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22,2019

과학, 어디로 가고 있는가?

10명의 철학자들이 본 과학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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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꿈은 언제 시작됐을까?

서강대 철학과 서동욱 교수에 따르면 기원전 8세기 최초의 서사시를 지은 시인 호메로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작품 ‘일리아스(Ilias)’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황금으로 만든 하녀들이 주인을 부축해주었다. 이들은 살아있는 소녀들과 똑같이 보였는데 가슴 속에 이해력과 음성과 힘도 가졌으며, 불사신들의 수공예도 배워서 알고 있었다.” (일리아스, 천병희 역)

과학의 시작이 지성뿐만 아니라 상상력과 같은 비지성적인 요소들이 공존했다는 주장이 철학자들을 통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10명의 철학자들이 참여해 과학의 뿌리를 찾아나가고 있는 서강대 '오리지ㄴ 오브 사이언스' 특강.

21세 과학이 이루어지기까지 지성뿐만 아니라 상상력과 같은 비지성적인 요소들이 큰 역할을 해왔다는 철학자들의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10명의 철학자들이 참여해 과학의 뿌리를 찾아나가고 있는 서강대 ‘오리진 오브 사이언스’ 특강.  ⓒ 이강봉/ ScienceTimes

기원전 8세기 호메로스, 로봇을 예언 

17세기 근대 철학의 출발을 알린 데카르트(René Descartes)도 로봇을 꿈꾸고 있었다. 그의 딸이 죽자 딸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딸을 닮은 로봇 인형을 갖고 다녔다. 그는 인간의 몸 역시 기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로봇에 대한 꿈은 19세기 프랑스 발명가이자 예술가인 자크 드 보캉송(Jacques de Vaucanson)에 의해 현실이 된다. ‘플루트 연주자’, ‘북을 치는 소년’, ‘똥 싸는 오리’ 등 생명체의 구조와 원리를 적용한 자동인형들이 제작돼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21세기 들어 사람을 능가하는 거대한 로봇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정교하게 제품을 만드는 것은 물론 음악을 작곡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사람보다 더 뛰어난 실력으로 체스와 바둑을 두고 있다.

서동욱 교수는 사람의 마음에 이 로봇을 만들어내는 것 같은 ‘예언’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과 상반되는 것으로 보이는 이 예언적 경향이 인간 마음을 지배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

21세기 스타 기업가 일론 머스크(Elon Reeve Musk)의 우주여행을 향한 꿈 역시 오늘날 일시적으로 이루어진 꿈이 아니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작가인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는 1881년 출간한 ‘부바르와 페퀴세(Bouvard et Pécuchet)’를 통해 “지구를 너무 오래 사용해서 소모되면 인류는 별로 이사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것.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는 이런 예언을 ‘부적합 관념’이라 불렀다. 그러나 이 모자라는 것 같은 관념 ‘예언’이 과학을 있게 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이 서동욱 교수의 주장이다.

서 교수는 로봇처럼 없었던 것을 만들어내는 “상상력의 본성이 예언”이라고 말했다. “과학의 엔진 역할을 하는 것이 예언이며, 이 예언에 대해 깊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철학자들”이라고 말했다.

21세기는 새로운 유기체를 만드는 시대 

철학자들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과학 철학자들이 이 예언의 능력을 간과해왔다고 보고 있다.

세종대 철학과 이상헌 교수는 16세기 과학혁명을 이끈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을 예로 들었다.

“지식은 실재를 향해야 한다”라는 주장과 함께 자연에 대한 지식을 강조한 그는 “인간에게 주어진 자연을 복제하는 것이 인간의 지식”이며, 이 지식을 통해 그가 꿈꾸던 이상향 ‘벤살렘(Bensalem)’을 완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베이컨에게 있어 자연은 ‘주어진 것’에 불과했다. ‘주어진 자연을 복제하는 것’이 ‘지식’이며, 이 지식을 통해 그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

이 교수는 “그러나 21세기 과학을 움직이고 있는 융합기술은 이전에 전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것’을 창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공지능은 이전에 자연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지능을, 합성생물학은 유전자 편집을 통해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유기체를 만들어내고 있다”며, “베이컨이 보지 못한 자연의 세계를 지금 인류가 보고 있다”고 말했다.

21세기 과학철학자인 얀 코르넬리우스 슈미트(Jan Cornelius Schmidt)는 최근 로봇, 인공지능, 유전자가위 등의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첨단 과학기술과 관련 ‘지식이 실재를 대신할 수 있다’는 인식론적 해석(epistemological real – constructivism)을 한 바 있다.

18일부터 22일까지 서강대학교 정하상관에서 ‘자연과학의 기초를 만든 철학 명저’란 주제로 학생들을 위한 연속 강연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서강대, 세종대, 부경대, 서울시립대, 숙명여대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10명의 철학교수들은 탈레스로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과학의 역사를 철학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국내에서 처음 있는 시도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서강대 철학연구소와 BK21+사업팀은 이 과정을 통해 철학이 어느 부분에서 과학과 만나고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이 인간의 지성을 대표하지만 과학자들이 과학을 보는 방식과 철학자들이 과학을 보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는 것. 21세기 과학세상이 이루어지기까지 인간의 지성뿐만 아니라 욕구, 상상력, 예언과 같은 비과학적인 요소들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보고 있다.

서강대 철학연구소장인 서동욱 교수는 “사람 안에는 지성 외에도 이념, 자랑 등을 통해 스스로를 분출하고 싶어 하는 반지성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 차 있다”며, “인류 역사 속에서 이 지성과 반지성적인 요소들이 어떤 식으로 새로운 과학을 창출해왔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강연은 5부로 구성돼 있다.

1부는 ‘자연 앞에서 깜짝 놀라다’란 주제로 서강대 서동욱, 세종대 이상헌 교수가, 2부는 ‘빛과 시선의 비밀’이란 주제로 성신여대 홍우람 교수, 서강대 김종원 교수, 3부는 ‘사물의 이치’란 주제로 부경대 김은주, 서울시립대 박제철 교수가, 4부는 ‘자연법칙의 뿌리를 찾는 자 또는 의심하는 자’란 주제로 서강대 오은영, 박경남 교수가, 5부는 ‘자연은 절대자의 얼굴이다’란 주제로 숙명여대 이광모, 김옥경 교수가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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