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20,2020

술 마신 후 음식 댕기는 이유

알코올이 식욕 올리는 신경세포 활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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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좀 마신다는 주당(酒黨)이라면 이런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거나하게 취해서 집에 들어온 뒤 바로 잠자리에 들지 않고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서 먹고는, 다음날 얼굴과 손이 퉁퉁 부어올라 울상을 지었던 경험 말이다.

통신망이 지금처럼 발전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이런 해프닝을 추억이라 생각한 채, 혼자서 간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며 온라인상에서 이런 경험들이 공유되고 전파되자, 의외로 비슷한 사례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음주와 식욕의 상관관계가 상당히 밀접하다는 점이 규명됐다

음주와 식욕의 상관관계가 상당히 밀접하다는 점이 규명됐다 ⓒ healthywomen.org

그런 사례를 유심히 지켜보던 영국의 과학자들은 음주 후 나타나는 식욕(食慾)이 뇌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술에 들어있는 알코올이 뇌에 영향을 미쳐 유사한 사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가하고 추측한 것.

연구진은 곧바로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실험에 착수했고, 그 결과 음주와 식욕의 상관관계가 상당히 밀접하다는 점을 밝혀냈다. 영국의 프란시스크릭 연구소와 UCL대학, 그리고 킹스칼리지런던대 소속의 연구진은 이 같은 결과를 학술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s)지에 발표해 주목을 끌고 있다. (관련 기사 링크)

알코올이 식욕에 관계된 신경세포를 활성화 시켜

원래 알코올은 칼로리가 높은 음식이다. g당 7cal를 내는 고칼로리 식품이다. 소주 1잔에 들어있는 칼로리의 양은 70cal이고, 양주 1잔에는 100cal가 들어 있으므로 양주 3잔만 마셔도 밥 한 공기를 먹는 것과 맞먹는 효과를 낸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술은 마실수록 허기가 사라져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렇지 않고 반대로 허기가 생긴다면 대단히 역설적인 현상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술을 마실수록 먹는 음식의 양도 대부분 늘어나게 된다.

이 같은 역설적 현상을 규명하기 위해 영국의 공동 연구진은 실험쥐를 대상으로 임상실험에 착수했다. 연구진은 실험쥐를 실험군과 대조군으로 분류한 뒤, 실험군에는 와인 2병 분량 수준의 알코올을 3일간 매일 주사 했고 대조군에는 알코올을 제공하지 않았다.

알코올이 식욕에 관계된 신경세포를 활성화 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알코올이 식욕에 관계된 신경세포를 활성화 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 free image

그 결과 술을 마시지 않은 대조군보다 실험군에 속한 쥐가 더 많은 양의 음식을 섭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바로 실험군에 속한 쥐의 뇌를 해부하는 작업에 착수했고, 결국 먹는 행동을 조절하는 시상하부의 신경세포가 활성화 됐다는 점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이 신경세포가 실제로 먹는 행동을 조절하는지를 파악하고자, 인위적으로 신경세포의 활동을 억제해 보았다. 그러자 아무리 알코올을 투여해도 실험쥐의 먹는 양은 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연구진의 한 명으로 참여하고 있는 사라 케언즈(Sarah Cains) 박사는 “실험쥐처럼 사람도 신경세포를 억제할 경우 음식을 찾는 행동이 줄어드는 지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 없다”라고 말하면서도 “하지만 사람도 실험쥐와 동일하게 시상하부에 신경세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관련성이 높은 것만은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아페리티프 효과는 술 마신 뒤 음식물을 찾는 현상

재미있는 점은 음주와 식욕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2년 전에 미 인디애나 의대의 로버트 콘시딘(Robert Considine)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이 35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알코올을 주사한 뒤 음식에 반응하는 뇌의 상태를 연구한 바 있다.

당시 연구진은 한 그룹에는 일정한 양의 알코올을 주사하고, 다른 대조군에는 식염수를 주사하여 음식에 반응하는 뇌의 상태를 분석했다. 물론 대조군에 넣은 식염수도 알코올이라고 말해 혹시 모를 인지적 변화를 사전에 차단하도록 했다.

이어서 실험군의 뇌를 MRI로 스캔한 결과, 알코올을 주사한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음식 냄새에 더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콘시딘 교수도 “음식의 맛이나 향이 아닌 소화기 흡수 과정을 거치면서 알코올이 뇌세포와 화학적인 결합을 통해 발생하는 반응으로 보인다”라고 언급했다.

영국이나 미국의 연구결과에서 보듯 술을 마신 뒤 음식물을 찾는 현상을 ‘아페리티프 효과(aperitif effect)’라고 한다. 아페리티프란 ‘식욕증진제’라는 의미의 프랑스어로서, 영어의 에피타이저(appetizer)와 같은 의미의 단어다.

와인은 식욕을 돋구는 식전주로 활용되고 있다 ⓒ free image

와인은 식욕을 돋구는 식전주로 활용되고 있다 ⓒ free image

유럽에서는 아페리티프가 본격 식사를 하기 전 식욕을 증진시키기 위해 마시는 식전주(食前酒)라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알코올 농도가 20% 이하인 와인이나 맥주를 식전에 제공하여 아페리티프로 활용하고 있다.

이 같은 관습이 상당히 오래 전부터 지켜져 내려온 것을 고려할 때, 이미 술이 식욕을 돋구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의견이다.

예전부터 과식을 피하기 위해서는 음식을 천천히, 그리고 오래 씹어 먹는 습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어왔다. 음식을 섭취할 때 뇌가 포만감을 인지하려면 다소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연구는 포만감과 상관없이 식욕을 유발하는 새로운 원인을 찾았다는 점에서 상당히 획기적이라는 것이 과학계의 의견이다. 예를 들어 체중관리를 위해 식욕을 조절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술을 마시기 전과 후의 식습관에 차이가 있는지를 점검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결과로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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