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바우만 모스크바 국립 기술 대학 (이하 바우만 공대로 칭함)이 바로 그곳이다. 바우만 공대는 유능한 과학기술 인재를 수없이 배출해 낸 러시아 과학기술의 요람이자 지표이며 우주 항공 기술을 선도하는 러시아 최고의 기술 대학으로 2005년 7월에 개교 175주년을 맞는다.
특히 바우만 공대 내에는 한러과학기술협력센터가 설치되어 한국 기업들과의 산학 협동을 꾀하는 등 한국과의 과학기술 협력에도 중추 역할을 하고 있어서 한국에게는 의미가 큰 대학이다.
바우만 공대의 역사
1830년 황제 니콜라이 1세는 '기술학교 설립’에 대한 칙령을 내린다. 이에 따라 세워진 ‘황실 모스크바 기술학교’가 바로 바우만 공대의 전신이다. 1868년 법령에서 황실 모스크바 기술학교는 고등 교육 기관으로서 기계 설계자, 제작자, 기술자의 양성을 목표로 한다고 규정한다. 고등 수학, 일반 및 응용 물리학, 기계 제작, 건축술, 섬유기술, 일반 화학, 화학 기술과가 이 시기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바우만 공대는 기계 제작 이론과 우주 항공학 분야에서 특히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에 기반하여 우주 항공 연구소, 군사 항공 아카데미가 설립되었다. 또한 열기계학, 전기기계학, 화학기술 분야도 차츰 발전하기 시작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바우만 공대는 대대적으로 개편되었다. 우선 ‘황실 모스크바 기술 학교’는 ‘모스크바 고등 기술 학교’라는 명칭으로, 1930년에는 ‘바우만 모스크바 기술 대학’으로 다시 개명되었다. 기체역학, 자동차, 화학 기술 연구소가 이 시기에 분리되어 나갔다.
1930년에는 모스크바 항공 연구소, 모스크바 에너지 연구소, 모스크바 기계 제작 연구소 등이, 1948년에는 로케트 기술 학부가 학교 내에 설립되었다. 1987년에는 이론 교육과 기술 교육을 동시에 담당하는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체제가 정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 2차 세계 대전 때에는 군장비 생산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으나 현재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IT 분야의 발전에 힘을 쏟고 있다.
이 학교는 450명의 박사후 연구원, 3,000여명의 박사를 비롯한 4,500여명의 교수진을 확보하고 있다. 정규 코스에 등록한 학생들은 18,000여명이다. 한해 신입생은 약 3,500여명으로 4년의 학부과정, 2년의 석사 과정을 거치게 된다.
현재 바우만 공대의 학부는 정밀가공 기술, 정보 및 콘트롤 시스템, 전파 전자 및 레이저 기술, 로보틱스 및 공장자동화, 동력기계 설계, 특수기계 구조설계, 군기술, 기초 과학, 기술 경영, 인문학부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바우만 공대는 특히 전공과 무관하게 탄탄한 기초과학 이론의 교육과 현장학습을 강조하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수학, 물리, 화학, 기계학 등 기초과학학부는 19세기부터 모스크바 국립대학의 교수들이 지도를 해왔다. 기초과학을 중요시하는 바우만 공대의 전통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또한 이 학교는 철저한 학사 관리로도 ‘악명’이 높아 졸업률은 총학생의 70퍼센트를 넘지 않는다. 한국학생들을 포함하여 외국의 유학생도 100여명에 달하는데 이들에게도 예외는 없다. 석사학위를 마친 학생들 가운데 대부분은 산업현장과 연구소로 진출하며 약 15-20%의 학생들만 박사과정에 입학한다.
바우만 공대는 러시아 과학 기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1933년부터 수차례 국가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1995년에는 대통령령에 따라 러시아의 특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다.
바우만 공대의 국제 교류 활동
바우만 공대는 창립 이후부터 꾸준히 외국의 유수한 교수진들을 초청하여 국제 과학계의 흐름에 발맞추어 왔다. 1851년에는 처음으로 런던의 세계 박람회에 참가하였고, 1857년에는 파리의 세계 박람회에 참가하여 각종 메달을 석권하였다. 특히 ‘러시아식 기술 학습 방법’을 선보여 전문가들의 주목을 끌었다.
‘러시아식 기술 학습 방법’은 연구자들이 실제 기술도 습득함으로써 이론의 현실 적용을 도모하기 위한 매뉴얼이다. 이 방법의 우수성이 알려지자 1877년 미국의 MIT 대학 총장은 러시아 황제에게 러시아식 기술 학습 방법을 배울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917년 혁명 이후 바우만 공대는 사실상 국제 교류를 단절하였다가 2차 대전 이후 1952년부터는 동구권 및 중국의 학생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1965년부터는 기술 안보상의 이유로 소비에트 연방 내의 학생들만 바우만 공대에서 수학할 수 있었다. 교수들의 경우 1967년부터 1990년까지 알제리, 모로코, 이집트, 탄자니아, 아프가니스탄 등 친 공산권 국가들의 대학과 국제 기구 등에 파견되어 소련의 기술 교류에 이바지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와 더불어 바우만 공대는 국제 무대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1994년에는 학교 내에 유네스코 국제 학과가 설치되어 유네스코에서 후원하는 학생들의 교육 및 국제 과학 기술 확산 프로그램 개발 등에 참여하고 있다.
외국 교육 기관들과도 교류도 점차 활성화되고 있다. 파리 이공대학, 베를린 기술 대학, 한국과학기술원 등 세계 70여개 대학 및 연구소들과 학술 교류 협정을 맺고 있으며 외국 유학생들의 입학을 장려하고 있다. 또한 기업들과의 활발한 산학 협동도 바우만 공대의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바우만 공대는 명실공히 세계 유수의 기술 대학으로서 인력과 기술 개발에 힘쓰고, 실제 산업 현장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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