 영국에 처음으로 한센병을 전파시킨 인물이 되었다.
연구 과정을 담은 논문 '나종성 한센병 징후 고대 앵글로색슨 유골에 대한 골학적 분자생물학적, 지구화학적 분석 결과(Osteological, Biomolecular and Geochemical Examination of an Early Anglo-Saxon Case of Lepromatous Leprosy)'는 지난달 미국 온라인 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에 게재되었다. (링크 참조)
- 임동욱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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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05-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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