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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이강봉 객원기자
2017-09-21

유전자가위로 나비 날개 그리다 DNA 편집으로 새로운 문양·색상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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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아름다움은 날개에 있다. 날개 속에 펼쳐지고 있는 다채로운 색상과 패턴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런 아름다움이 자연법칙의 산물로 여겨왔다. 그러나 최근 이런 전제가 무너지고 있다.

20일 ‘뉴욕타임즈’, ‘사이언스’ 등 주요 언론들은 과학자들이 나비 날개가 지니고 있는 색상·패턴의 비밀을 해득하기 시작했으며, 머지않아 새로운 색상으로 나비 날개를 디자인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일이 가능해진 것은 크리스퍼-카스9(CRISPR-Cas9)라 불리는 유전자 편집기술 때문이다. 특정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파악한 후 3세대 유전자 가위로 유전자를 절단하고 편집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워싱턴대 연구팀이 공개한 변화한 나비 날개 문양. 왼쪽 날개가 원래 나비 날개 모습이고, 오른쪽 날개는 유전자편집된 나비 날개다. 문양과 색상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Arnaud Martin/The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워싱턴대 연구팀이 공개한 변화한 작은멋쟁이 나비 날개 문양. 왼쪽 날개가 원래 나비 날개 모습이고, 오른쪽 날개는 유전자편집된 나비 날개 모습이다. 문양과 색상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Arnaud Martin/The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패턴·색상 결정하는 2개 유전자 발견    

이 유전자가위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지금 과학자들이 마음먹은 대로 나비 날개 문양과 색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관련된 2개의 논문은 국제학술지 PNAS(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게재됐다.

장 린린(Linlin Zhang), 로버트 리드(Robert D. Reed) 박사가 이끄는 미국 코넬 대학 연구팀은 첫 번째 논문을 통해 옵틱스(optix)란 유전자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 유전자는 나비 날개의 모든 색상을 조율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흐린유황나비(Gulf fritillary)의 알에서 이 유전자를 제거했을 때 성체가 된 나비들은 진한 갈색과 함께 검정색과 은색이 섞인 현란한 색상의 날개를 선보였다. 그대로 놔두었다면 이 나비 날개의 원래 색깔은 밤나무 색이었다.

색상이 달라진 것은 유전자 편집으로 인해 검은 색을 띠는 멜라닌이 다수 생성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옵틱스라 불리는 유전자가 갈색을 만들어내고 있었지만 이를 제거하면서 검정색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흐린유황나비의 연구를 이끈 로버트 리드 박사는 “이처럼 나비 날개의 색상이 급격히 변화한데 대해 크게 놀라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남방공작나비(buckeye)를 대상으로 진행된 또 다른 연구에서는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옵틱스를 제거했을 때 원래 날개 색깔인 갈색과 노란색이 사라지고 각도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파란색으로 변했다. 리드 박사는 “이 색상은 맹렬하게 빛나고 있었으며, 연구진 모두에게 큰 놀라움을 선사했다”고 말했다.

PNAS에 발표된 두 번째 논문은 워싱톤 대학의 아르노 마틴(Arnaud Martin) 박수, 코넬 대학의 안니 마요 바르가스(Anyi Mazo-Vargas) 박사 연구팀이 공동 집필했다. 이들 연구진은 나비 날개를 연구하면서 WntA란 유전자를 발견했다.

유전자 제거하자 나비 문양·색깔 변화해    

연구진이 실험한 대상은 네발나비과(nymphalid) 나비들이다. 다양한 종이 있는데 그 중 일부 종을 선택해 WntA 유전자를 제거하는 실험을 시도했다. 그러자 얼룩덜룩한 무늬에 들어 있었던 대칭형의 패턴 무늬가 모두 사라졌다.

다른 무늬 패턴을 지난 다른 종에서도 WntA를 제거했다. 그러자 앞의 사례와는 다른 무늬 패턴 변화가 발견됐다. 바르가스 교수는 “WntA 유전자가 네발나비거과 나비 날개 무늬를 정형화(patterning)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말했다.

왕나비과(monarch butterfly) 나비들을 대상으로도 실험을 실시했다. 유전자가위 기술로 WtnA를 제거한 결과 오렌지 빛 패턴이 사라지고 블랙 라인으로 가장자리를 두른 모양의 백색 라인으로 구성된 새로운 무늬 패턴을 선보였다.

WtnA의 활동은 애벌레 상태에서도 매우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애벌레의 무늬 패턴이 초기 날개 무늬 패턴으로 이어졌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WntA 유전자가 네발나비과 나비들의 날개 무늬 패턴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마틴 박사는 WntA 유전자를 나비 날개 무늬 패턴을 결정하는 스케칭 도구(sketching tool)라고 설명했다. WntA 유전자가 스케칭 도구라고 한다면 리드 박사 연구팀이 발견한 옵틱스 유전자는 색깔을 채우는 그림붓(paintblush)라고 할 수 있다.

리드 박사 등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향후 후속연구를 통해 나비 날개 유전자를 모두 해독하고, 업그레이드되는 유전자가위 기술을 통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여러 가지 무늬와 색상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 자연생태계에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번 실험에 투입된 네발나비과 나비들은 지구상에서 9000만년 동안 살아오면서 네발나비·큰표범나비·세줄나비·남색부전나비 등 약 6000종의 나비로 진화한 곤충이다.

오랜 삶을 통해 많은 패턴의 무늬로 진화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전자가위 기술로 이 곤충의 DNA 모습을 바꿔놓을 경우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변종이 탄생할 수 있다. 기존 자연질서를 파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진화 문제다. WntA, 옵틱스 같은 중요한 유전자들을 제거할 경우 또 다른 종과의 교배를 통해 또 다른 종으로의 진화를 유발할 수 있다. 나비 생태계 전반에 예기치 못한 종이 출현하고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럴 경우 자연생태계 질서에 대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리드 박사는 “기존의 자연 질서를 구축해온 이 유전자 네트워크를 손상하지 않고 긍정적인 쪽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안과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강봉 객원기자
aacc409@naver.com
저작권자 2017-09-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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