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체로 낮 동안 깨어 활동하다가 밤이 되면 잠을 잔다. 잠은 낮 동안 열심히 활동해서 지쳤을 때만 자는 것이 아니며, 심지어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도 잠을 잔다. 잠을 잘 자는 것은 깨어 활동하는 시간만큼이나 중요하다. 하지만 그 중요한 정도에 비해 잠에 대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 많다. 특히 잠의 단계가 어떻게 조절되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사실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잠을 자는 동안 렘수면과 비 렘수면의 몇 단계를 오간다는 것, 단순히 잠을 얼마나 오래 자는가 보다 렘수면과 비 렘수면이 얼마나 적절히 반복되는가에 따라 잠의 질이 결정된다는 것, 그리고 이 같은 수면 단계는 발달 단계를 거치면서 서서히 안정적으로 자리잡게 된다는 것과 같이 표면적으로 관찰 가능한 현상이 대부분이다.
이 같은 현상들과 함께 관찰되는 뇌의 변화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은 사실이 알려져 있긴 하지만, 렘수면과 비 렘수면을 조절하고, 각성 상태에서 잠에 빠져들게 되는 근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없었다.
쓰쿠바대 유 하야시 '사이언스'에 연구결과 발표
그에 대한 실마리가 지난 11월 20일 '사이언스' 지에 발표된 연구 결과를 통해 최초로 제시되었다. 이 연구는 일본 쓰쿠바 대학 국제 통합 수면 연구소의 유 하야시(Yu Hayashi)가 이끄는 연구진에 의해 수행되었다.
연구진은 발달 단계에서부터 존재하는 특별한 신경세포 덩어리가 렘수면과 비 렘수면, 또 깨어있는 상태와 잠든 상태를 조절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 세포들은 발달 초기 단계에 소뇌가 될 세포들과 함께 있다가 발달이 다 이루어지고 나면 ‘뇌교 뇌피개’라는 곳으로 이동한다. 이곳은 잠을 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진 부위이다.
이 세포들은 다시 상소뇌각(上小腦脚)이라는 영역의 위치를 기준으로 중앙지역과 가장자리 지역에 분포한 두 개의 무리로 나누어볼 수 있다. 연구진은 이 두 무리의 세포들이 각각 렘수면과 비 렘수면, 수면과 각성 상태를 전환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연구진은 실험자가 인위적으로 특정한 세포의 활성 정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기술(DREADD; Designer receptors exclusively activated by designer drug)을 이용했다. 이 기술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수용체 유전자를 바이러스를 통해 동물의 몸 속 원하는 곳에 집어넣고, 이 인위적 수용체에만 특이적으로 반응하는 약물(CNO라는 약물이 주로 사용된다.)을 투여함으로써 원하는 때, 원하는 세포의 활성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이용해 뇌교 뇌피개의 세포들 중 원하는 특정 세포들만 활성화시켰을 때, 수면 상태가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확인함으로써 특정한 세포의 정확한 역할을 알아냈다.
연구진이 뇌교 뇌피개의 세포들 중 중앙 지역에 위치한 세포들을 활성화시켰더니 렘수면 시간이 줄어들었다. 반면, 뇌교 뇌피개의 가장자리 지역에 위치한 세포들을 활성화시켰더니 각성 상태가 오래 유지되고 잠을 자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렘수면은 보통 얼마나 깨어있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었는지, 잠이 든 뒤에는 비 렘수면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에 따라 그 길이가 달라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잠을 자지 않고 깨어있는 상태가 오래 지속될수록, 또 잠이 든 뒤에 비 렘수면이 오랫동안 이어질수록 렘수면을 자는 시간도 길어진다. 즉, 잠의 각 단계와 각성 상태는 서로 상호작용하며 그 지속 시간이 조절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뇌교 뇌피개 세포들을 활성화시켰을 때 렘수면 시간과 각성 상태가 유지된 시간이 변화한 것이 단순히 렘수면 또는 수면에 드는 것이 억제된 결과일까? 아니면 각성상태, 렘수면, 비 렘수면 상태 사이의 관계를 전반적으로 변화시켜 몸이 필요로 하는 잠의 상태가 조절된 결과일까?
뇌교 뇌피개 세포들을 활성화시켰을 때 렘수면을 자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에 더해 비 렘수면의 지속 시간도 감소했다. 즉, 뇌교 뇌피개 세포들은 특정한 상태를 억제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잠의 상태를 조절하는 것이다.
이처럼 각성과 수면, 렘수면과 비 렘수면 상태를 전환하는 세포가 밝혀진 것은 매우 의미 있다. 단순히 세포 몇 개의 활성을 조절함으로써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자더라도 그 효과는 8시간을 푹 잔 것처럼 만든다거나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깨어있거나 잠을 자는 것이 가능해지는 등 수면 습관과 잠의 효율을 높이고 불면증 같은 수면 관련 질병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세포의 활성을 조절하여 잠의 형태가 변화되었을 때 다른 신체 영역에서도 충분히 잠을 잤을 때와 같은 효과가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다. 겉보기에 드러나는 현상, 즉 잠의 각 단계와 각성 상태가 지속되는 시간의 변화에 대해서는 많은 사실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 세포들의 활성 정도를 조절하는 것이 기능적인 면에서는 어떤 효과를 가질지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 특히 이번 연구는 언어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생쥐를 대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기능적인 측면에서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더 어렵다.
각성과 수면 상태를 전환하는 세포와 수면에 든 뒤에 렘수면과 비 렘수면 상태를 전환하는 세포가 발달 초기에는 같은 덩어리였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하지만 이 세포들이 뇌교 뇌피개로 이동하기 전부터 이런 역할을 하도록 정해진 것인지, 뇌교 뇌피개로 이동한 뒤에 이런 역할을 부여 받은 것인지도 앞으로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 박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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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12-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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