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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이강봉 객원기자
2018-02-05

DNA 정보망으로 불치병 치료한다 10만 명 유전자 분석, 돌연변이 유전자 밝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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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안 헤이스팅스 와드(Jillian Hastings Ward) 씨는 4년 전 두 번째 남자 아이인 샘(Sam)을 출산했다. 출산 후 처음 수개월 간 아기는 건강해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기의 시력이 완전치 않음을 알았고, 얼마 후 진단을 통해 시각장애가 있음을 확인했다.

지적 발달과정에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샘은 생후 6개월 수준의 지능에 머물러 있다. 샘의 상황이 이처럼 심각하지만 의료진은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샘의 부모들은 영국 보건부가 주도해 지난 2012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유전자 분석 프로젝트 ‘10만 게놈 프로젝트(100,000 Genomes Project)’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는 중이다.

지난 2012년부터 시작된 '10만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그동안 몰랐던 불치병의 원이들이 다수 밝혀지고 있다. 사진은 게놈 프로젝트 사이트.
지난 2012년부터 시작된 '10만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원인을 알 수 없었던 종양을 비롯 그동안 몰랐던 불치병의 원인들이 다수 밝혀지고 있다. 사진은 영국의 '10만 게놈 프로젝트' 사이트. ⓒgenomicsengland.co.uk

영국 정부, 10만 명 유전자 데이터 축적 중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은 2012년 데이비드 카메론(David Cameron) 전 수상이 재직할 때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5만 명의 유전정보(genome)을 분석하고 있다. 그 중에는 샘과 샘의 부모 게놈도 들어 있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유전자 몇 개에 상처가 생기면서 암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암세포의 유전자를 조사하면, 암의 원인과 성질을 정확히 밝혀낼 수 있으며, 정상세포의 유전자를 조사하면 장래의 발암 확률도 알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유전자분석을 위해 30억 개에 달하는 DNA 정보를 분석해내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다. 이를 위해 ‘10만 게놈 프로젝트’ 연구팀은 수백만 기가바이트를 저장할 수 있는 컴퓨터와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의 유전자분석 기기를 가동하고 있다.

5만 명의 유전자분석이 이루어지면서 원인을 알 수 없었던 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 수수께끼가 풀리고 있다. 유전자 ‘Grin-1’에 결함이 발견됐는데, 각종 장애를 일으키는 매우 희귀한 돌연변이 유전자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 유전자 기능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지적장애, 근육에 있어 낮은 근긴장도(筋緊張度, low muscle tone), 다양한 발작 증세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발견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샘의 부모 등 가족들의 유전자분석 결과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분석 결과 부모 중 어느 누구도 샘에게 ‘Grin-1’ 유전자를 물려주지 않았다. 샘의 DNA 내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난 것이다. 샘의 누나 커스티(Kirsty)의 DNA에서는 샘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샘과 같은 질병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샘의 어머니 헤이스팅스 워드는 4일 ‘가디언’ 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커스티에게도 유사한 질병이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에 큰 걱정을 해왔다.”며 “그러나 이번 유전자 분석 결과로 또 다른 걱정을 덜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환자들 참여해 불치병 원인 다수 밝혀내

‘Grin-1’과 같은 돌연변이 유전자를 발견하기 매우 힘들다. 그동안 의료진들에게 해결할 수 없는 큰 과제가 되어 왔다. ‘10만 게놈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퀸 메리의대 마크 코우필드(Mark Caulfield) 교수는 “샘과 유사한 경우가 7000~8000 건에 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 유전자의 이름도 모르고, 이들 유전자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원인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영국에서만 300만 여명의 환자가 어린 시절에서부터 고통을 겪기 시작하고 있는 중이다.

“2~3세 이후 샘과 같은 증세가 나타나는 경우가 절반에 달하고, 3분의 1은 5세가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많은 부모들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새로운 치료법 개발을 고대하고 있는 중이다.

또다른 어머니 줄리엣 밀스(Julliet Mills)도 비슷한 경우다. 그녀의 13세 아들인 가브리엘(Gabriel)은 선천성 근육긴장저하증이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진 희귀 유전 신경근육계 질환 네말린 근병증(nemaline myopathy)을 앓고 있다.

그동안 연구 결과 6~7개의 돌연변이 유전자로 인해 이 질병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가브리엘의 경우 6~7개 유전자 중 어떤 유전자도 지니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원인도 모른 채 고통을 받고 있는 중이다.

어머니인 줄리엣 밀스는 “그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10만 게놈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네말린 근병증의 원인이 밝혀진다면, 가브리엘의 고통을 해소할 수 있는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강력한 기대감을 표명했다.

많은 암 환자들도 게놈 프로젝트에 큰 희망을 걸고 있다. 최근 많은 암 치료법이 개발되고 있다고 하지만 치료가 힘든 암들도 다수 등장하고 있다. 암 치료를 위해 프로젝트 팀은 5만 명 중 약 8000명의 암 환자 DNA를 분석했다.

퀸메리대 코우필드 교수는 “암 환자의 종양을 유전자분석하고 있다.”며, “이 분석 결과를 통해 기존 불치 암 환자들의 발병 원인을 밝혀내는 한편, 향후 치료 방식을 보완해 환자 중심의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프로젝트 연구팀은 불치병 환자 치료에 유전자분석 등을 통해 작성한 분자지표(molecular signature)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코우필드 교수는 “이런 시도를 통해 새로운 유전자치료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국민건강서비스(NHS)의 수석과학자인 수 힐(Sue Hill) 교수는 “이번 프로젝트처럼 빠르게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전자분석을 통해 불치병 치료에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강봉 객원기자
aacc409@naver.com
저작권자 2018-02-0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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