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장 정연호)에서는 풍력 발전기 날개 제작의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방사선 조사 기술을 이용해 소형 풍력 발전기 핵심 부품인 발전기 날개 제작에 걸리는 시간을 50분의 1로 줄이고, 제작 비용도 기존의 65% 수준으로 떨어뜨리게 할 수 있는 있다는 내용이었다.
원자력을 연구하면서 풍력기술에 적용할 수 없을 것 같은 새로운 기술을 융합해 그려 넣은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팀의 수장은 공업환경연구부 강필현 박사. 사이언스타임즈가 기술융합에 성공한 강 박사를 찾아갔다.
- 원자력을 풍력 발전에 도입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발상전환이 가능했는지요.
"우연히 풍력 발전기의 날개 제작 공정을 보게 되었습니다. 소형 풍력 발전기 날개는 가벼우면서도 내구성이 강한 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이나 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을 사용해서 만듭니다. 3.5m 정도의 작은 날개 제작에도 2명이 붙어 3시간 에 걸쳐 수작업을 해야 하는 고단한 작업이죠.
성형 틀에 탄소섬유나 유리섬유와 화학 강화제를 넣고 하루 정도 단단하게 경화한 다음, 열을 이용하여 다시 한 번 경화시키는 것이 그동안의 작업 공정이었어요. 그 모습을 보며 경화 작업에 방사선을 활용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방사선 처리 기술을 활용하면 단단하게 경화시키는 과정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어 시간 단축과 함께 수작업 공정까지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겠다 싶었어요."
- 방사선을 조사하면 탄소섬유나 유리섬유가 단단해진다고 하셨는데요?
"일직선으로 나열되어 있는 고분자 사슬에 방사선을 조사하면 얽히고설킨 그물망 구조로 변합니다. 결과적으로 인장강도나 압축강도가 높아지겠지요. 이번 실험 결과에서도 인장 강도는 10%, 압축강도는 90% 정도 향상되었어요."
- 방사선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걱정할 만한 요소는 없는지요?
"많은 양의 방사선을 사람에게 쪼인다면 그땐 위험천만한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람에게 방사선을 쪼일 목적으로 기술을 개발한 것은 아닙니다. 저 역시 이 아름다운 세상을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충분한 안전시설을 갖추고 그곳에서 방사선 처리를 하죠. 방사선 조사가 끝나고 나서야 사람이 작업실에 드나들게 됩니다. 전혀 문제될 게 없어요.
방사선이 위험한 물질이라는 막연한 편견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미 방사선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어요. 내열성이 우수한 케이블이나 전선, 고성능 레이디얼타이어(radial tire), 열수축 필름, 자동차 천장 안의 플라스틱 폼 역시 가벼운 방사선 처리가 들어가지요.
일찍부터 채소나 씨앗의 멸균이나 병충해 예방을 위해 방사선이 활용되고 있었고요. 열 처리가 불가능한 분야에서 물체를 단단하게 해야 하거나, 혹은 멸균이 필요하다면 그때는 대부분 방사선이 활용된다고 보셔도 무방할 거예요.
사실 열 처리와 방사선 조사를 비교하면, 방사선 조사는 불필요한 제품 변형이 없다는 장점이 있어요. 열 처리는 골고루 일정하게 하기 어려울 뿐더러 균등한 열 처리를 했다 하더라도 특정 부분에서 변형이 이루어질 수도 있죠. 반면 방사선 조사를 하게 되면 처리 전과 후의 형태 변화가 없이 단단해집니다. 모양 변형에서 비롯되는 후 처리 작업을 생략할 수 있게 되는 셈이죠."
- 방사선 조사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연구를 할 계획이 있는지요?
"방사선의 투과력과 에너지의 특성을 잘 이용하면 다양한 친환경 에너지에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태양 전지나 연료 전지가 가장 대표적이죠. 방사선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시각만 벗겨낼 수 있다면 방사선은 인류를 위한 더 없이 환경 친화적인 에너지 기술 원천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겁니다."
- 이번에 개발한 연구결과가 풍력 발전기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우리가 개발한 기술은 소형 풍력 발전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실현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50m에 이르는 거대한 날개를 만들 전자선 가속기 설비를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에요.
생각해 보세요. 50m짜리 날개를 놓고 작업할 공간이라면 공장 부지가 얼마나 커야 할지, 방사선 조사기 역시 얼마나 거대해야 할지, 여기에 일일이 수작업으로 공정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인력이 필요할지 말이에요.
때문에 작은 날개에 이 기술을 적용했지만 작업공간 문제가 해결되면 기술 응용폭이 상당히 넓어질 것입니다.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고 개발해야 할 당위성이 마련된다면, 대규모 풍력 발전기용 날개 제작은 시간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 대전=권현숙 객원기자
- yakida11@daum.net
- 저작권자 2012-02-21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