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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13

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 김수병 한겨레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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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서울 난지하수처리사업소에 간 일이 있다. 나는 그곳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어린 시절 징그러움의 대명사로 통했던 지렁이가 처리한 '오니(汚泥) 케이크'가 분변토로 거듭나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지렁이가 분뇨 덩어리인 오니 케이크를 소화관에서 처리하는 과정에서 탄산칼슘을 흡수한 뒤 '흙'을 배설하는 것이었다. 인분뇨가 지렁이의 뱃속을 채운 뒤 산성화된 식물과 토양을 중화하는 데 쓰이는 '신비의 배설물'로 재탄생하는 셈이었다. 그 뒤 낚시의 미끼로 사용하는 지렁이를 보면서 생태계의 마술사를 떠올린다.

  생명의 신비는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일상에 널려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신비를 느끼기는 쉽지 않다. 겨우 유전물질의 흔적만을 간직한 미생물마저도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이바지한다. 오랜 진화 과정을 거치며 극도로 취약한 환경에 서식하며 놀라운 생존술을 연마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다 속의 미생물들은 항암제를 만들어내고 마취제로 쓰이기도 한다. 우리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것들이 그렇게 황홀하게 인간에게 다가오는데 우리 주변의 생물들은 얼마나 신비한 현상을 가지고 있겠는가. 다만 우리가 거들떠보지 않기에 생명의 신비를 체험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생명의 아름다움을 체험하고 싶다면 당장 <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해나무 펴냄, 2003년)에 눈을 돌려볼 만 하다. 그 책을 통해 <뉴욕타임즈>에 기사를 쓰는 과학전문작가 나탈리 앤지어가 안내하는 생명의 신비 속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저자는 우리가 다가서지 못한 자연과학 실험실과 주의 깊게 보지 못한 숲이나 정원에 있는 생명체 곁으로 안내하며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세세하게 들려준다. 대자연의 해설자로서 우리가 스쳐 지날 수밖에 없었던 것들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을 우리의 눈 높이에 맞춰 설명해 준다.

  우리는 저자가 분류한 나름의 생명의 신비 전시장을 순례하게 된다. 생명체의 경이로움을 흥미롭게 드러내는 짝짓기를 지나 생명의 지도를 들고 DNA 속으로 들어간 뒤, 지구 지킴이 곤충을 만나고 동물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체험하게 된다. 저자의 안내에 귀 기울이다보면 우리가 비만을 염려하는 것은 포유동물의 숙명이며 의사들이 미술을 감상하는 데 해를 끼치기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다. 상식에 윤기를 더하고 어려움에 감히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던 유전자들이 친구로 느껴지는 건 작은 선물일 뿐이다.

  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체험한다면 자연의 친구가 될 수밖에 없다. 그토록 환상적인 매력을 지닌 것은 생명체를 재발견하기 때문이다. 자연의 이법을 거스르는 문명의 참혹한 대가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진보와 발전의 신화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면 쉬어 가는 자연의 미덕을 다시금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자연에 다가서는 것은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거미와 전갈, 치타, 하이에나, 방울뱀, 쇠똥구리. 이들이 전하는 자연의 언어에 취해보고 싶지 않은가.

저작권자 2004-01-1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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