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에서 생후 5개월 된 아기가 꿀을 먹고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원인을 분석할 결과 아기는 ‘영아(嬰兒) 보툴리누스 중독증’에 걸려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영아 보툴리누스 중독증이란 태어난 지 1년이 채 안된 아기들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증상으로서, 대부분 독소가 들어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걸리게 된다. 이번 사고도 꿀에 들어있던 보툴리누스균의 포자가 만든 독소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고를 당한 아기 엄마의 진술에 따르면 약 한 달 전부터 하루에 두 번씩 꿀이 들어간 과일 주스를 아기에게 먹인 것으로 밝혀졌다.
다소 생소한 이름을 가진 보툴리누스균이 도대체 어떤 병원균이기에, 그리고 이들의 포자가 만드는 독소가 얼마나 독하기에 갓 태어난 아기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일까?
병원균 포자가 내는 독소가 아기의 생명을 위협
미국의 식품의약국(FDA)과 질병관리센터(CDC), 그리고 소아과학회(AAP)는 10여 년 전부터 산모들에게 다음과 같은 주의사항을 지속적으로 권고하고 있다. 바로 ‘한 살 미만의 아기들에게는 꿀을 먹이지 말라’는 내용이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부 차원에서 꿀과 관련한 제품에는 반드시 아기들의 꿀 복용 금지를 권고하는 경고문을 넣게 하고 있다. 다만 이번 사고는 아기의 부모가 제품에 부착된 경고문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아서 발생했다는 것이 사건을 조사한 경찰 측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건강식품의 하나로 널리 보급되어 있는 꿀이 어째서 아기들에게는 치명적인 위험을 제공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AAP는 유아 보툴리누스 중독증은 보툴리누스균의 포자로 오염된 음식을 먹은 것이 원인이라고 해석하면서, 대표적인 음식으로 꿀과 시럽 등을 꼽고 있다.
꿀에 들어간 보툴리누스균 포자를 아기가 섭취하고, 이들이 만드는 독소가 아기의 신체에 영향을 주면서 생명을 위협했다는 설명이다. 보툴리누스균 자체도 심한 식중독 증상을 일으키는 병원균이지만, 식중독 증상은 이미 성장한 균을 섭취했을 때 나타나게 되므로 포자가 만든 독소가 원인인 유아 보툴리누스 중독증과는 별개라는 것이 AAP의 시각이다.
보툴리누스균 성체와는 달리 포자의 경우, 아동이나 어른은 체내에 들어가도 해가 되지는 않는다. 이 병원균의 증식을 예방할 수 있는 면역력이 충분히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갓난아기의 경우는 다르다. 소화 기관의 성장이 미숙하고, 면역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보툴리누스균 포자가 장내에서 증식하며 독소를 뿜게 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만약 아기에게 실수로 꿀을 먹였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해 소아건강 전문가들은 “우선은 아기의 상태를 유심히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조언하면서 “위에 들어간 꿀이 빨리 녹을 수 있도록 더운 물을 틈틈이 마시게 하는 것이 좋다”라고 덧붙였다.
식중독의 원인균이지만 보톡스로 유명세 얻어
보툴리누스균(clostridium botulinum)은 원래 식중독을 일으키는 원인균으로 알려져 있다. 식품 용기 안으로 들어간 보툴리누스균이 식품 속에서 증식하면서 생성한 독소가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 그러다 보니 ‘영아 보툴리누스 중독증’도 식중독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영아 보툴리누스 중독증은 식품 속에 들어있는 독소가 아닌 보툴리누스균 포자를 섭취한 뒤 나타나는 증상이다. 다시 말해 성체 병원균이 만드는 독소가 아니라 이들 포자가 아기의 신체 내에서 증식하며 만드는 독소에 의해 발병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아 보툴리누스 중독증의 전조 증상은 식중독과는 다른 양상을 띠는 것이 대부분이다. 일단 행동이 느려지고 침을 흘리며, 평소와 달리 머리를 지탱하지 못하거나 팔다리를 들어 올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증상이 지속되면 호흡곤란까지 생기다가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
보툴리누스균의 독소는 0.1㎍만 섭취해도 중독되며, 단 1g만으로 수백만 명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독성이 매우 강하다. 해독제가 없던 과거에는 치사율이 60%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이었으며, 해독제 등이 개발된 오늘날에도 치사율이 10%에 육박할 정도로 여전히 무서운 독소로 유명하다.
이처럼 강력한 독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보툴리누스균이 그동안 그리 유명세를 타지 않았던 이유는 이 병원균이 일반 대기 중에서는 증식할 수 없는 혐기성균이기 때문이다. 그런 특징 때문에 보툴리누스균에 의한 식중독은 내용물이 대부분 공기와 직접 접촉하지 않는 통조림이나 병조림 식품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통조림이나 병조림 제품들은 밀봉 후 가열 살균하여 제조하게 되는데, 살균이 부족하여 식품 속에 들어있던 보툴리누스균 포자가 사멸되지 않으면 오히려 혐기적인 조건을 제공하게 되어 병원균들이 증식하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보툴리누스균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이유는 식중독 때문이 아니라, 주름개선용 주사제로 많이 쓰이고 있는 보톡스(Botox) 덕분이다. ‘독도 잘 쓰면 약이 된다’는 속담처럼 보툴리누스균 독소가 신경마비 용도로 사용되면서 성형의학 역사에 길이 남을 의약원료가 되었기 때문이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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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7-04-1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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