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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김병희 객원기자
2019-03-14

도구의 소형화가 ‘인간’을 만들었다 미세한 작업 가능한 손 기능 덕분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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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도구 제작이 우리 조상들을 다른 영장류와 분리시킨 핵심적인 행동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인간족(hominins)이 영장류와 갈라지게 된 것은 단순한 도구 제작이 아니라 도구의 소형화(miniaturization) 때문이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실제 몇십 년 전에 작은 트랜지스터가 나와 커다란 진공관을 대체하며 통신과 전자기술을 변화시켰고, 과학자들은 지금도 이를 더 소형화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석기시대 인류 조상들도 이와 같이 작은 도구를 만들기 위한 충동을 느꼈다는 것. 논문 제1저자인 저스틴 파기터(Justin Pargeter) 미국 에모리대 인류학자는 “이는 우리가 끊임없이 마주하고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욕구”라고 지적했다.

‘진화 인류학’(Evolutionary Anthropology) 저널 최근호에 발표된 이 논문(제목: Miniaturization is the thing that we do)은 처음으로 선사시대 도구 소형화에 대한 종합적인 개관을 담았다. 저자들은 논문에서 최소 260만년 전 도구 소형화는 인간족 기술에서 중심적 경향이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관련 동영상

논문 제1저자인 파기터 박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붐플라스(Boomcommas)라는 곳에서 나온 이 작은 석영조각을 단초로 석기시대 소형화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CREDIT: Justin Pargeter
논문 제1저자인 파기터 박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붐플라스(Boomcommas)라는 곳에서 나온 이 작은 석영조각을 단초로 석기시대 소형화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 Justin Pargeter

“작은 돌 도구를 오늘날 일회용 면도날같이 사용”

논문 공저자인 뉴욕 스토니 브룩대 인류학과 존 시어(John Shea) 교수는 “돌 도구를 사용한 다른 유인원들은 큰 것을 선택하고 자신들이 진화한 숲속에 머물렀다”며, “그에 비해 인간족은 작은 것을 선택하고, 어느 곳으로나 가서 불편한 주거지를 필요에 맞게 변형시켰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구멍 뚫기나 절단 및 긁개로 사용된 1인치 이하의 작은 돌조각들이 모든 대륙의 가장 오래된 석기군 유적지들의 고고학 기록에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를 검토했다.

파기터 박사는 이 작은 돌조각들이 오늘날의 일회용 면도날이나 종이클립 같이 일상에서 자주 사용되고 쉽게 만들어 교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기터 박사는 인간족 진화에서 소형화에 관한 3개의 변곡점을 확인했다. 첫 번째는 약 200만년 전에 발생한 시작점으로, 손톱이나 치아로 물체를 자르고 베어내고 구멍을 뚫는 대신 돌 조각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약 10만 년 전에 일어났다. 활과 화살 같은 고속 무기가 개발되면서 화살촉 같은 삽입용 경량 석재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약 1만 7000년 전에 발생한 세 번째 변곡점은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 해수면이 상승하던 때로, 인간들은 빠른 기후변화에 적응하면서 인구밀도가 늘어났다. 이 같은 변화는 도구를 만드는데 필요한 암석과 광물을 포함한 자원 보존의 필요성을 증대시켰다.

손으로 쥘 수 있는 손도끼(왼쪽)와 소형화의 필요에 따라 만든 작은 돌 조각과 이것을 만들 수 있는 돌 도구들(오른쪽). CREDIT: Emory University
손으로 쥘 수 있는 손도끼(왼쪽)와 소형화의 필요에 따라 만든 작은 돌 조각과 이것을 만들 수 있는 돌 도구들(오른쪽). ⓒ Emory University

인간 진화의 또다른 측면

남아프리카 태생인 파기터 박사는 울퉁불퉁하고 외진 인도양 해안선과 인근 내륙의 산들을 오르내리며 현장 작업을 함께 지휘했다. 연구팀은 우리 조상들이 그 기술을 어떻게 배웠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어떻게 우리 진화의 한 모습을 형성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실제로 석기를 제작해 보기도 했다.

연구실 책임자인 디트리히 스타우트(Dietrich Stout) 부교수는 50만 년 전의 손도끼에 초점을 맞추었다. 덩치가 약간 큰 이 도구는 제작에 따르는 복잡성 때문에 인간의 생물학적 및 인지적 진화의 전환점으로 간주된다.

