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이 놓친 핑크 이구아나

갈라파고스 최초 육상생물일 수도

1985년 다윈은 비글호를 타고 태평양의 외딴 섬들의 무리인 갈라파고스 군도를 방문했다. 이곳에서 5주간 머물면서 다윈은 훗날 진화론을 세우는 데 바탕이 되어 준 여러 다양한 생물종들을 만났다. 그런데 다윈이 미처 보지 못한 것도 있었다. 바로 몸이 공주풍의 분홍빛을 내는 핑크 이구아나이다.

핑크 이구아나는 1986년 공원 관리인이 최초로 발견했다. 그러니 핑크 이구아나는 세상에 등장한 지 20년 조금 넘은 셈이다. 이렇게 최근에야 발견이 되었다는 건 핑크 이구아나가 다윈의 시대에는 없었던 이제 막 갓 출현한 새로운 생물종이라는 얘기인 걸까?

놀랍게도 핑크 이구아나가 어쩌면 갈라파고스 군도의 생물다양성 역사에서 최초의 육상 생물일지도 모른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로 인해 진화론의 고향인 갈라파고스 군도에서의 생물다양성에 관한 역사가 새로 쓰일 전망이다.

다윈이 본 이구아나, ‘징그러운 생물체’

갈라파고스는 남미 에콰도르 본토에서 960킬로미터나 떨어진 여러 개의 화산섬이 모여 있는 군도이다. 이렇게 대륙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데다 다양한 기후환경을 갖고 있어 환경이 매우 독특하다. 같은 섬에서도 건조한 지역에서부터 늪지까지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생물들이 각기 다른 환경에서 적응을 하느라 다양하게 진화했고 그 결과 생물다양성이 나타났다. 다윈은 이곳을 방문한 덕분에 진화론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구아나는 갈라파고스 군도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갈라파고스 군도의 이구아나는 땅에 사느냐 바다에 사느냐에 따라 크게 두 종류가 있다. 바다 이구아나와 육지 이구아나다.

다윈 역시 이 두 종류의 이구아나를 보았다. 그는 바다 이구아나를 보고 “혼탁한 검은 색을 띠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징그럽게 생긴 생물체로 미련해 보이고 움직임이 둔하다”고 기술했다. 물론 바다 이구아나가 헤엄치는 모습에 대해서는 “아주 자연스럽고 빠르다”고 일기에 남기긴 했지만 말이다.

반면 다윈은 육지 이구아나에 대해서 그렇게 큰 관심을 보이진 않았다. 그저 “징그럽게 생긴 동물이지만 먹을거리로 삼을 만하다”고 했다. 핑크 이구아나는 이런 육지 이구아나에 속한다. 갈라파고스 군도에는 핑크 이구아나를 포함해 3종류의 육지 이구아나가 있다.

섬보다 오랜 역사, 새로운 의문들

핑크 이구아나가 발견된 곳은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가장 큰 섬인 이사벨라 섬의 북쪽에 위치한 볼칸 울프(Volcan Wolf) 화산에서다. 핑크 이구아나는 현재까지 이 화산에서만 발견된다. 다윈이 이곳을 방문하지 않았으니 핑크 이구아나를 보지 못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과학자들이 핑크 이구아나에 대해 연구를 시작한 건 2000년대 들어서이다. 현재 과학자들은 이 화산에서 약 100마리도 채 안 되는 핑크 이구아나가 살아가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 이탈리아 로마대학의 가브리엘 젠들 박사 연구팀은 핑크 이구아나가 갈라파고스의 육지 이구아나의 가계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이들에 대한 유전자 조사를 실시했다.

그런데 결과는 놀라웠다. 핑크 이구아나가 다른 두 종류의 육지 이구아나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종일 뿐 아니라 이들보다도 먼저 세상에 등장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무려 570만 년 전에 말이다. 이는 핑크 이구아나가 갈라파고스 군도의 최초 육상 생물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연구결과는 새로운 의문점들을 낳았다. 570만 년 전에는 갈라파고스 군도의 서쪽에 있는 모든 섬들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뿐만 아니라 현재 갈라파고스 군도의 가장 오래된 곳조차도 5백만 년 이상 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핑크 이구아나는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570만 년 전에 등장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나름의 가설은 있다. 최초의 이구아나가 이곳에 왔을 무렵 현재 바다에 잠겨 있는 화산 중 바다 위로 드러난 곳도 있어서 바다 이구아나로부터 육지 이구아나가 진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핑크 이구아나도 이 과정에서 진화했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그렇다고 해도 풀지 않은 미스터리가 또 있다. 왜 오늘날에는 생겨난 지 50만년도 채 안된 화산에서만 사느냐는 것이다.

너무나도 적은 수가 문제

어찌되었건 젠들 박사 연구팀은 핑크 이구아나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 그들은 2년간 단지 36마리의 핑크 이구아나를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대규모 연구팀이 볼칸 울프 산을 돌아다녔는데 고작 10마리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10마리 가운데 대부분은 이미 젠들 박사 연구팀이 전에 표시해두었던 것들이었다고 한다.

젠들 박사는 핑크 이구아나가 다른 이구아나와는 분명하게 다른 새로운 생물종이라는 연구결과를 토대로 핑크 국제동물학명명법위원회(UCZN)에 새로운 생물종으로서 핑크 이구아나를 신청할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핑크 이구아나도 자기만의 이름을 갖게 되면서 ‘심각한 위기종’으로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번 연구는 미국립과학원회보(PNAS) 1월 5일자에 발표됐다(DOI: 10.1073/pnas.0806339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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