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15,2019

‘쓰레기 DNA’가 질병 치료의 열쇠?

심장병부터 암, 정신질환에 정크 DNA 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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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시작되었을 때 과학자들은 유전자를 발견하여 생명현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단백질들을 밝혀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즉, 그들은 모든 유전자는 DNA를 이루는 개별적 구성요소이며, DNA의 염기서열은 곧 특정 단백질의 코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정크 DNA가 다양한 질병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ScienceTimes

하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인간의 게놈을 해독하는 데 성공한 과학자들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유전자가 게놈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불과 3%에 지나지 않으며, 유전자 사이에는 수십억 개의 다른 염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처럼 유전자 사이에 존재하며 단백질을 만드는 방법을 지시하고 있지 않는 97%의 염기들을 일컬어 과학자들은 ‘정크 DNA’라고 불렀다.

그럼 과연 정크 DNA는 그 명칭이 뜻하는 것처럼 쓰레기 같은 물질일까.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다면 왜 유전자의 97%를 차지할 만큼 엄청나게 많은 양이 존재하는 걸까.

이와 관련해 정크 DNA가 다양한 질병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정크 DNA의 기능을 분리·조절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될 경우 다양한 질병의 새로운 치료법이 될 수 있으므로 최근에 정크 DNA가 새삼스레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단백질을 만드는 방법을 지시하지 않는 비코딩 DNA의 대부분은 정크 DNA로 치부되어 왔다. 하지만 1998년 과학자들은 일부 비코딩 DNA가 작은 비코딩 RNA를 만들어내며, 이 작은 RNA들이 유전자를 침묵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곧 비코딩 DNA가 유전자의 활성을 켜고 끄는 스위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RNA란 DNA가 가지고 있는 유전정보에 따라 필요한 단백질을 합성할 때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고분자 화합물을 가리킨다.

그 후 정크 DNA 중 상당 부분은 인간의 생명현상을 유지하는 데 일익을 담당한다는 사실이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후원하고 미국·영국·일본·스페인·싱가포르의 32개 연구소 442명의 과학자가 참여한 ‘ENCODE’라는 명칭의 국제 연구프로젝트팀에 의해 밝혀졌다.
 
즉, 대부분의 정크 DNA는 특정 유전자가 발현되거나 침묵하는 것을 도와주는 스위치 역할을 하며, 어떤 세포가 신장 세포가 되고 어떤 세포가 뇌세포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스위치 때문이라는 것.

특정 유전자를 켜고 끄는 스위치 역할

이 다국적 프로젝트팀은 게놈을 구성하는 약 30억 개의 염기들이 수행하는 역할을 개별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147개의 인간세포를 대상으로 컴퓨터 분석 및 생화학적 검사, 염기서열 분석을 실시했다.

그 결과 다른 유전자의 활동을 조절하는 스위치 400만 개를 새롭게 발견했으며, 각 스위치는 심장병에서 정신질환까지 다양한 질병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스위치들은 대상 유전자에 근접해 있거나 멀리 떨어져 있는데, 상이한 조합을 이루어 상이한 세포들에게 독특한 유전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게놈에 의해 생성되는 일부 RNA 가닥들 역시 특정 유전자로부터 생성되는 단백질의 양을 조절하는 데 기여한다고 한다. 따라서 특정 유전자의 활성을 조절하는 과정은 지금껏 생각되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것으로 보인다.

ENCODE 팀에 의하면, 게놈 DNA의 76%는 몇 가지 종류의 RNA로 전사된다고 하는데, 이는 당초 과학자들이 예상했던 것을 상회하는 수준이다. 또한 상당수의 RNA는 단백질의 합성을 돕는 중간 매개자의 역할을 하지 않으며 그 자체로서 완제품이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실제로 정크 DNA가 각종 질병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낸 연구결과들이 많다. 영국과 독일의 공동 연구팀은 정크 DNA가 호지킨성 림프종 환자에게서 암세포의 성장을 촉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정크 DNA의 정체는 바이러스에서 유래한 LTR로서, 수백만 년에 걸쳐서 인간 게놈에 축적된 유전물질이다.

공동 연구팀은 불량 상태의 활성 LTR이 인간의 암 성장을 주도적으로 조절하는 프로세스를 밝혀냈는데, 그 같은 메커니즘은 다른 형태의 혈액암 발달에도 관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로렌스버클리 국립연구소의 연구진은 정크 DNA가 ‘관상동맥질환’이라는 심장질환의 위험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관상동맥질환이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동맥의 벽에 지방성 플라크가 축적되어 발생하는 질병인데, 9p21 염색체의 비코딩 확장부분이 관상동맥질환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연구진은 그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마우스의 염색체에서 동일 부분을 비활성화시킨 다음 관찰한 결과, 그 정크 DNA가 없는 마우스들은 관상동맥질환으로 정상 마우스보다 일찍 사망하고, 일부 마우스들은 암이 발병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

치명적인 신경질환과도 연관되어 있어

정크 DNA가 뇌 발달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몇 가지 치명적인 신경질환과 연관되어 있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캘리포니아대학 샌프란시스코(UCSF)의 연구진은 유전자의 활성화와 DNA에서 만들어진 ‘긴 비부호화 RNA(lncRNA)’의 연관성을 알아보기 위해 컴퓨터 분석을 수행했다.

유전자의 DNA에서 전사하여 단백질 생산의 가이드 역할을 하는 ‘메신저 DNA’와는 달리 lncRNA는 단백질 생산을 위한 청사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ncRNA는 메신저 RNA와 동일하게 DNA에서 전사되고 핵산 구성의 특이한 염기서열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UCSF 연구진의 연구 결과, lncRNA는 신경퇴화질환인 헌팅턴질환과 연관이 있으며, 알츠하이머병과 발작성 질환, 우울증 등과는 약한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정크 DNA가 생물체를 복잡하게 만드는 데 전혀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 미국과 멕시코 등 국제 연구진의 연구결과이다. 연구진이 식충식물인 열대통발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97%가 단백질 형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크 DNA는 3%에 불과했다는 것.

열대통발은 유전체의 크기가 매우 적지만, 유전자 수는 토마토나 포도 등의 다른 식물과 비슷한 수준이다. 열대통발이 정크 DNA를 거의 갖고 있지 않고서도 아무 이상 없이 건재하는 이유에 대해 연구진은 오래 전 조상 세대부터 정크 DNA를 계속 축출해냈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따라서 연구진은 이 연구결과가 다른 식물이나 동물들에게도 정크 DNA가 필요하지 않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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