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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김병희 객원기자
2021-04-30

세계 최대 ‘척추동물 게놈 프로젝트’ 첫 성과 보고 1차로 고품질의 25종 유전체 분석 결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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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새와 포유류, 도마뱀, 물고기를 비롯한 척추동물 게놈 프로젝트[Vertebrate Genome Project (VGP)]의 첫 번째 성과가 과학저널 ‘네이처’(Nature) 28일 자에 보고됐다.

미국 록펠러대 척추동물 게놈 연구실과 웰컴 생어 연구소, 막스플랑크 분자세포생물학 및 유전학 연구소, 하워드 휴드 의학연구소 등이 참여한 척추동물 게놈 프로젝트팀은, 거의 완전하고 품질 높은 25종의 유전체를 발표하며 새로운 게놈 시퀀싱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이번에 분석한 척추동물 25종에는 큰 말굽 박쥐와 캐나다 스라소니, 오리너구리 그리고 멸종 위기 종인 카카포 앵무에 대한 최초의 고품질 게놈 등이 포함됐다.

‘척추동물 게놈 프로젝트’팀은 앞으로 7만 종의 척추동물 게놈을 분석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 WikiCommons / Prehistoricplanes

논문 공저자로 하워드 휴즈 의학연구소(HHMI) 연구원이자 캘리포니아(산타크루즈)대 교수인 데이비드 하우슬러(David Haussler) 박사는, 이번 논문이 과학자가 새로운 수준의 유전체 분석 정확성과 완전성 달성을 위한 기술적 진보를 제시하는 한편, 현존하는 7만 종의 척추동물 게놈을 해독하는 길을 열었다고 밝혔다.

한 예로 연구팀은 금화조(zebra finch)의 유전체에서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염색체를 찾아냈고, 중남미에 서식하는 마모셋 원숭이와 인간의 뇌 사이의 유전적 차이점에 대해 놀라운 발견을 했다. 이와 함께 멸종 위기에 처한 카카포 앵무와 바퀴타 돌고래를 구할 수 있는 희망도 제시했다.

록펠러대 신경유전학자이자 척추동물 게놈 프로젝트(VGP) 대표인 에릭 자비스(Erich Jarvis) 박사는 “이 25종의 게놈은 중요한 이정표를 나타낸다”라고 말하고, “우리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우고 있으며, 이 작업은 향후의 성과물에 대한 원리 증명”이라고 말했다.

1 종에서 7 종으로

VGP의 이정표는 여러 해 동안 만들어졌다. 이 프로젝트의 기원은 2000년대 후반 하우슬러 박사와 유전학자인 스티븐 오브라이언(Stephen O'Brien) 박사 그리고 샌디에이고 동물원 보존유전학 책임자인 올리버 라이더(Oliver Ryder) 박사가 ‘안목을 크게 갖자’라는 생각을 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간을 비롯한 몇몇 동물 종과 초파리 같은 모델을 시퀀싱하는 대신 대담하게 1만 종의 동물 전체 게놈을 시퀀싱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으나, 비용이 워낙 많이 들어 실행되지 못했다.

동물 게놈에 있는 모든 DNA 문자를 시퀀싱 하려는 초기 노력은 오류로 가득차 있었다. 2003년 최초로 인간 게놈 시퀀싱을 거칠게 완성한 뒤 과학자들은 DNA를 수백 글자 길이의 짧은 조각들로 자르고, 그 글자들을 해독했다.

이어 조각을 올바른 순서로 조립하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 이뤄졌다. 방법이 작업에 적합치 않았기 때문에 잘못된 조립과 커다란 격차 그리고 기타 여러 실수가 발생했다. 유전자를 개별 염색체에 매핑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때도 종종 있었다.

더 짧게 읽는 새 시퀀싱 기술이 도입되면서 수천 개의 게놈을 읽는 것이 가능해졌고, 급속히 발전하는 기술은 비용을 절감시켰으나, 게놈 조립 구조의 품질을 떨어뜨렸다.

인간 게놈 서열을 책으로 기록하면 약 100권 분량의 책이 된다. 첨단 기술의 발달에 따라 게놈 시퀀싱 기술은 더욱 정확하고 완전해졌다. © WikiCommons / Stephencdickson

2015년에 하우슬러 박사팀은, 다른 새의 노래를 듣고 새로운 곡조를 지저귀는 새의 복잡한 신경회로를 해독하는 선구자인 자비스 박사와 합류했다. 자비스 박사는 2014년에 100명 이상의 연구자들과 함께 새 48종의 게놈을 시퀀싱해 음성 학습과 관련한 새로운 유전자를 발견한 바 있다.

자비스 박사는 ‘게놈 10K 프로젝트’를 이끌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 프로젝트에 모든 척추동물 게놈을 포함하도록 아이디어를 확장하고 브랜드도 바꿨다. 그는 자신이 몸담은 록펠러대에 새로운 시퀀싱 센터를 설립하는 데도 노력을 기울였다.

이 센터는 전 HHMI 자넬리아 연구 캠퍼스 그룹 리더였던 진 마이어스( Gene Myers) 박사가 이끄는 막스플랑크 연구소와, 리처드 더빈(Richard Durbin) 및 마크 블랙스터(Mark Blaxter) 박사가 이끄는 영국 생어 연구소와 함께 현재 대부분의 VGP 게놈 데이터를 생산하고 있다.

