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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김연희 객원기자
2013-04-22

해커는 원래 기술놀이자였다? ‘해킹의 개념과 그 의미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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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킹’이란 단어는 원래부터 부정적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해킹의 역사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기술을 가지고 하는 엉뚱한 놀이와 같았다. 지난 17일 ‘해킹의 개념과 그 의미의 변화, 그리고 해커들의 활약’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기술놀이 세미나x워크샵'이 그것이다. 이날 강연자는 청개구리 제작소의 조동원 씨이다. 청개구리 제작소는 제작에 관한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핵(hack)은 원래 기발하고 고약한 장난을 의미

“해커라는 단어는 1950년대 MIT 대학생들의 하위문화에서 발생했습니다. 이 당시만 해도 해킹은 기발하면서도 고약한 장난이었습니다.”

‘핵(hack)'이란 단어는 MIT 학생들의 은어였다. 건설적인 목표와 성취와 더불어 작업자체 순수한 즐거움을 가진 프로젝트를 할 때, 그들은 핵이란 단어를 썼다. 그중 철도시스템 설계를 위한 원리와 구조 탐구에 푹 빠진 학생들의 동아리인 ‘신호기와 동력분과’는 MIT에 인공지능연구소에 있는 컴퓨터에도 유독 관심을 많이 가졌다. 학교에서 접근을 막을수록 어떻게 해서든 컴퓨터에 접근하기 위한 시도를 계속해나갔다. 오늘날 컴퓨터 해킹과 해커문화가 무단침입이란 의미가 포함된 기원이 된 이유이다.

▲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기술놀이 세미나x워크샵>에서 ‘해킹의 개념과 그 의미의 변화, 그리고 해커들의 활약’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청개구리제작소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본업이 아닌 부수적 행동이자 재미를 위한 활동이었다. 그야말로 기술놀이인 셈이다. 원래 기능과는 상관없는 재기발랄한 아이디어이나 활동을 핵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해커들이 재미를 위한 이 기술놀이는 수많은 IT 혁신적 상품을 만들어냈다. 벨연구소의 유닉스 운영체계가 대표적 예이다. ‘테니스리치’와 ‘캠톰슨’은 취미활동으로 게임을 만들려고 했는데, 기존 시스템과 맞지 않자 해커 친화적이고 특정한 하드웨어에 종속되지 않는 유닉스를 개발해냈다. 거기다가 하드웨어에 의존하는 기계언어나 어셈블러가 아닌 보다 표현적이고 일반화된 'C'언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컴퓨터 범죄의 시작 1980년대

“컴퓨터에 대한 반대 정서가 팽배해지는 시기였습니다. IBM이 전쟁과 공동체 통제수단으로 컴퓨터를 개발했기 때문이죠. 베트남 전쟁에서도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대중적 지지를 많이 잃게 됐습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기술을 통한 사회해방을 주창하는 담론이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는 반전운동과 히피 문화를 배경으로 최초의 정치적 해커공동체가 출현한 시기였다. 프리커(phreaker)라 불리는 이 집단은 전화교환장치에 사용되는 컴퓨터 시스템의 허점을 뚫고 들어가 무료로 전화를 사용하거나 전화시스템을 침입하는 행동을 했다. 그리고 AT&T사의 통신시장 독점횡포, 정부가 정치 도청, 베트남 전쟁을 위한 누진세 시행에 반대하며 ‘공짜전화걸기’ 캠페인을 하기도 했다. 애플을 만든 워즈니악과 스티브잡스도 이에 가세한 인물이었다.

개인용 PC가 보급되면서 1980년대는 해킹의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해커가 컴퓨터를 이용한 범죄를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라고 볼 수 있다. 컴퓨터가 단순 계산기가 아닌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미디어로서 인지되기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중 70년대 해커들이 만든 전자게시판인 BBS가 불법 복제, 무료배포게임, 암호해독 프로그램 등이 공유할 수 있는 디지털 지하세계의 역할을 담당했다.

▲ 1990년대는 정보의 사유화와 지적재산권이 강화되기 시작했던 시기이자 해킹행동주의, 사이버테러, 사이버전쟁 등 새로운 개념과 담론이 제기되던 때였다. ⓒ청개구리제작소

본격적인 해킹의 범죄화는 1980년대 후반부터였다. 1989년 서독 해커들이 미국 국방망을 침입하여 군사기밀을 소련으로 넘겼다고 알려진, 일명 ‘카오스 사건’을 바탕으로 쓰인 ‘뻐꾸기의 일’이라는 책을 보면 해킹 범죄가 어느 정도로 그 범위가 넓어졌는지 잘 묘사되어 있다.

80년 후반은 최초의 대규모 컴퓨터 웜 사건인 ‘모리스 웜’이 발생해 전세계에서 컴퓨터 비상대응팀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컴퓨터 통신세계 혹은 가상공간에 대해 최초로 사법 권력이 직접 그 힘을 행사한 ‘ 썬데블 작전’이 벌어지기도 했던 때였다.

해킹행동주의, 핵티비즘 등장

전자범죄, 처벌, 표현의 자유, 수색과 압수의 문제 등에 대해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던 1990년대. 정보의 사유화와 지적재산권이 강화되기 시작했던 시기이자 해킹행동주의, 사이버테러, 사이버전쟁 등 새로운 개념과 담론이 제기되던 때였다. 특히 핵티비즘이라 불리는 해킹행동주의는 정보와 표현의 자유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핵티비즘은 해킹과 행동주의가 결합된 단어이다.

“핵티비즘이라는 단어를 만든 ‘죽은 소 숭배’라는 해커 그룹이 있습니다. 이들은 독점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취약한 보완 문제들을 공개적으로 드러냈죠. 국가의 인터넷 검열 문제에 상응하는 대안프로그램을 배포하기도 했는데요, 해킹을 몰라도 해킹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 ‘백 오리피스‘를 개발하기도 했답니다. 물론 범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윈도우의 취약함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지요.”

해커행동주의는 온라인에서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는 운동도 나타났다. ‘F5'을 자동적으로 누르게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최초의 ’서비스거부공격‘인 디도스(DDOS)를 감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1999년 유고공습사태일 때 일반 국민들이 웹사이트를 다운 시키는 최초의 인터넷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2000년대 해커들은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을까. 해커는 양적으로 확산되면서 해킹의 대량화 대중화 되고 있다. 해킹의 본래 의미도 더욱 퇴색되고 있다.

“최근 화이트 해커 블랙 해커라고 분류를 합니다. 착한 해커와 나쁜 해커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봅니다. 그들 모두 기술원리 알아야만 가능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맥락으로 구분 변화되는 해킹해커를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김연희 객원기자
iini0318@hanmail.net
저작권자 2013-04-2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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