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북극권의 빙하가 녹아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고, 해수면 상승으로 여러 섬이 수몰될 위기에 처했다. 2015년 체결된 파리기후변화협정에 따라 2100년까지 평균 기온 상승 폭을 1.5도 이내로 제한하려 했지만, 지금 추세로는 예상보다 훨씬 빠른 2030~2052년 사이에 제한선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9월 23일 ‘가디언’ 지에 따르면 호주 과학자들은 이산화탄소가 지구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빙하 속에 갇힌 기포 샘플을 추출할 계획이다. 남극 대륙 깊숙한 곳에 묻힌 수백만 년 된 얼음을 시추해서 고대 지구의 대기를 연구하면 앞으로의 기후 변화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빙하기 주기가 4만 년에서 10만 년으로 변해
호주 환경부 산하 ‘남극 사업부(Australian Antarctic Division, AAD)’의 과학자들은 얼어붙은 남극 대륙 표면에서 약 3km 아래까지 도달할 수 있는 특수 드릴 시추 장비를 공개했다. 9m 길이의 이 기계는 얼음 샘플을 추출할 때 –55℃의 온도를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새로운 시추 장비의 개발 목적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얼음핵(Ice core)’을 발굴하여 고대 기후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서다.
시추한 얼음 기둥 속에 낀 작은 거품들은 수천 년 단위의 지구 대기 정보를 저장하고 있어서 기후의 시간 척도로 활용할 수 있다. 마치 타임캡슐처럼 과거의 정보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셈이다. 그러한 거품에 100만 년 이전의 대기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기후 과학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AAD의 빙하 과학자인 타스 반 오멘(Tas van Ommen) 박사는 “약 100만 년 전에는 빙하기가 4만 년 주기로 반복되었으나, 현재는 10만 년 주기로 변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이산화탄소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량 증가로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어서 앞으로 일어날 영향을 예측하기 위해 이 연구는 매우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고대 얼음 시추를 위한 국제 협력
얼음핵 시추기술은 1980년대에 처음 개발되었다. 덴마크를 비롯한 유럽 과학자들이 그린란드 빙하에서 사용하기 위해 고안한 기술이다. 그린란드 빙하에서 가장 오래된 얼음층은 약 13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얼음핵 시추를 통해서 이산화탄소와 대기의 관계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었다. 그러나 빙하기 주기가 바뀐 이유를 밝혀내기에 충분할 만큼 오랜 기간의 샘플을 얻지는 못했다.
AAD 연구팀은 유럽 연구자들이 개발한 시추기술을 응용해서 남극 얼음핵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오는 12월에는 유럽 과학자 컨소시엄과 긴밀히 협력하여 남극 동부 내륙의 ‘콩코르디아 남극 기지(Concordia station)’ 인근 두 지점에서 각각 얼음핵을 예비 시추할 예정이다. 2개의 얼음 기둥을 시추하는 이유는 양쪽의 결과를 비교 분석하기 위해서다. 오멘 박사는 “정확한 결론을 내리려면 가능한 한 많은 얼음 샘플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남극 내륙에서 4년간 시추할 예정
시추 현장으로 선정된 곳은 남극 대륙의 높은 중앙 고원 지역이다. 눈이 거의 내리지 않아서 오랜 세월 동안 쌓여온 얼음층이 3km 이상 두께를 이루고 있다. 그 아래에 최대 150만 년 전부터 쌓인 얼음핵이 존재한다.
오멘 박사는 “향후 몇 년간 우리가 시작할 연구는 기후 과학의 마지막 큰 문제 중 하나를 해결하는 것이다. 얼음 속에 갇혀 있는 작은 거품은 과거 대기의 타임캡슐이다. 그것을 분석해서 약 백만 년 동안 빙하기의 주기가 바뀌는데 이산화탄소가 무슨 역할을 했는지 이해하고 싶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남극 대륙 한복판에서 빙하를 시추하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약 500톤에 이르는 기자재를 남극 해안에서 1200km 떨어진 내륙으로 운반해야 한다. 이 프로젝트는 2021년부터 본격적인 시추를 시작해서 최소 4년간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 심창섭 객원기자
- chsshim@naver.com
- 저작권자 2019-10-0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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