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0,2019

미생물 퇴치의 역군, 백신의 역사

배우철 일양약품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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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태어난 후 여러 번에 걸쳐서 소아마비, 간염, 일본뇌염, 장티푸스 등 10종 이상의 질병에 대한 예방접종을 받아왔다. 뿐만 아니라 정부에서는 매년 겨울에 들어서게 될 때에 노약자들에게 독감 예방접종을 받으라고 권하고 있다. 이 예방접종에 사용되는 약이 바로 백신이다.



백신은 죽거나 기능이 약해진 병균, 또는 병균의 일부분으로 만들어진 가짜 병균이다. 가짜 병균은 우리를 위협하지는 못하지만, 우리 몸을 보호하는 면역계는 가짜 병균인 백신을 진짜 병균으로 알고 방어체계를 준비하게 된다. 그래서 나중에 진짜 병균이 엄습해 오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백신의 원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430년 그리스의 역사학자인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아테네와 스파르타간의 전쟁) 기록에서 “전염병에 걸렸다가 회복된 사람만이 같은 병에 걸린 환자를 간호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즉 당시에 이미 한번 질병에 걸렸다가 나으면 다시는 그 병에 걸리지 않는 자연현상을 이해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자연현상을 실제 백신으로 이용하기 까지는 오랜 기간이 걸렸다.



15세기 중국에서는 이전에 천연두를 약하게 앓은 사람들로부터 얻은 수포, 농 또는 딱지를 분말로 만든 후 이를 다른 사람의 코나 피부를 통하여 주입하여 면역을 얻도록 하는 방법을 이용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러한 방법을 종두라 하며 인도와 아랍세계를 거쳐서 유럽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이 같이 접종했을 때의 사망률(0.5-2%)은 천연두에 자연 감염됐을 때보다(12%) 훨씬 적게 나타났지만, 천연두 바이러스는 독성이 강했기 때문에 멀쩡한 사람이 병에 걸리는 사례도 종종 발생하였다고 한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에드워드 제너이다. 그는 젖 짜는 여자가 자신은 우두(소에게 발생하는 천연두와 유사한 질병)를 앓아서 얼굴에 곰보자국이 생겼지만 그 대신 천연두에 절대 걸리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우두에 천연두로부터 사람을 보호해주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1796년 젖 짜는 여자에게 우두가 발생하자 제너는 그녀의 농포에서 체액을 채취하여 어린이에게 접종하였다. 6주 후에 제너는 이 어린이에게 천연두 환자의 물집과 여러 분비물을 다시 접종하였지만 천연두는 발생하지 않았고, 수 개월간 실험을 반복해도 천연두가 발생하지 않아서 제너는 자신의 생각을 입증하였다.



기존의 종두법에서 발생하던 위험들은 제너의 우두 종두법을 이용함으로써 이런 위험은 사라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를 이용해 동일한 면역 효과를 유도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감염시키면서 실험을 수행했다는 윤리적인 비난은 피할 수 없었다. 제너의 종두법은 곧바로 전 유럽에 확산되어 실시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는 1800년 정약용의 「마과회통」에 종두법에 대한 첫 기록이 남아있다. 그러나 서학에 대한 탄압 때문에 보급이 되지 못하다가 1879년이 되어서야 지석영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우두법을 시행하게 되었다. 지석영은 한의학을 가르쳤던 스승 박영선 선생을 통해「종두귀감」이라는 종두법에 관한 책을 구해 읽은 뒤 종두법으로 천연두를 예방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던 중 부산에 있는 제생병원에서 일본인 의사 도쓰카에게 종두법을 배워 충주 처가에서 처남에게 처음으로 시도하여 성공하였다. 이후 전국을 돌며 접종을 하고, 1885년에는 「종두신설」을 지어 종두법에 대한 자세한 소개와 함께 접종 방법을 국내에 알리는 등 큰 역할을 했다.



1880년경 프랑스의 파스퇴르는 우연히 닭 콜레라균을 실험실에 며칠 방치한 후 닭에 주사하니 질병을 일으키지 않았고, 이 닭들에게는 활성이 강력한 균을 감염시켜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관찰하였다. 그는 균을 실험실에 방치하면 독성이 약해져서 질병을 일으키지 않을 뿐 아니라, 이 균을 이용하면 독성이 있는 같은 균에 대해서 보호해 줄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생각을 입증하기 위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균을 약하게 만든 후 실험으로 증명하였다. 이후 파스퇴르는 이 원리를 다른 가축에게 적용하여 성공적으로 질병이 예방된다는 점을 증명했으며, 그의 연구는 면역학과 백신이 학문으로 정립되는데 결정적인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 파스퇴르는 약해진 병균을 백신(vaccine)이라고 명명했는데, vacca는 라틴어로 소를 의미한다. 그는 제너의 업적인 우두 접종법을 기념하기 위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1885년 파스퇴르는 미친개에 물린 한 소년에게 백신을 주입했다. 이 백신이 그 유명한 광견병 백신으로 소년은 결국 광견병에 걸리지 않았다. 이 소년은 나중에 파스퇴르 연구소의 관리인이 되어 1940년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이 프랑스 파리를 점령한 후 파스퇴르 박사의 연구실을 목숨바쳐 지켰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그러나 백신에 대한 많은 연구를 한 파스퇴르도 이러한 백신에 의해 사람이나 동물의 신체 내의 어떠한 물질에 영향을 끼치고, 이 물질이 어떻게 작용하여 감염을 막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알아 내지 못하였다.



파스퇴르 이후 수많은 질병들이 백신접종에 의해 정복돼 왔으며, 매년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구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아직도 백신이 어떤 원리로 인체의 면역력을 강화시키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신 접종을 비롯해 그 방어 메커니즘을 이해하고자 하는 면역학 분야는 첫 노벨상 수상자인 에밀 폰 베링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25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되었을 정도로 생명현상 신비를 규명하는데 가장 중요한 연구 분야가 되었다.



이처럼 백신의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지만 병균들도 스스로를 변화시켜서 백신에 대항해가고 있다. 변화가 발생한 병균들에게 기존의 백신은 한계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백신의 연구들도 진행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DNA 백신으로 기존의 백신들이 병균을 죽이거나 독성을 약화시킨 것과 달리 병균의 DNA(또는 그 일부)를 백신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DNA 백신은 기존 백신보다 안전성에서 우수하면서 효과는 높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한 주사를 맞지 않고 피부에 바르거나 붙여서 효과를 내는 백신과 유전자 조작된 과일 형태로 만들어진 먹는 백신의 개발도 진행되고 있다.

  • 저작권자 2005.03.11 ⓒ Scienc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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