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이 진화하고 있다. 디지털 기기의 보급이 확대되고 SNS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과거 수동적이고 방관자적이었던 소비자들의 소비 성향이 적극적이면서도 주관자적인 형태로 바뀌고 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스타일의 소비자들을 표현하는 파생어들도 하루가 멀다하고 탄생하고 있다. 소비자를 뜻하는 영단어인 컨슈머(consumer) 앞에 소비 방식의 형태에 따른 단어들이 조합되면서 신개념의 소비족들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소비자 관련 최초 파생어인 프로슈머
신개념의 소비족 탄생을 촉발시킨 최초의 파생어는 ‘프로슈머(prosumer)’다.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가 그의 저서인 ‘제3의 물결’에서 프로듀서(producer)와 소비자(consumer)의 조합어인 프로슈머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프로슈머란 대량생산에 의해 획일적으로 제조된 제품을 일정하게 소비하면서도 기업의 제품 생산과 유통, 그리고 판매 등의 업무에 직접 관여하면서 자신의 취향에 맞게 제품 개발이나 서비스를 유도하는 소비자들을 가리킨다.
과거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이 같은 참여방식이 가능해진 데에는 통신기술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소비자들이 구매한 제품의 가격 및 품질 등을 비교하여 가성비의 수준을 따지거나, 서비스를 이용한 후 비용과 대비한 장·단점 등을 판단하여 인터넷이나 모바일 등으로 공유하면서 과거와는 다른 소비자 모델이 형성된 것이다.
프로슈머들의 관심은 비단 제품이나 서비스에만 그치지 않고, 영화나 공연 같은 무형의 상품에 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들은 펀딩과 같은 방법으로 자금을 모집한 후 이를 무기삼아 기획 단계부터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압력을 행사한다.
최근 들어서는 프로슈머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신제품을 만들거나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이는 소비족인 크리슈머(creasumer)가 등장하고 있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창조적인(creative) 소비자(consumer)라는 의미인 크리슈머는 기존 제품을 평가하고 개선하는 수준에 머무르는 프로슈머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소비족이라 할 수 있다. 신제품 개발은 물론 파괴적인 디자인 등을 기업들보다 먼저 도입하여 기존에 없던 제품을 만드는데 기여를 하는 소비족들이다.
대표적인 크리슈머 사례로는 최근 들어 골목길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공방 창업을 들 수 있다. 공방이란 가죽공예나 수제가구, 또는 수제도자기 등 자신이 필요한 제품을 직접 만들고 이를 위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최근 들어 홍익대 인근과 서촌 거리, 그리고 방배동의 인근을 중심으로 공방거리가 활성화되고 있는데,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방 비즈니스는 전형적인 오프라인 사업 중 하나였다. 하지만 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오프라인에 온라인이 융합되면서 일종의 이머징 마켓(emerging market)이라 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공방이 생겨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소비자생활협회의 관계자는 “공방의 진화는 통신기술의 발전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라고 전하면서 “통신으로 과거보다 유통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쉬워지면서 가내수공업이었던 공방이 지금은 주목받는 O2O(Online to Offline) 비즈니스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기업 제시 방식을 따라하지 않는 모디슈머
제조업체에서 제시하는 방식이 아닌 소비자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제품을 활용하는 청개구리 같은 소비자들도 새로운 소비족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바로 모디슈머(modisumer)들이다.
모디슈머란 수정하다(modify)와 소비자를 뜻하는 영단어를 조합하여 만든 파생어다. 제조사에서 제시하는 표준화된 방법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하여 사용하는 소비자를 의미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한 때 독특한 인스턴트 라면 요리로 인기를 끌었던 ‘짜파구리’가 있다. 식품회사인 농심이 판매하는 인스턴트 짜장면과 인스턴트 우동을 섞어서 먹는 이 방법은 모디슈머들의 개성적인 사고방식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사례로 꼽힌다.
한편 경쟁자가 없거나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새로운 시장을 발견하여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소비족인 블루슈머(bluesumer)들에게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블루슈머란 경쟁자가 없는 새로운 시장을 의미하는 ‘블루오션(blue ocean)’과 소비자의 영단어가 조합된 파생어다.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는 대부분의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이 된지 오래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는 경쟁자가 없는 미개척 시장에서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한 과제인데, 그런 수요를 만들어내는 소비족이 바로 블루슈머들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통계청에서는 2000년대 중반부터 매년 사회지표와 경제활동인구, 그리고 생활시간 등을 고려하여 주목해야 할 블루슈머들을 선정해 왔다.
예를 들어 지난 2014년에 발표한 블루슈머들을 살펴보면 ‘과거 지우개족’이나 ‘반려동물족’ 등이 포함되어 있다. 과거 지우개족이란 자신과 관련된 글이나 사진이 인터넷에 떠도는 것을 걱정하는 소비자들이다.
이런 소비자들이 증가함에 따라 최근 들어서는 지우개족들의 인터넷 흔적을 삭제해주는 ‘디지털 장례식’이나 이들이 온라인상에서 썼던 글들을 관리해주는 ‘디지털 세탁소’ 등이 생겨나고 있다. 다시 말해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는 소비족인 셈이다.
이 외에도 소비 성향이 유사하여 쌍둥이처럼 생각과 취향을 공유하는 소비족들인 ‘트윈슈머(twinsumer)’나 전시회의 큐레이터처럼 기존 제품을 꾸미고 다양하게 활용하는 편집형 소비족들인 ‘큐레이슈머(curasumer)’들이 새로운 형태의 소비족들로 주목받고 있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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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7-09-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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