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음식을 그릇에 담아 전자레인지에 넣고 버튼을 몇 번 누르면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끈한 음식으로 변한다. ‘마이크로웨이브(microwave)’라 불리는 극초단파가 음식물 속 물분자를 진동시켜 열을 발생시키는 원리다.
전자레인지 내부에는 마그네트론(magnetron)이라는 특수 진공관이 있어서 물분자의 진동수와 동일한 2.45기가헤르츠의 극초단파를 발생시킨다. 극초단파를 쬔 물분자는 동일 주파수에 반응해 에너지를 흡수하는 ‘공진현상’을 일으키며 1초에 24억5천만번의 진동을 일으키고 이로 인해 마찰열이 생겨난다.
수분은 세포 안에도 충분히 존재한다. 극초단파가 세포에 닿으면 말 그대로 ‘익어버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특정 부위만을 제대로 조준해 몸속의 종양을 없앨 수도 있지 않을까. 이미 각 병원에서는 온열치료와 극초단파치료라는 이름으로 유사한 방법을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극초단파를 이용해 암세포를 3차원 이미지로 검출하고 동시에 치료까지 하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하나의 시스템으로 진단(diagnotics)과 치료(therapy)를 동시에 실시하여 ‘세라노스틱스(theranostics)’라 불리는 분야로, 세계 의학관련 시장에서 많은 연구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극초단파로 촬영해 3차원 이미지 구성
극초단파를 발생시키는 마그네트론은 원래 레이더 장치에 쓰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과학자들에 의해 개발되었다. 이후 미국 과학자들이 음식을 데우는 효과를 발견한 이후 가정용 전자레인지에도 탑재되었다.
물분자의 진동을 유발하는 극초단파는 인체 내 세포의 온도를 높여 환자를 치료하는 데도 이용되어 왔다. 세포가 고열에 노출되면 활동이 저하되며 급격히 노화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극초단파는 엑스선을 대신해서 몸속 상태를 촬영하는 데도 쓰인다.
샬머시 공대 연구진이 개발한 극초단파 기술은 진단과 치료의 2가지 분야 모두에 이용할 수 있다. 우선 진단 기능으로 건강한 세포 사이에서 병든 세포를 찾아내는 3차원 극초단파 단층촬영술(microwave tomography)을 개발해 임상실험을 앞두고 있다.
극초단파 단층촬영술을 이용하면 현재 엑스선을 이용해 유방암을 진단하는 유방조영술(mammography)을 대체할 수 있다. 유방조영술은 비전리방사선(non-ionising radiation)이 방출되어 건강에 해로울 수 있으므로 회수와 기간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극초단파 단층촬영술은 방출되는 전자파의 양이 극히 적어 안전성 문제가 덜하다. 핸드폰 통화의 수백분의1에 불과하다. 촬영된 이미지도 3차원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장치를 개발한 안드레아스 파거(Andreas Fhager) 교수는 샬머시공대의 보도자료를 통해 “3차원 이미지를 이용하면 건강한 세포와 병든 세포를 구별하는 데 있어 엑스선보다 나은 성능을 보여주어 진단 신뢰도가 높아진다”고 밝혔다.
검사 방법도 유방조영술보다 편리해졌다. 가슴 부위에 구멍이 뚫린 검사대에 환자가 엎드리면 30여개의 안테나가 연결된 장치가 유방암 세포를 추적한다. 영상이 또렷해서 의사들이 결과를 판독하고 해석하기가 쉬워진다. 극초단파 장비는 엑스레이 장비보다 운용비가 낮아 비용도 절감된다.
진단과 동시에 치료 진행하는 세라노틱스 각광
극초단파를 이용하면 진단과 동시에 치료를 진행할 수도 있다. 특정 부위의 종양에만 열을 가해 암세포를 없애는 것이다. 발열요법(hyperthermia)이라 불리는 암 치료법의 일종이다.
방사선요법과 화학요법 등 기존의 항암치료에 발열요법을 접목시키면 치료효과가 두 배나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현재는 자궁경부암과 연조직육종 등 특정 형태의 암에서 높은 효과를 보인다.
연구에 참여한 하나 트레프나(Hana Dobšíček Trefná) 박사는 “새로 개발한 장치를 이용하면 주변 조직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특정 종양의 온도만을 높이는 것이 가능하다”며 “머리와 목 등 치료가 까다로운 부위 깊숙이 자리한 종양까지도 높은 정확도로 치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연구진은 앞으로 6개월 동안 진단과 치료 실험을 각각 실행할 예정이며, 임상결과를 종합한 후에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시킬 예정이다. 안테나가 암세포를 찾아냄과 동시에 극초단파를 방출해 정확한 부위에만 열을 가해 치료하는 장치다.
스웨덴은 극초단파를 이용한 치료장치 개발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최근에는 뇌졸중 위험부위를 찾아내는 ‘스트로크파인더(Strokefinder)’를 개발했다. 헬멧 모양의 기구를 머리에 쓰면 뇌속의 혈류와 혈전을 구별해내는 장치이다. 스웨덴 예테보리의 살그렌스카(Sahlgrenska) 대학병원에서는 이미 임상테스트가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2009년 극초단파 단층촬영술을 최초로 개발한 바 있으며, 진단과 동시에 치료를 진행해서 맞춤형 진료가 가능한 세라노스틱스 분야에 많은 연구비를 투자하고 있다. 전자레인지와 레이다 장치에만 쓰이던 극초단파가 생명을 구하는 일에도 두각을 나타내는 셈이다.
- 임동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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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1-11-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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