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이 캄캄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때, ‘칠흑(漆黑)같이 어두운 밤이다’라는 표현을 쓴다. 칠흑이란 옻칠처럼 짙고 검은 색을 말하는데, 최근 이 보다도 훨씬 검은 ‘세상에서 가장 검은 색’이 등장하여 과학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바로 ‘밴타블랙(Vantablack)’이다.
첨단 생산기술 전문 매체인 '매뉴팩쳐링넷'(Manufacturing.net)은 빛을 거의 완벽하게 흡수하여 우주의 블랙홀만큼이나 검게 보이는 ‘밴타블랙’이라는 신물질이 주목을 끌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앞으로 우주관측 및 국방 분야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관련 기사 링크)
현존하는 가장 검은 색인 밴타블랙
밴타블랙은 영국의 나노테크 전문기업인 서리나노시스템즈(Surrey NanoSystems)가 개발한 물질이다. 탄소나노튜브를 제조하는 저온 공정을 통해 만들어진 이 물질은, 현존하는 색들 중 가장 검은 것으로 밝혀졌다. 탄소나노튜브는 머리카락 1만분의 1 크기에 불과한 작은 물질이다.
얼마나 검기에 세상에서 가장 검은 색이라고 할까? 밴타블랙의 가시광선 흡수율은 99.96%인 것으로 측정되었는데, 보통 검은색의 흡수율이 95∼98%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밴타블랙의 색도가 얼마나 검은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론적인 설명이 피부에 잘 와닿지 않을 때는, 아래의 사진을 참조하면 어느 정도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 런던의 과학박물관에 전시된 2개의 얼굴 조각상인데, 밴타블랙이 칠해져 있는 한 쪽 조각상은 굴곡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평면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의 눈은 빛의 반사에 의해 물체의 요철을 구분한다. 반사율이 높은 밝은 색일수록 요철을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는 반면에, 반사율이 낮은 어두운 색일수록 요철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어떤 물체에 완벽한 검은 색이 칠해져 있다면, 그 물건에 요철이 있다 하더라도 평면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서리나노시스템즈의 최고기술책임자(CTO)인 벤 젠슨(Ben Jensen)은 “밴타블랙의 색이 얼마나 검은지, 구겨진 은박지도 밴타블랙이 칠해지면 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라고 전하며 “이 같은 현상은 기계도 마찬가지여서, 흡수하는 빛의 스펙트럼을 계측하는 분광기(spectrometer)로도 측정할 수 없다”라고 소개했다.
그는 “밴타블랙이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뿐 아니라 적외선 영역까지 흡수하기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라고 설명하며 “레이저포인터의 빛마저 밴타블랙을 만나면 사라질 정도로, 이 초미세 탄소 구조체는 거의 모든 빛을 빨아들인다”라고 덧붙였다.
의류 제작에 활용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젠슨 이사는 “만일 밴타블랙으로 옷을 만들게 되면 레이스 부분이나 실밥처럼 눈에 띌 만한 특징까지 모두 보이지 않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며 “드레스를 입은 사람의 머리와 손발이 마치 검은 구멍에서 나온 것처럼 기괴하게 보일 수도 있다”라고 답변했다.
우주관측 및 군사위성 등에 활용
과학계가 밴타블랙의 탄생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그 용도가 실로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우선 천체 관측을 하는 망원경에 적용되면,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했던 난반사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멀리 떨어진 별을 관측할 때 가장 큰 장애물은 주변 빛에 의한 난반사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망원경 내부에 검은색을 칠하여 불필요한 빛을 흡수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난반사에 따른 빛의 반사율이 국내 망원경은 7% 정도이고, 미 항공우주국(NASA)의 망원경도 1%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밴타블랙을 사용하면 반사율이 0.04% 정도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우주관측 외에 밴타블랙의 활약이 기대되는 분야는 바로 군사무기를 개발하는 국방분야다. 군사전문가들은 첩보 위성의 표면을 밴타블랙으로 칠하면, 적의 눈에 띄지 않으면서 완벽한 첩보업무 수행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밖에도 밴타블랙은 높은 열전도율과 인장력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구리보다 7.5배에 이르는 효율로 열을 전달할 수 있고, 강철보다 10배나 높게 늘어날 수 있다.
젠슨 이사는 “밴타블랙의 이런 특성 덕에 실제로 발견할 수 없는 수준의 가스 입자 이탈을 방지하고, 먼지를 없애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라고 강조하며 “물론 부품 등을 코팅 처리하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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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6-05-3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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