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심체요절과 구텐베르크 금속활자
금속활자 인쇄물이 불경과 성서로 시작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중세사회에서 종교는 삶의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서양문명을 이끄는 촉매제 역할을 한데 반해 직지는 역사 속에서 사장돼 버렸다. 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구텐베르크가 활자를 발명했을 때 교황청은 "이제 모든 사람들은 글로 씌어진 음란한 얘기를 읽게 될 것이다"라며 크게 우려했다. 이 같은 상황은 바로 사실로 맞아 떨어졌다.
성경에 이어 다음에 나온 책들은 중세 기사들의 음란한 장면들을 모은 춘화(春畵)나 음담패설 이야기책이었다. 이른바 포르노그래피로 만든 불온서적(?)들이 전 유럽을 강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시 르네상스의 부흥과 함께, 이 같은 춘화는 유럽의 곳곳을 누비기 시작했다. 물론 구텐베르크의 인쇄활자가 기독교의 전파를 촉진시켰던 것도 사실이다.
기술발전의 이면에는 '대중의 관심'이 있다
한국이 인터넷 선진국이 된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라는 설명도 가능하다. 아직까지 성개방이나 노골적인 장면이 사회적으로 금기된 상황에서 인터넷을 통한 포르노 동영상물이 한국의 IT산업을 이끌었다는 분석도 있다.
금속활자든 인터넷이든 그 기술이 발전한 데에는 대중이 있었다. 요컨대 대중의 관심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이를 콘텐츠라고 부른다. 즉 기술과 경제를 이끄는 원동력은 바로 이 콘텐츠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수출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휴대폰, 디지털TV 등의 미래도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콘텐츠라 하면 시, 소설, 음악, 영화 등 오락성 문화콘텐츠를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정작 기술을 발전시켰던 과학 관련 콘텐츠는 주위에서 찾기 힘들다. 현미경이나 망원경을 포함하여 과학기자재를 다루는 과학상품들은 쏟아져 나오곤 하지만 넓은 의미의 과학콘텐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과학다큐멘터리 등 영상콘텐츠물, 과학축전, 과학전시회 등을 포함한 매스미디어를 통해 유통 확산시킬만한 유용한 과학콘텐츠는 양과 질적인 측면에서 다른 콘텐츠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하다 못해 세계에서 자랑할 만큼 엄청난 과학콘텐츠인 대전 과학엑스포공원도 10년 동안 거의 방치돼 있는 상황이다. 이제 새로운 과학기술에 대한 일반대중의 이해도 제고와 과학기술인력의 저변 확대가 절실하므로 과학콘텐츠의 개발 구축은 성장 잠재력 확충이라는 국가전략적 차원의 과제라 할 수 있다.
창의적인 전문인력 양성해야
이 과학콘텐츠를 기르는 산업이 바로 과학문화산업이다. 과학문화산업에는 나름대로의 소비와 생산 영역이 존재해야 한다. 시장이 제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는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 개발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창의적인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것이다.
한국과학문화재단은 지난해 과학콘텐츠 진흥센터를 설립한다고 발표했으나 예산의 벽에 부딪쳐 실행을 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 진흥센터의 설립은 인력을 양성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보급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콘텐츠 진흥센터의 설립이 하루 빨리 이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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