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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심재율 객원기자
2017-04-20

나의 뇌 안에 있는 우리의 뇌 과학서평 /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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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는 이세돌 9단을 이겼을까? 전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장동선 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가 쓴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는 책은 컴퓨터인공지능이나 로봇이 가진 과장된 허상을 부수기 위해 쓴 책 같다.

알파고를 예로 든 것은 아니다. 바둑보다 훨씬 쉬운 체스를 예로 들었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체스를 꺾은 것은 꽤 오래이고 이미 실력차이가 난다고 세계 모든 사람이 공인한 것 같지만, 장동선은 기계나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으려면 한참 멀었다는 입장을 설명한다.

한국인이 독일어로 쓴 책 한국어로 번역    

‘실제로 체스 보드 위에서 진짜 말들을 이용해 시합을 진행해야 한다면, 당신의 스마트 폰은 헉헉댈 것입니다. 세계 최고의 로봇이라 할지라도 걸어가고 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는 일을 굉장히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장동선 지음, 염정용 옮김 / arte 값 16,000원 ⓒ ScienceTimes
장동선 지음, 염정용 옮김 / arte 값 16,000원

물론 이런 로봇은 없다. 알파고로 돌아가서 생각하면, 이세돌 9단은 바둑판 위에 돌을 하나씩 집어서 정확한 위치에 하나씩 올려놓았다. 알파고는 사람을 시켜서 대신 돌을 올려놓았다.

알파고가 인간과 진정으로 공평하게 시합을 하려면 로봇장치를 연결해서 직접 돌을 들고 정확한 지점에 올려놓는 동작을 해야 한다. (이럴 때 옆의 돌을 건드리거나, 떨어뜨리면 안 될 것이다.)

요컨대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인간은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하므로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을 따라오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 책의 특이한 점은 독일어로 쓴 ‘MEIN HIRN HAT SEINEN EIGENEN KOPF' 을 한국어로 번역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독일에서 태어났으나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다시 독일로 미국으로 다니면서 공부를 마치고 지금은 독일에서 활동한다.

저자가 처음 쓴 이 책은 독일 전체 서점 판매량을 합산하는 슈피겔과 아마존 과학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2014년에는 독일과학교육부 주관 과학강연대회인 사이언스 슬램에서 우승했으며, 과학커뮤니케이션 대회인 2015년 패임랩 인터내셔널(FameLab International)에 독일대표로 출전해서 최종 9인에 올랐다.

그렇다면 저자가 주장하는 ‘또 다른 뇌’는 무엇일까? 엄청나게 과학적인 이야기를 거쳐 매우 평범한 결론을 내린다.

뇌 과학자가 쓴 책의 결론은 시시하다.

‘행복?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입니다. 끝’이라고 내린다. 그나마 자신의 주장도 아니고, 2012년에 하바드 연구소의 조지 베일런트(George Vaillant)가 내린 장기 프로젝트의 중간 결과이다.

‘우리 뇌를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다른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뇌는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관계를 나누기 위해 진화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사회적인 뇌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람입니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사람 뇌가 얼마나 이상한 존재인지를 설명한다. 행복할 때 나타나는 표정을 지으면, 다시 말해 안면근육을 행복할 때와 같이 억지로 만들면, 뇌는 ‘근육이 행복해하는구나’라고 해석해서 진짜 행복할 때와 같은 신호를 보낸다.

사람의 손과 똑같이 생긴 가짜 손을 책상위에 올려 놓고, 가짜 손을 망치로 내려치거나 송곳으로 찌르려는 동작을 하면, 뇌는 놀라서 진짜 팔을 빼거나 공포에 질려 소리친다.

불안전한 뇌, 사람과 소통해야 행복하다   

뇌의 작용이 사회적인 습관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화는 독자들을 빵 터트리게 한다. 우리나라 지하철에서 한 예쁜 여자가 남자를 몇 번 쳐다보더니 (물론 남자는 예쁜 여자가 자기에게 관심이 있는 줄 알고 빨개지면서 눈을 맞췄다.)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말했다. “저 여기에서 내리는데요.” 남자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면서 “저도 벌써 두 정거장이나 지났는걸요.”라고 대답했다. 순간, 지하철 승객들이 조용해졌다. 왜냐하면 이 대사는 너무나 많은 한국인들이 아는 커피 광고에서 남녀주인공이 나눈 대사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광고는 되풀이되지 않았다. 예쁜 여자는 “죄송하지만, 옆으로 조금 비켜주셔야 제가 내릴 수 있는데..”라고 말한 뒤 뒤도 안 돌아보고 쌩~ 사라졌다. 문이 닫히자 승객들은 그제서야 크게 웃었다.

이는 ‘문화적 배경은 지각을 어떻게 조종하는기’ 편에 나온 이야기이다. 설명은 안했지만, 저자의 체험담 같아 보인다. 마찬가지로 이 책은 사람의 뇌가 얼마나 불안전하고 잘 못 판단하며 스스로 속는지를 설명하는데 온 힘을 쓴다.

한편으로 사람의 뇌가 가장 똑똑하다는 증거로 대뇌화지수 (EQ encephalization quotient)를 소개한다. EQ는 자율신경 등 몸뚱아리 조절에 들어가는 뇌의 용량 말고, 실제로 생각에 할애하는 뇌의 비율을 따지는 지수이다. 고양이는 쥐의 두 배이고 (그래서 쥐는 고양이 밥이다) 사람은 고양이 EQ의 7.5배로 동물중 가장 높다.

이 책의 결론은 시시하기 짝이 없다. 따분하고 가난하다고 집을 뛰쳐나가 온 세상을 돌다, 결국 자기 집구석으로 돌아와 안식을 취하는 막내아들 같다. 고리타분하지만, 계속 되풀이해야 할 시시한 고전(古典)의 한 구절이 종착점이다.

새로운 지식에 너무 탐닉하지 말라, 타이르는 것 같기도 하다.

심재율 객원기자
kosinova@hanmail.net
저작권자 2017-04-2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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