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소주 맛, 제조공장에 따라 달거나 쓰다?(종합)

인터넷·SNS에 "이천 공장서 만든 참이슬 달고, 청주서 만든 건 쓰다" 퍼져

‘인생이 쓰면 소주가 달다’는 애주가들의 지론은 실제 근거가 있는 과학적 발언일까?

주류업계의 대목인 연말을 앞두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하이트진로의 소주 ‘참이슬’이 제조 공장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주장이 확산하고 있다.

참이슬에 붙은 제품 라벨을 보면 ‘F1′(Factory 1), ‘F2’ 등으로 제조 공장이 표기돼 있다. 소주는 물이 주재료인데 이 제조 공장이 위치한 지역의 지하수가 다르기 때문에 공장에 따라 소주 맛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SNS), 유튜브 등에서는 “경기도 이천시의 쌀은 예로부터 임금에게 진상될 정도로 유명한 맛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지하수의 단맛 때문”이라며 “(이천에 있는) F1에서 제조한 참이슬은 달고, (청주의) F2에서 제조한 소주는 쓰다”는 주장이 폭넓게 퍼지고 있다.

정말 같은 참이슬이라고 해도 제조 공장에 따라 맛 차이가 있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제조 공장에 따른 맛의 차이는 극히 미미하거나 없다.

흔히 접하는 초록병에 든 소주는 모두 희석식 소주다. 희석식 소주는 연속증류(반복적 순환을 통해 고농도 알코올을 얻는 증류법) 공정을 통해 95%가 알코올인 주정(酒精·술의 원료로 쓰이는 에탄올)을 만들어 이를 물에 희석하는 방식으로 생산한다. 소주는 80%가 물이고, 나머지 20% 안팎이 주정이다. 여기에 미량의 감미료가 첨가된다.

희석식 소주는 일본에서 처음 개발됐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에 들어서 대중화됐다.

여기엔 술 만드는 데 쌀을 쓰지 못하도록 한 정부 규제가 한몫했다.

그 이전까지는 증류식 소주(단식증류 후 발효와 숙성을 거치는 소주)와 탁주(막걸리)가 인기를 끌었는데 1965년 양곡령으로 식량 외 용도의 쌀 소비가 규제되면서 쌀로 술을 빚는 증류식 소주의 생산이 금지된 것이다. 그러자 고구마나 감자를 원료로 하는 주정에 물을 섞어 만드는 희석식 소주가 저렴한 가격에 힘입어 대중주로 급부상하게 된다.

주정은 타피오카, 고구마, 쌀 등에 함유된 전분을 발효시켜 얻는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주정을 만드는 회사는 총 9곳인데 이들이 생산한 주정은 모두 ‘대한주정판매’로 팔려나간다. 대한주정판매는 국내에서 주정을 독점 유통하는 도매업체다.

10여개의 국내 소주 제조사는 대한주정판매로부터 주정을 받은 뒤 물, 감미료와 혼합해 소주를 제조·판매한다. 주정 유통이 독점 구조인 것은 주정이 국가의 주요한 세금원이어서 국세청이 철저히 통제·관리하기 위해서다.

전국에 산재한 소주 제조사는 저마다 상이한 감미료를 넣기 때문에 다른 브랜드의 소주 간에는 미세한 맛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소주 제조사가 지금처럼 전국 곳곳에 흩어져 분포하게 된 건 1970년대 시장 독점 방지를 위해 도입한 ‘자도주’ 제도의 흔적이다. 자도주는 시·도별로 1개 업체만 소주를 생산하고, 해당 시·도에서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도록 한 제도다.

자도주법은 1996년 시장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이 나 완전히 폐지됐지만 지금도 이 제도의 그림자는 남아 있다. 수도권의 경우 진로하이트의 ‘참이슬’, 강원도는 롯데주류의 ‘처음처럼’, 대전·충남은 맥키스컴퍼니의 ‘O2린’, 부산은 대선주조의 ‘대선’ 등의 소주 브랜드가 일종의 ‘지역 소주’로 인식되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참이슬은 동일한 브랜드에 공장만 다른 경우다. 감미료 종류와 배합비가 모두 동일한 상황에서 이천 공장의 소주 맛은 달고, 청주 공장의 소주 맛은 쓴 현상이 가능할까.

확인 결과, 소주 라벨에 인쇄된 F1 등이 제조 공장을 가리키는 것은 사실이다. F1은 이천 공장, F2는 청주 공장, F3은 익산 공장, F4는 마산 공장을 뜻한다.

그런데 이 중 청주·익산·마산 공장은 소주 ‘제조’ 면허가 아닌 ‘주입’ 면허만 가지고 있다. 주입 면허로는 소주 반제품을 물과 섞어 소주병에 집어넣는 ‘병입’ 작업만 할 수 있다. 이들 공장에선 주정에 감미료까지 넣은 반(半)제품을 이천 공장에서 받아 물과 섞은 뒤 주입하는 작업만 이뤄지는 것이다.

이때 쓰이는 물은 상수원에서 채취한 물로 4차례 ‘대나무숯 정제 공정’을 거쳐 술에 들어간다. 인터넷상 소문처럼 지하수가 쓰이는 게 아니다. 정제를 거치면서 불순물이 제거되는 것은 물론 미세한 향이나 풍미도 누그러질 수 있다.

진로하이트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보면 (소비자들이) 제조사가 다른 소주를 (맛으로) 구별하는 것도 쉽지 않다”며 “(소주에 들어가는 물도) 정제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물 때문에 맛 차이가 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역에 따른 물맛의 차이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다”며 “그런 논리라면 스타벅스 같은 글로벌 식음료 회사는 전 세계 각지에서 제품을 생산하는데 지역마다 제품 맛이 달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어떨 때는 달고, 때로는 쓰게도 느껴지는 소주의 맛을 주로 결정하는 것은 물보다는 단맛을 내는 감미료다. 참이슬의 영양성분표를 보면 원재료로 정제수, 주정, 과당, 효소 처리 스테비아, 에리스리톨, 토마틴이 들어가는 것으로 돼 있다. 이 중 과당, 효소 처리 스테비아, 에리스티톨, 토마틴이 모두 단맛을 내는 첨가물에 해당한다.

과거에는 소주의 단맛을 내기 위해 인공 감미료인 사카린을 사용하기도 했으나, 발암물질이라는 의혹이 불거진 이후 사용금지 처분을 받으면서 과당과 감미료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진로하이트 관계자는 “(소주 맛이) 언제는 달고, 언제는 쓴 이유는 개인 컨디션이나 함께 먹는 안주 등 복합적인 상황이 작용한다”고 맛 차이의 이유를 설명했다.

소주 맛을 둘러싼 이 같은 논란이 주류 소비 문화의 전환을 보여주는 것이란 진단도 있다.

주류 칼럼니스트이기도 한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과정 명욱 교수는 “일반인이 (소주 맛의) 차이를 구분하는 건 매우 어렵지만, 술 자체가 발효와 증류, 숙성을 거쳐 만들어지기 때문에 매번 100% 똑같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명 교수는 “이제는 시장 자체가 달라졌다”며 “예전엔 마시고 취하는 것만 생각했다면 이제는 소비자가 술맛의 미세한 차이점을 찾아보고, 다름의 이유를 생각해보고, 이유나 가치까지 추론해보는 단계”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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