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4,2019

‘민족’ 개념 벗어나면 더 행복하다

국가자부심과 개인행복 연관 조사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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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규정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학교, 지자체, 종교 등 누구나 한 개 이상의 사회조직에 속한 채 살아간다. 또한 어떤 조직에 소속되어 있는가에 따라 개인의 생각이나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조직 중에서 가장 큰 ‘국가’는 개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까?

▲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높을수록 개인의 행복도 증가한다. 그러나 민족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행복은 더 커질 수 없다. ⓒ이미지투데이

행복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해온 에드 디너(Ed Diener) 미국 일리노이대 심리학 교수와 로버트 비스워스디너(Robert Biswass-Diener) 영국 응용긍정심리학센터 연구원이 지난 2001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인도 콜카타의 빈민촌에 살며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대부분 “인생에 만족하며 매일이 행복하다”는 대답을 했다.

저자들은 원인을 ‘국가 자부심(national pride)’에서 찾았다. 국가라는 거대한 사회집단의 정체성이 개인의 주관적 행복(SWB, Subjective Well-Being)을 준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최근 몇 년 동안 전 세계에서 실시한 월드폴(World Poll) 설문조사와 병행한 추가연구에서도 드러났다.

그러나 별도의 추가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가관의 형태에 따라 행복감의 정도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동일한 조상과 인종을 중시하는 민족주의자들은 아무리 행복해봤자 소수자와 이민자까지도 받아들이는 공민주의자보다 불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폐쇄성을 버리지 않으면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GDP 낮은 비서구권일수록 국가가 개인 행복에 영향

디너 교수는 월드폴 참가자 중 128개국 13만2천516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인생만족도 △국가만족도 △생활수준만족도 △건강만족도 △직업만족도 △가계소득 △살림편이성 △이주가능성 △1인당 GDP △종교 등 10개 항목에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인생만족도’ 항목은 자신의 인생을 과거, 현재, 미래의 세 가지로 나누고 만족하는 정도를 최하 1에서 최고 10까지의 점수로 매긴다. 삶의 질을 평가할 때 자주 쓰이는 ‘자아준거적 성취척도(Self-anchoring Striving Scale)’ 방식으로, 사회심리학자 해들리 캔트릴(Hadley Cantril)이 1965년 개발했다.

▲ 소득수준이 높든(실선) 낮든(점선) 국가에 대한 만족도가 높을수록 개인의 행복도 커진다. ⓒPsychological Science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상상하며 점수를 매기기 때문에 ‘인생 사다리(Ladder of Life)’라 불리기도 한다.

‘국가만족도’ 항목은 인생만족도와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하되 개인이 아닌 국가에 대한 점수를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눠 만족도를 평가한다. 생활수준만족도, 건강만족도, 직업만족도는 ‘지역만족도’라는 항목으로 묶어 좋다 나쁘다의 이분법으로 점수를 준다. ‘이주가능성’은 앞으로 1년 안에 다른 지역이나 도시로 이사를 갈 마음이 있는지 묻는다.

나머지 항목은 개인의 생활환경을 평가하는 ‘환경변수’ 항목이다. 가계소득은 세계은행의 조사결과에 1인당 GDP를 합산해 계산하고, 살림편이성은 전기, 전화, 텔레비전, 인터넷의 설치 여부에 따라 있다 없다의 이분법으로 매겨서 평균을 낸다.

이렇게 조사한 결과, 개인의 인생만족도는 이주가능성을 제외한 모든 요소와 강한 연관이 있었다. 특히 국가만족도는 생활수준만족도, 1인당 GDP, 가계소득, 살림편이성 등과 강한 연관이 있었다. 국가에 대한 만족도가 높을수록 개인의 인생만족도도 더불어 높아지는 것이다.

1인당 GDP가 낮은 나라일수록 그리고 비서구권일수록 국가에 대한 만족 정도가 개인의 행복에 뚜렷한 영향을 끼쳤다. 잘사는 나라는 국가보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만족도에 따라 개인의 인생만족도가 달라졌다.