작은 도구에 대한 파기터 박사의 연구는 인간 진화 연구에 또 다른 측면을 추가한다. 스타우트 교수는 그의 연구에 대해 “무엇이 이런 작은 도구들을 만들고자 하는 충동을 이끌어냈는가, 즉 도구와 인체, 뇌 그리고 도구 사용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전형적인 석기에 대해 박사학위 논문을 쓰려다 박물관에 보관돼 있던 쓰레기더미에서 고도의 기술이 가미된 것 같은 석영 조각 하나를 발견하고 방향을 바꿨다.

조각을 돋보기로 살펴보자 사냥에 사용할 때 생긴 흠집같이 끝에 계단 모양의 독특한 균열이 있었다. 그는 “갑자기 고고학자들이 인류 석기 기록의 주요한 구성요소를 놓쳤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선사인은 단순 동굴거주자 아닌 ‘기술자’

그러면 손가락으로 튕길 수 있을 정도의 이 작은 도구는 어디에 사용되었을까?

파기터 박사는 이런 의문을 1만 7000년 전 돌 조각을 사용하던 구석기 시대 환경의 맥락에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작은 돌 도구가 당시 기후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생존에 도움이 되었을 수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극지방에서 얼음이 대량으로 녹자 해수면이 상승했다. 그에 따라 해안 습지와 초원이 사라지면서 그곳에 살던 사냥감이나 수상 동물이 자취를 감추었고, 수렵-채집인들은 해안에서 80㎞ 정도 떨어져 있는 붐플라스(남아공 남해안 내륙지역 이름) 같은 내륙으로 들어갔다. 이곳 주변 산지에는 풍부한 담수원이 있다.

그러나 당시는 기온과 강우가 급변해 기후 예측이 어려웠다. 식생이 극적으로 바뀌고 온도가 올라가면서 대형 포유류가 줄어들었다. 붐플라스의 고고학적 발굴 결과를 보면 당시 사람들은 산토끼나 거북 같은 작은 동물들을 잡아먹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런 동물들은 잡기는 쉬웠으나 영양 공급은 제한돼 있었다. 피기터 박사는 “해안에서 생존을 위해 피해오면서 마치 난민 캠프 같은 생활을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를 수행한 저스틴 파기터 박사. 그는 작은 돌 도구 사용은 1만7000년 전 급격한 기후변화 시기에 인류가 생존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CREDIT: Emory University
연구를 수행한 저스틴 파기터 박사. 그는 작은 돌 도구 사용은 1만7000년 전 급격한 기후변화 시기에 인류가 생존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 Emory University

가로 1인치가 채 안되는 화살촉은 고고학 문헌에 실려있으나, 붐플라스의 석영 조각은 크기가 그 절반에 불과했다. 파기터 박사는 사냥꾼들이 동물을 쓰러뜨리기 위해 이 석영 화살촉에 식물이나 곤충의 독을 발랐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화살 앞에는 갈대 등으로 만든 연결대를 꽂고 그 앞에 화살촉을 달았다. 이런 화살로 활을 쏘면 목표물에 화살촉이 꽃히면서 화살대는 튕겨나와 재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인류의 기술을 높게 평가했다. “우리 조상들은 공기역학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흔히 ‘동굴 거주자’로 생각돼 온 것보다는 기술자처럼 행동했다”며, “기술시스템에 중복성을 구축해 쉽게 도구를 수선하고 오류를 줄였다”고 말했다.

도구 소형화할 수 있도록 손 발달

고인류학자들이 300만년 전의 인간족과 맞닥뜨리면서 지속적으로 제기했던 의문 중 하나는 ‘무엇이 우리 인간을 독특하게 만들었나’하는 것이었다.

파기터 박사는 “일반적으로 도구 사용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다고 말하지만 다른 동물들도 도구를 사용한다는 증거가 축적되기 때문에 근거가 약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마카크 원숭이는 굴 껍데기를 부수기 위해 돌을 사용한다. 침팬지도 돌을 망치와 모루로 사용해 견과류를 깨고, 막대기를 변형해 흰개미 굴을 파서 개미 낚시를 한다. 그러니 이 같은 도구들은 모두 크기가 크다.

그는 “다른 영장류들의 손은 힘이 드는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미세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진화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반면에 인간은 소형화 능력을 높여갈 수 있는 독특한 정밀 그립을 진화시켰다”고 설명했다.

인간은 또한 자신들의 조상이 살던 환경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다른 영장류들과 달리 새로운 환경을 찾아 분산돼 퍼져 나갔다. 작은 도구들은 이런 이동과 인구 분산에 맞는 기술의 선택이라는 것.

파기터 박사는 “호모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났을 때 그들은 부피가 큰 손도끼를 지니고 있지 않았고, 활과 화살 그리고 작은 돌 도구를 가지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김병희 객원기자
hanbit7@gmail.com
저작권자 2019-03-1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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