병목 현상의 물꼬를 트다

60명 이상의 유능한 과학자가 모인 대규모 연구팀은 일련의 기술 발전을 이끌어냈다. 새로운 시퀀싱 기계를 사용해 수백 글자 정도가 아닌 1만 개 이상의 글자로 된 DNA 뭉치를 읽을 수 있게 됐다.

연구팀은 또한 이런 세그먼트를 개별 염색체로 조립하는 영리한 방법을 고안했다. 이와 함께 어떤 유전자가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유전됐는지를 알아냄으로써 과학자들이 같은 유전자의 모계 및 부계 복사본을 두 개의 별개 유전자로 잘못 표시하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했다.

연구에 직접 관여하지 않은 미국 듀크대 유전학자 제니 텅(Jenny Tung) 박사는 “과거에는 게놈 조립의 기술적 측면이 게놈 시퀀싱의 병목이 됐기 때문에 이 작업은 정말 중요한 문을 열었다”고 말하고, “고품질의 시퀀싱 데이터를 보유하면 질문하는 유형이 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팀의 정확도 향상은 이전 게놈 시퀀싱이 심각하게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금화조 게놈 분석에서 연구팀은 8개의 새로운 염색체와, 누락된 것으로 여겨지는 900개의 유전자를 발견했다.

오리너구리에서도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염색체가 발견됐고, 이 사실은 연구팀의 일원이 올해 초 ‘네이처’ 지에 온라인으로 보고했다.

날지 못하고 땅에서 사는 희귀종인 카카포 앵무새. © WikiCommons / Department of Conservation

새로운 생명과학 발견의 시대

연구팀은 어려움을 헤치고 반복적인 DNA의 긴 구간(long stretches)도 올바르게 조립했다. 일부 과학자들은 이렇게 길게 뻗어있는 구간을 ‘쓰레기’ 또는 ‘암흑물질’로 간주했다. 뭔가 잘못됐다고 본 것이다.

이에 대해 자비스 박사는 많은 반복이 단백질을 코딩하는 게놈 영역에서 발생한다며, 이는 DNA가 유전자를 켜거나 끄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이런 점이 바로 이번 논문이 구상하는 ‘생명과학에서의 새로운 발견의 시대’를 여는 시작이다. 자비스 박사와 공동 연구자들은 새로운 게놈 서열이 나올 때마다 새롭고 종종 예기치 못한 발견을 하곤 한다.

예를 들면, 자비스 박사의 실험실에서는 마침내 앵무새와 노래하는 새들이 곡을 배우는데 필요한 핵심 유전자 조절 영역을 파악해 내는 성과를 올렸다. 연구팀은 이어 이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아내려고 노력 중이다.

마모셋 원숭이 게놈 분석에서는 몇 가지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마모셋 원숭이는 인간 병원성 아미노산에 대한 여러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실험을 위한 동물 모델을 개발할 때 유전적 맥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부각한다. 연구팀은 이 내용을 ‘네이처’ 동반 논문으로 보고했다.

아일랜드 더블린대 엠마 틸링(Emma Teeling) 교수팀은 지난해 ‘네이처’지에 발표한 연구에서 일부 박쥐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견디는 능력과 관련된 면역 유전자를 잃었다는 사실을 보고하기도 했다.

지구 상에 10~20마리밖에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 바퀴타 돌고래. © WikiCommons / Paula Olson, NOAA

희귀종을 구하는 데도 도움

새로운 게놈 정보는 또한 희귀종을 구하기 위한 노력을 촉진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자비스 박사는 “멸종될 종을 돕는 것은 매우 중요한 도덕적 의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연구팀은 멸종 위기에서 구출해 번식 프로그램의 일부로 기르고 있는 제인이라는 카카포 앵무에서 게놈 표본을 수집했다.

오타고대의 니콜라스 더섹스(Nicolas Dussex) 박사팀은 ‘셀 지노믹스’ 지에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제인의 유전자에 대한 상술 논문을 게재했다. 이 논문에서는 지난 1만년 동안 뉴질랜드에서 따로 떨어진 섬에 고립된 카카포 앵무새 개체군이 유전적 다양성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해로운 돌연변이를 제거했다는 사실을 기술했다.

미 국립해양대기청(NOAA) 어업국의 필 모린(Phil Morin) 박사팀도 비슷한 연구를 했다. 이들은 ‘분자 생태학 자원’(Molecular Ecology Resources)에 발표한 연구에서 현재 지구상에 10~20마리밖에 남아있지 않은 바퀴타(vaquita) 돌고래의 현황과 보존에 관해 기술했다. 자비스 박사는 “이는 종을 보존할 희망이 있다는 의미한다”고 밝혔다.

VGP는 이제 더 많은 종을 시퀀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프로젝트팀의 다음 목표는 모든 척추동물 목(orders)을 대표하는 260개의 게놈을 완성한 다음, 모든 과(family)를 대표하는 수천 개 이상의 항목을 처리하는 것이다. 프로젝트팀은 연구에 투입할 충분한 연구비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병희 객원기자
hanbit7@gmail.com
저작권자 2021-04-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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