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를 생각해보자. 꽃은 단순한 꽃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름을 불러주자 아름다움을 가진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다. 이처럼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의미를 담아내지 못하면 혹은 주변과 어떤 관계가 맺어지지 않으면 결국 어떤 생명력도 얻지 못한다.
스티브 잡스가 처음 세상에 아이폰을 내놓았을 때를 한번 되돌아보자. 아이폰의 기술들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던 것들이었다. 인간과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다리를 만들어주자 그 기술들은 의미 있는 존재로, 그리고 혁신의 아이콘으로 세상에 다가왔다. 그렇다면 아이폰을 이룬 기술과 세상을 연결시킬 다리를 만들 생각을 한 스티브 잡스의 창의성은 어떨까.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그의 생각들은 스스로 그 존재를 드러냈던 것일까. 우리나라 인지과학계의 대부인 성균관대 이정모 명예교수를 만나 창의성 대해 물었다.
과거에는 창의성이 개인적 특성으로 여겨
“20세기까지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이 둘을 뛰어 넘는 시대입니다.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화하는 역동적인 시대이니만큼 창의성에 대한 생각도 바뀌어야 합니다.”
이정모 교수는 “특히 창의성은 인간의 마음 작용 중 일부인데, 현재 그 마음에 대한 패러다임이 달라지고 있다”며 “창의성에 대한 개념도 이 패러다임에 맞춰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 창의성은 개인의 속성이나 능력으로 보는 경향이 컸다. 특정인을 가리키는 ‘He-창의성’이 그것이다. 천재적 개인이나 선천적·유전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속성으로 본 이 개념은 우리나라에서 노벨상 수상 후보자의 육성이나 영재교육과 같은 정부 주도 과학기술 정책이나 교육정책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나마 인지심리학의 발달로 일반인들도 창의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창의성이란 일상적 인지의 한 속성이며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다는 관점인 ‘I-창의성’은 ‘창의적 인지’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창의성의 일상적 속성을 강화했다.
문제는 ‘I-창의성’도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창의적 활동들을 모두 설명해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특히 SNS 등의 발달로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함께 문제를 풀어간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오가면서 창의적인 생각들이 도출된다. 물론 이 창의적 문제해결력은 누구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그 네트워크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공동 소유라고 할 수 있다. ‘I-창의성’이 일반인 누구나 가지는 속성이라고는 하지만 창의성 자체를 개인의 속성으로 보기 때문에 집단 창의성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We-창의성’은 ‘마음-몸-환경’을 하나로 보는 입장
“21세기에 들어서 영국 런던정경대학 심리학과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We-창의성’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창의성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We-창의성’을 알기 위해서는 20세기 말부터 ‘공간적 연장됨이 있는 마음’ 혹은 ‘체화된 인지’라고 부르는 제3의 인지과학 패러다임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라고 불리는 이 새로운 패러다임은 ‘몸을 통해 환경에 연장된 마음(extended mind)’, ‘몸을 통해 구현되는 마음(embodied mind)’, ‘몸에 의해 환경에 심어져 있는 마음(embedded mind)’, ‘활동을 통해 비로소 발현되는 마음(enacted mind)’, ‘환경에 분산·확장되는 마음(distributed mind)’으로 재개념화 하고 있는데, 이는 마음과 몸(뇌 포함)과 환경은 따로 괴리된 것이 아니고 서로 밀접히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통합적 단위로 보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롭게 제시되는 ‘We-창의성’ 개념은 바로 여기서 파생된다.
이 교수는 “‘We-창의성’은 나를 둘러싼 환경(다른 사람들, 스마트폰과 인터넷 같은 인공물들, 정치제도 경제제도 교육제도, 과거의 역사와 같은 문화 환경 포함)과 역동적으로 몸을 부딪쳐 가며 이룬 상호작용의 결과로, ‘나’라는 매개체를 통해 발현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보자. 목욕탕에서 물이 넘치는 모습을 보고 아르키메데스는 ‘유레카’라고 외쳤다. 당시 목욕탕 문화가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구텐베르크는 축제에서 포도주 압착기의 작동을 보고 인쇄기에 대한 최초의 아이디어가 번개같이 스쳤다고 말했다. 뤼미에르는 어머니가 재봉틀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고 활동사진(영화)을 발명했다고 한다. DNA 모형을 찾은 왓슨과 크릭은 자신들보다 1년 앞서서 DNA가 나선이라고 믿고 있었던 프랭클린의 통찰력에서, 이런 통찰력의 근간이 되었던 X선 사진을 그들에게 살짝 보여준 윌킨스에서, 연구모형의 기반을 발전시켜온 폴링 등 주변 사람들의 연구에서 결정적인 도움을 받았다.
이 교수는 “위대한 발명이나 발견, 혹은 예술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원래 창의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의 역동적 상호작용에 의해 다른 곳에서 새로운 단서를 얻어 이제까지 생각을 새로운 틀에서 재조명하고 재구성하게 된다”며 “이때 창의적 아이디어가 또 다른 내러티브를 생성해 내면서 그 결과 창의적 산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창의성의 발현은 다른 사람들이나, 문화·환경의 기여 없이는 불가능하며, 또한 지금의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현재의 사람들에 의하여 창의적인 것으로 그 의미나 가치가 평가, 인정, 수용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창의적’이라고 규정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아이폰의 기술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혁신과 창의성의 아이콘의 상징이 될 수 있었던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계속)
- 김연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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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3-08-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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