조사 결과는 지난 1월 심리과학지(Psychological Science)에 ‘각국 조사에서 밝혀낸 개인행복과 국가만족도의 관계(SWB and National Satisfaction: Findings From a Worldwide Survey)’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발표되었다.

민족주의자는 공민주의자보다 행복할 수 없다

그런데 지난 11월 유사한 제목의 추가연구가 동일 학술지에 게재되어 관심을 모았다. 제목은 ‘자부심의 대상을 고려한 개인행복과 국가만족도(SWB and National Satisfaction: Taking Seriously the ‘Proud of What?’ Question)’로 디너 교수의 논문과 유사하지만 더 발전된 내용을 담고 있다.

공동저자인 매튜 라이트(Matthew Wright) 미국 아메리카대 정치과학 교수와 팀 리스켄스(Tim Reeskens) 벨기에 가톨릭대 사회학 교수는 “어떠한 국가관을 가지느냐에 따라 개인의 행복이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국가만족도를 단일한 기준으로 따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민족’과 ‘공민’으로 나눈다. ‘민족적 국가관(ethnic nationalism)’은 동일한 조상과 인종을 중시하며 외부인에 폐쇄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에 비해 ‘공민적 국가관(civic nationalism)’은 자유와 헌신을 중시하며 공동체를 위한 노력을 중시한다. 이처럼 국가관의 종류에 따라 ‘우리냐 타인이냐’의 경계가 달라질 수 있다.

논문은 지난 2008년 실시된 ‘유럽 가치관 조사(EVS)’에서 데이터를 추출했고, 유럽연합과 OECD 가입국 31개국의 4만677명을 대상으로 추가 질문을 실시했다. 이전의 갤럽 월드폴 설문조사와 유사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 네 가지 항목을 추가했다.

‘개인 행복(SWB)’ 항목은 “최근 자신의 인생 전체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는가” 하는 질문에 최하 1점, 최고 10점으로 점수를 매긴다. ‘국가 자부심’ 항목은 “당신 국가의 국민으로서 얼마나 자부심을 느끼는가”에 대해 0점에서 3점으로 매긴다.

추가로 공민과 민족의 구분도 넣었다. ‘공민적 국가관’ 항목은 “국가의 법과 정치체제를 존중한다면 진정한 국민이라 하겠는가” 질문에, ‘민족적 국가관’ 항목은 “단일한 조상을 가진다면 진정한 국민이라 하겠는가” 질문에 0점에서 3점을 매긴다.

▲ 국가 자부심이 높을수록 개인 행복은 증가하지만, 공민주의자(왼쪽)가 민족주의자에 비해 전반적으로 행복지수가 훨씬 높았다. ⓒPsychological Science


조사 결과 어떠한 국가관을 가지든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높을수록 개인의 행복도 커졌다. 그러나 가장 행복한 사람은 공민적 국가관 소유자 중에서 개인 만족도가 높다고 답한 사람이었다. 반면에 가장 불행한 사람은 민족적 국가관 소유자 중에서 개인 만족도가 낮은 사람이었다.

민족주의자 중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마저도 공민주의자 중 가장 불만족스러운 사람보다 행복지수가 낮았다. ‘민족’ 개념에 묶여 있으면 어느 정도 이상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는 의미다. 어떠한 국가관을 가지는가에 따라 개인의 행복 정도가 달라진다.

논문은 “민족적 국가관이 강해질수록 인종차별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구성원 간에도 신뢰와 협동심이 사라지기 시작한다”고 지적하며 “반대로 공민적 국가관은 이민, 다원주의 등에 개방적이기 때문에 상호신뢰와 사회적 협동을 촉진시켜 결국 개인의 행복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분석했다.

라이트 교수는 “민족과 혈연만을 중시하는 국가관을 가진 사람들은 구성원이 다양해지는 것을 싫어한다”며 “이들은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아무리 높아도 사회변화가 빨라지면 행복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고 덧붙였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개방성을 가지는 것이 사회 전체가 행복해지는 지름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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